WTI 9.4% 급등 뒤 78달러대 유지…트럼프 20% 통행료·이란 보복에 공급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국제유가가 미국의 대이란 해상봉쇄 재개 여파로 한 달 만에 최고 수준을 유지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선박의 호르무즈 해협 통항을 다시 막고 다른 화물에는 20% 보전을 요구하면서 중동 원유 공급 우려가 되살아났다.
블룸버그통신은 14일(이하 현지시각) 싱가포르 오전 거래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78달러(약 11만7000원) 부근에서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WTI는 전날 9.4% 급등했다. 브렌트유는 13일 배럴당 83.30달러(약 12만4000원)에 마감했다.
유가는 2분기 약 30% 하락한 뒤 중동 긴장 재확산으로 반등했다. 미국이 이란 항만과 연안 지역 봉쇄를 다시 시행하면서 원유 수송 차질과 해상보험료 상승, 통항 비용 증가가 동시에 시장 변수로 떠올랐다.
◇ WTI 80달러선 근접
WTI 8월물은 14일 싱가포르 오전 6시 41분 기준 배럴당 78.17달러(약 11만7000원)로 전날 급등분을 대부분 유지했다. 브렌트유 9월물은 13일 9.6% 오른 83.3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이번 반등은 이란산 원유 공급 차질 우려가 다시 커진 결과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란은 두 차례 미국 해상봉쇄 사이의 짧은 공백기에 최소 5700만배럴의 원유를 수출했다. 봉쇄가 재개되면 이 물량이 다시 시장에서 막힐 수 있다는 점이 원유 가격을 밀어 올렸다.
인프라스트럭처캐피털매니지먼트의 제이 햇필드 최고경영자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안팎에 머물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해협 상황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수 있지만 곧바로 90~100달러로 치솟을 가능성은 제한적으로 평가했다. 반대로 해협이 다시 열리면 유가가 빠르게 60달러대로 내려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는 현재 유가가 실제 공급 부족보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정책 불확실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트럼프 20% 통행료 발언 파장
시장 불안을 키운 핵심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20% 보전 요구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의 안전한 통항을 보장하는 대가로 화물에 대해 20%를 보전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룸버그는 만재 초대형 유조선 기준으로 이 비용이 약 3000만달러(약 448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구상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될지는 불분명하다. 비용 부과 대상이 원유 화물인지, 전체 선박인지, 걸프 국가의 수출 물량인지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원유 물류의 핵심 통로에서 미국이 사실상 안전통항 비용을 요구했다는 점만으로도 해운사와 에너지 기업의 비용 계산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등을 보호하고 있다며 이들 국가로부터 보전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 국가는 모두 호르무즈 해협 안정에 크게 의존하는 걸프 산유국이다.
20% 통행료 구상은 국제법과 외교 갈등도 부를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국제 원유와 액화천연가스 수송의 핵심 해상로다. 특정 국가가 통항 비용을 사실상 부과할 경우 에너지 수입국과 산유국, 해운업계가 모두 영향을 받는다.
◇ 이란 보복과 UAE 유조선 피격
봉쇄 재개 발표와 맞물려 군사 충돌도 이어졌다.
미군은 이란을 상대로 사흘째 공습을 진행했다. 블룸버그는 이번 공습이 며칠 더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미국 중부사령부는 뉴욕 시간 14일 오후 4시부터 이란의 모든 항만과 연안 지역 봉쇄를 집행할 예정이다.
이란도 맞대응에 나섰다. 이란 반관영 파르스통신은 이란군이 드론으로 쿠웨이트의 미국 관련 자산을 겨냥했고 순항미사일로 적대 선박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UAE는 호르무즈 해협 남쪽 항로에서 자국 유조선 2척이 공격받았다고 밝혔다.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부 장관은 미국과의 합의가 위기 국면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약속을 어기는 한 이란도 합의 조건을 지키지 않겠다는 취지로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행료 구상에 대해서는 조롱 섞인 반응을 보이며 이란이 해협의 수호자라고 주장했다.
미국과 이란이 모두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을 정치·군사적 카드로 활용하면서 원유시장 불안은 단기 가격 변동을 넘어 구조적 리스크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UAE 증산과 우회 수송도 변수
걸프 산유국들은 이미 호르무즈 리스크에 맞춰 수송 방식을 조정해왔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한 달 동안 걸프 산유국들은 임시 합의로 수출 우려가 완화되자 추가 원유 판매에 나섰다. 특히 UAE는 선박자동식별장치를 끈 셔틀탱커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원유 수송을 늘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 전해졌다.
UAE는 석유수출국기구에 6월 원유 생산량이 하루 380만배럴로 늘었다고 통보했다. 이는 지난 5월보다 하루 171만배럴 증가한 수준이다. UAE는 이란 충돌에 따른 수송 제약을 우회하면서 생산을 확대했고 산유국 협의체에서도 이탈한 뒤 독자적 증산을 진행했다.
다만 이런 증산이 시장 안정으로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 UAE 유조선 피격 사례처럼 호르무즈 주변 항로의 군사 위험이 커지면 생산량 확대보다 운송 차질이 더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 푸자이라 등 UAE 동부 해안 항만과 송유관, 셔틀 수송망의 전략적 가치가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직접 통과하지 않는 물류 경로를 확보한 국가와 기업이 더 높은 가격 결정력을 갖게 되는 구조다.
◇ 러시아 제재까지 겹친 공급 불안
중동 변수에 러시아 제재 가능성도 더해졌다.
블룸버그는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러시아 제재 법안을 지지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 법안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구매국을 제재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도록 압박하는 내용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국에 대한 제재가 현실화하면 원유시장은 중동과 러시아라는 두 공급 축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을 수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란산 원유를 겨냥한다면 러시아 제재는 러시아산 원유와 가스 구매 흐름을 흔들 수 있다.
원유시장은 이미 2분기 큰 폭 하락을 겪었다. 경기 둔화 우려와 공급 증가 전망이 유가를 끌어내렸지만, 미국과 이란의 충돌 재개로 하락분 일부가 빠르게 되돌려졌다.
공급 충격이 현실화하지 않더라도 지정학 위험은 가격에 프리미엄으로 반영된다. 해상보험료, 선박 대기비용, 우회 항로 비용, 통항 관련 비용이 원유 가격과 정제제품 가격에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 80달러 유가의 다음 변수
블룸벅에 따르면 유가의 다음 방향은 호르무즈 해협의 실제 통항 상황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이 이란 항만 봉쇄를 강하게 집행하고 이란이 선박 공격으로 맞서면 유가는 80달러대를 넘어 추가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 반대로 봉쇄가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제3국 선박 통항이 유지되면 가격은 다시 안정될 여지가 있다.
핵심은 미국의 20% 보전 요구가 실질 비용으로 굳어질지 여부다. 단순한 정치적 발언에 그친다면 시장 충격은 제한될 수 있다. 그러나 해운 계약이나 원유 수송 비용에 반영되기 시작하면 호르무즈 해협은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리는 구조적 비용 요인으로 바뀔 수 있다.
이란산 원유 수출 공백도 관건이다. 봉쇄 공백기에 이란이 최소 5700만배럴을 수출했다는 점은 이 물량이 다시 막힐 경우 시장 수급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다는 뜻이다.
국제유가가 한 달 만에 최고 수준을 유지한 것은 봉쇄 재개가 단순한 군사 조치에 그치지 않고 원유 수송의 가격 체계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충돌은 유가를 다시 지정학 프리미엄 구간으로 끌어올리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