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4000억달러 합병 논의...항암제 사업 중복에 반독점 심사·영국 본사 이전 우려
이미지 확대보기영국 제약사 아스트라제네카가 미국 경쟁사 브리스톨마이어스스퀴브(BMS)와 기업결합을 논의하고 있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약 4000억달러(약 578조원)로 거래가 성사될 경우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 제약사가 탄생할 전망이다.
다만 양측이 최근 수개월간 협의를 진행했을 뿐 합병 방식과 지분 비율은 정해지지 않았다. 협상이 조만간 타결될 가능성이 있지만 지연되거나 완전히 무산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BMS가 결합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들을 인용해 3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합치면 시총 578조원 세계 4위
FT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의 시가총액은 약 1960억파운드(약 382조원)로 영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 가운데 두 번째로 기업가치가 크다. BMS의 시가총액은 약 1330억달러(약 192조원)다.
두 기업이 합쳐지면 기업가치는 약 4000억달러에 육박한다. 제약업계 역사상 가장 큰 기업 인수·합병(M&A) 가운데 하나가 될 전망이다.
FT는 결합 법인이 시가총액 기준 세계 4위 제약사로 올라설 것으로 분석했다. 다만 4000억달러는 확정된 인수대금이 아니라 현재 두 회사의 시가총액을 합산한 규모다.
구체적인 거래 구조는 확인되지 않았다. FT는 현금과 주식을 함께 지급하는 방식이 필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두 회사 모두 항암제 사업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는 평가다.
아스트라제네카는 파스칼 소리오 최고경영자(CEO)의 지휘 아래 항암제 중심의 신약 포트폴리오를 확대하며 영국을 대표하는 제약사로 성장했다.
BMS도 면역항암제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암 치료제 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가 결합하면 세계 항암제 시장에서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미국 확대…BMS는 특허절벽 대응
이번 합병 논의는 두 회사가 서로 다른 과제를 안고 있는 가운데 이뤄졌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인 미국에서 사업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해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를 미국에서 올렸다. 2030년 매출 목표는 800억달러(약 116조원)로 지난해 매출 587억달러(약 85조원)보다 약 36% 많다.
목표를 달성하려면 미국 시장에서 판매를 늘리고 새로운 신약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6월 뉴욕증시 직접 상장을 마치며 미국 자본시장과의 연계도 강화했다. 영국에서는 회사가 런던보다 미국 시장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소리오 CEO는 지난주 기자들과의 통화에서 2030년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데 M&A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는 최근 중국 바이오기업들과 잇따라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며 신약 후보물질을 확보하고 있다.
BMS와의 결합이 이뤄지면 미국 내 판매와 연구개발 기반을 한꺼번에 확대할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2021년 희귀질환 치료제 기업 알렉시온을 390억달러(약 56조원)에 인수했다. 이는 현재까지 회사 역사상 가장 큰 인수다.
BMS와의 거래는 알렉시온 인수 규모를 크게 뛰어넘는다.
BMS는 성장 둔화와 주력 의약품의 특허 만료에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제약사의 신약 특허가 끝나면 경쟁업체들이 값싼 복제약이나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할 수 있다. 기존 의약품의 매출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제약업계에서는 ‘특허절벽’이라고 부른다.
BMS의 일부 핵심 의약품은 향후 몇 년 사이 특허 보호가 끝날 예정이다. 이를 대신할 신약의 매출이 충분히 늘지 않으면 회사 전체 실적이 감소할 수 있다.
BMS는 2019년 미국 바이오기업 세엘진을 740억달러(약 107조원)에 인수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T는 BMS가 최근 제약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성장세가 더딘 기업으로 분류돼왔다고 전했다.
아스트라제네카의 신약 개발 역량과 BMS의 미국 사업 기반을 결합하는 방안이 양측의 성장 과제를 보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항암제 중복·영국 본사 이전이 최대 관문
다만 거래가 합의되더라도 실제 합병까지는 여러 관문을 넘어야 한다.
두 회사가 모두 대규모 항암제 사업을 운영하고 있어 미국과 유럽 경쟁당국의 강도 높은 반독점 심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쟁당국은 두 회사의 결합으로 특정 항암제 시장의 경쟁이 줄어들거나 약값이 오를 우려가 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사업이 겹치는 의약품이나 신약 후보물질이 많다고 판단하면 일부 제품을 다른 회사에 매각하도록 요구할 수도 있다.
영국 내 정치적 반발도 예상된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영국에서 두 번째로 기업가치가 큰 상장회사다. 합병을 계기로 본사를 미국으로 옮기거나 미국 시장 중심으로 경영구조를 바꿀 가능성이 제기되면 영국 정부와 정치권의 반발이 커질 수 있다.
2014년 미국 화이자는 당시 아스트라제네카를 약 700억파운드(약 136조원)에 인수하려 했다.
소리오 CEO는 화이자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후 아스트라제네카는 항암제 사업을 확대하며 당시보다 기업가치가 크게 성장했다.
10여년 전 미국 기업의 인수 시도를 막아낸 아스트라제네카가 이번에는 스스로 미국 대형 제약사와 결합을 논의한다는 점도 영국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FT는 이번 거래가 대형 기업의 미국 이전을 우려하는 영국 내 목소리를 더욱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기업결합에 비교적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미국 M&A 규모가 사상 최고 수준에 근접한 점은 거래에 유리한 환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항암제 시장의 사업 중복과 영국의 정치적 반발을 고려하면 협상이 타결되더라도 규제당국의 최종 승인을 받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BMS 주가는 올해 들어 21% 올랐지만 아스트라제네카 주가는 같은 기간 8% 하락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