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란 충돌에도 4000달러 밑으로…고금리·유가 상승이 매수심리 압박
이미지 확대보기금값이 사상 최고치에서 약 25% 하락하면서 대표 안전자산이라는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다시 충돌했지만 금값은 오히려 하락했다. 중동 긴장이 유가와 인플레이션을 밀어 올리고 미국 금리 인하 기대를 약화시키면서 금 보유 비용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이하 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날 금 가격은 트로이온스(약 31.1g)당 3997달러(약 597만원)로 2.6% 하락했다. 금값은 지난 1월 트로이온스당 5318달러(약 795만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뒤 약 25% 밀렸다.
미국과 이란이 주말 사이 다시 공격을 주고받았지만 시장 반응은 과거와 달랐다. 국제유가는 급등했고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6%가량 하락했지만 금은 안전자산 매수세를 끌어들이지 못했다.
◇ 이란 충돌에도 금은 하락
금은 통상 전쟁과 금융시장 불안이 커질 때 수요가 늘어나는 자산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흐름은 다르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이란 충돌은 원유 공급 우려를 키웠고 브렌트유 가격은 13일 거의 10% 올라 배럴당 83.30달러(약 12만4000원)에 마감했다. 2020년 5월 이후 가장 큰 하루 상승률이다.
유가 급등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했다. 미국 5월 물가상승률은 4.2%로 3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14일 발표될 6월 소비자물가지수도 주목하고 있다.
문제는 인플레이션이 높아지면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더 오래 높은 수준에 묶어두거나 추가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금은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자산이다. 금리가 높아질수록 국채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기회비용이 커지고 금 매력은 낮아진다.
◇ GLD도 고점 대비 26% 하락
금 투자 상품도 조정을 피하지 못했다.
세계 최대 금 상장지수펀드인 SPDR 골드셰어즈는 지난 1월 사상 최고 종가에서 약 26% 하락했다. 금 현물을 직접 보유하지 않고 ETF로 투자한 투자자들도 비슷한 손실 구간에 들어간 셈이다.
은 가격의 조정은 더 컸다. 은은 올해 초 트로이온스당 115달러(약 17만2000원)로 사상 최고치를 찍은 뒤 50% 하락했다. 은은 금보다 산업 수요와 투기적 거래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 자산이어서 변동성이 더 커지는 경향이 있다.
금과 은이 함께 밀린 것은 안전자산 선호보다 금리와 유동성 압박이 시장을 더 강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전쟁 불안이 커져도 투자자들이 금으로 몰리기보다 금리 경로와 유동성 환경을 먼저 따지고 있다는 뜻이다.
◇ 개인 장기 보유자도 일부 차익실현
금값 하락은 장기 보유자들의 심리도 바꾸고 있다.
WSJ는 올해 초 금값이 5000달러(약 747만원)를 넘어서자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차익실현에 나섰다고 전했다. 반대로 조정에도 보유를 유지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이는 금 투자 심리가 완전히 꺾였다기보다 급등장에 대한 맹목적 확신이 약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일부는 고점에서 매도했고 일부는 장기 안전판으로 남겨두는 양상이다.
◇ 중앙은행 매도도 가격 부담
중앙은행 움직임도 금값에 부담이 되고 있다.
이보크어드바이저스의 알렉스 샤히디 공동 최고투자책임자는 “에너지 비용 상승이 일부 중앙은행의 금 매도를 불렀다”고 분석했다. 유가 상승으로 유동성 필요가 커진 국가들이 금을 팔아 현금을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앙은행은 최근 몇 년 동안 금 시장의 주요 매수 주체였다. 달러 의존도를 낮추고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려는 흐름이 금값 상승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고 재정·외환 압박이 커지면 일부 중앙은행은 금을 유동성 확보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 연준 결정이 더 큰 변수
시장 전문가들은 단기 지정학 뉴스보다 연준의 금리 결정이 금값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스테이트스트리트인베스트먼트매니지먼트의 아카시 도시 금 전략 책임자는 “일시적인 휴전 파기만으로 시장이 3~4월 충돌 수준으로 되돌아간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움직임을 하루하루의 잡음으로 평가하며, 연준의 금리 결정이 금값에 더 큰 영향을 줄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연준은 6월 회의에서 올해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에 머물 경우 금리를 올릴 필요가 있다는 데 대체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리 인하 기대가 약해질수록 금에는 불리한 환경이 이어진다.
지난해 금값 상승을 이끈 요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 연준 금리 인하 기대, 기술주 급등에 대한 불안이었다. 그러나 올해 들어 에너지 가격 상승과 지정학 긴장이 오히려 금리 부담을 키우면서 상승 논리가 흔들리고 있다.
◇ 안전자산의 조건 바뀌나
금값 조정은 안전자산의 의미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전쟁과 금융시장 불안이 곧바로 금값 상승으로 이어지던 공식은 약해졌다. 지정학 충돌이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를 부른다면 금은 오히려 압박을 받을 수 있다. 금은 위기에는 강하지만 이자를 주지 않는 자산이라는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 보유자들의 고민도 깊어졌다. 사상 최고치 부근에서 일부 차익실현에 나선 투자자들은 추가 하락을 피했지만 장기 보유자들은 여전히 금을 포트폴리오 안정판으로 본다. 문제는 금이 더 이상 모든 위기에서 자동으로 오르는 자산은 아니라는 점이다.
금값이 4000달러 아래로 내려간 것은 단순한 가격 조정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는 지적이다. 미국과 이란 충돌이라는 전통적 안전자산 호재에도 금이 하락했다는 사실은 시장의 초점이 지정학 공포보다 금리와 인플레이션으로 옮겨갔음을 드러낸다고 WSJ는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