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신숙경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바라승무’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한 춤

글로벌이코노믹

신숙경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바라승무’에 대한 호기심을 촉발한 춤

[나의 신작 연대기(87)] 신숙경(이화여대 무용학박사, 한양대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의 독무, 몸·소리·시간이 서로를 깨우는 철학적 사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춤은 선을 만들면서 시작된다. 선은 음영으로 다가와 낮과 밤을 품은 산의 모습을 지닌다. 적절한 호흡과 리듬감을 탄 움직임은 사유를 몰아오고,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공간을 차지한다. 몸짓은 고요한 능선을 넘어 흐르는 바람처럼 공간의 결을 어루만지고, 한 줄기 빛처럼 정적의 틈새에 생명의 파문을 새긴다. 움직임이 깊어질수록 몸은 풍경이 되고, 그 풍경 위로 시간과 기억이 은은한 서정의 빛으로 피어난다. 신숙경은 언제나 미학적 춤의 대상이 된다.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제16회 춤&판의 9월 2일 공연 마지막은 신숙경 독무의 장홍심류 '바라승무'로 몸·소리·시간이 서로를 깨우는 철학적 사건이었다. 장홍심류 ‘바라승무’는 일반 승무의 변형 범주를 벗어나, 한성준에서 장홍심, 이성자, 송미숙, 신숙경에게 이르는 독자적인 전통춤의 계보를 갖는다. 이 춤을 관시(觀視)하는 것은 과거의 춤을 보는 일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의 울림으로 깨어나는 몸을 통해 어떻게 재생하는가를 목격하는 일이다.

전통은 흔히 고정된 원형으로 이해되지만, 살아 있는 전통은 결코 정지해 있지 않다. 전통은 과거에 완성된 형식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몸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갱신하는 시간의 운동이다. 장홍심류 바라승무의 전승 또한 바로 그러한 ‘생성하는 전통’의 현재성을 보여주며, 신숙경의 몸은 그 지속과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현재의 장소가 된다. 그 몸 안에서 전통의 기억은 오늘의 감각과 만나 새로운 의미와 생명력을 획득한다.

장홍심류 ‘바라승무’에서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 몸의 수직성이다. 신숙경은 몸통을 과도하게 비틀거나 뒤틀기보다 중심을 곧게 세운 채 팔과 어깨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몸의 중심을 잃지 않고 공간을 향해 움직임을 확장한다. 이는 인간의 몸이 세계에 던져진 하나의 수직적 존재이며, 춤이란 그 존재가 자신의 중심을 보존하면서 세계와 관계 맺는 행위라는 사실을 환기한다. 이러한 수직성은 내면과 외부 세계를 잇는 존재의 축으로서 춤의 철학적 깊이를 더한다.
장삼은 그 몸의 내면을 외부로 환치하는 매개체다. 팔의 작은 움직임은 장삼을 통해 긴 선이 되고, 한 순간의 호흡은 공간을 가로지르는 곡선으로 변한다. 장삼춤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을 만드는 행위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과 호흡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바꾸는 ‘몸의 사유’가 된다. 장삼의 유동선은 몸과 공간 사이의 결을 새기며, 움직임에 내재한 기억과 정서를 하나의 조형적 언어로 환원한다. 장삼은 내면의 시간을 공간에 기록하는 살아 있는 필선이다.

긴염불에서 반염불, 느린 허튼타령으로 이어지는 느린 호흡은 시간을 붙잡지 않고, 시간 속에 몸을 맡김으로써 시간 자체를 감각하게 한다. 느린 움직임에서 관객이 경험하는 것은 ‘느림’이라는 속도가 아니라, 평소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호흡과 기다림, 그리고 존재의 미세한 떨림이다. 그 느림 속에서 움직임은 시간의 깊이를 드러내며, 찰나의 몸짓조차 영속적인 감각의 흔적으로 남는다. 춤은 시간이 몸을 통과하는 방식을 감각하게 하는 명상의 형식으로 승화된다.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장홍심류 ‘바라승무’의 시간은 느림에 머물지 않는다. 자진 허튼타령과 자진 굿거리로 이어지면서 움직임은 점차 속도를 얻고, 장삼의 선은 더욱 짧고 강한 운동으로 변모한다. 속도는 박자의 변화가 아니라 잠재되어 있던 생명력이 표면으로 솟아오르는 존재론적 상승으로 읽힌다. 느림 속에 잠재했던 에너지는 가속의 순간마다 새로운 운동의 질서로 전환되며, 몸은 시간의 흐름을 수동적으로 따르는 존재에서 스스로 시간을 생성하는 주체로 변화한다.

바라가 등장하는 순간 춤의 세계는 결정적으로 전환된다. 춤의 속도는 단순한 리듬의 고조를 넘어 내면에 잠든 생명성을 깨워 공간 전체로 확산시키는 생성의 힘으로 작동한다. 장삼이 몸의 움직임을 공간에 그리는 도구라면, 바라는 그 공간을 직접 울리게 하는 물질이며, 몸의 운동을 소리의 사건으로 변환하는 매개체이다. 바라와 바라가 충돌하는 순간 발생하는 금속성 울림은 단순한 음향이 아니라, 침묵하고 있던 공간을 깨우는 하나의 존재론적 사건이 된다.

바라는 원형이다. 둥근 바라가 맞부딪치고 교차하며 회전할 때, 춤은 원의 미학으로 이동한다. 직선이 목적과 방향을 암시한다면 원은 순환과 회귀를 상징하며, 바라의 원운동은 탄생과 소멸, 시종이 서로 분리되지 않는 시간의 구조를 몸으로 드러낸다. 원은 동일한 지점에 머물지 않으며, 그 회귀 속에서 새 움직임을 생성하는 시간의 형상이다. 바라의 회전은 존재의 소멸과 생성이 맞물리는 순환의 질서를 가시화하며, 춤을 시간과 존재에 대한 사유로 확장한다.

머리 위에서 바라를 교차하는 동작은 특히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몸 위에 두 개의 원이 겹쳐지는 순간, 신체는 하나의 작은 우주적 공간으로 변하고, 회전하는 바라의 궤적은 그 몸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궤도가 된다. 이때 무용수는 바라를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 바라의 궤도와 함께 움직이는 하나의 존재가 된다. 두 개의 바라가 그려내는 원은 몸의 경계를 넘어 공간과 시간을 감싸며, 신체 자체가 하나의 우주적 질서로 확장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한 발을 딛고 도약하며 바라를 치는 순간에는 수직적 몸이 중력을 잠시 거스른다. 발은 땅을 딛고 있지만 몸은 순간적으로 지상의 질서에서 벗어나며, 바라의 금속성 울림은 그 찰나의 초월을 소리로 증명한다. 춤에서 도약이란 단순히 높이 올라가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몸이 자신의 물리적 조건을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순간적으로 보여주는 행위다. 찰나의 비상은 정신의 자유를 향해 열리는 순간이며, 몸과 세계 사이에 새로운 존재의 가능성을 생성한다.

춤의 초월은 현실을 버리지 않는다. 도약한 몸은 다시 땅으로 돌아오고, 바라의 울림도 침묵으로 돌아간다. 장홍심류 바라승무가 보여주는 초월은 현실로부터의 탈주가 아니라 현실에 더욱 깊이 귀환하기 위한 순간적인 상승이다. 앉아서 양쪽 바라를 치면 미학적 역설이 분명해진다. 몸은 낮아질수록 소리는 넓어지고, 신체의 수축이 오히려 공간의 확장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발생한다. 장홍심류 바라승무의 움직임은 ‘확장과 수렴’의 힘 사이에서 진동한다.

팔은 펼쳐지고 다시 거두어지며, 몸은 상승했다가 하강하고, 소리는 폭발했다가 침묵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반복은 인간 존재가 끊임없이 세계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결국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존재임을 은유한다. 그런 의미에서 바라의 타격은 보편적인 인간적 의미를 획득한다. 금속성 울림은 몸에 축적된 번뇌와 기억, 욕망과 흔적을 흔들어 깨우고 비워내는 행위이다. 바라가 부딪치는 순간마다 ‘우리는 무엇을 떨쳐내야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 출연의 장홍심류 '바라승무'
신숙경(이화여대 무용학박사, 한양대미래인재교육ᄋᆏᆫ 겸임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신숙경(이화여대 무용학박사, 한양대미래인재교육ᄋᆏᆫ 겸임교수)

‘바라’는 악기를 넘어 경계의 물질이 된다. 몸과 공간, 침묵과 소리, 과거와 현재, 인간과 초월의 경계를 바라가 가로지르기 때문이다. 바라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울림은 상이한 존재가 내는 긴장이며, 그 충돌을 통해서만 발생하는 관계의 소리이다. 바라승무의 아름다움은 조화로운 정적에만 있지 않다. 오히려 장삼의 부드러운 선과 바라의 단단한 타격, 느린 호흡과 빠른 장단, 정지와 회전, 고요와 울림이 서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발생한다.

미학은 서로 다른 것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는 상태가 아니라, 차이를 유지하면서도 하나의 질서를 만들어내는 긴장 속에서 탄생한다. 신숙경의 춤은 긴장을 과장하지 않는다. 힘찬 바라춤에서도 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고, 역동적인 회전에서도 움직임은 무절제한 격정으로 흩어지지 않는다. 강함을 강하게 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강함 속에 절제를 내장하는 것이 장홍심류 바라승무가 지닌 오래된 품격이며 신숙경이 현재의 몸으로 구현한 미학적 태도다.

전승이란 과거의 동작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담긴 정신이 현재의 몸에서 다시 호흡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한성준의 예술적 실험은 장홍심의 독창성을 거치며 새로운 춤의 질서를 만들었고, 그 질서는 이성자와 송미숙의 몸과 연구를 통해 이어졌으며, 이제 신숙경의 신체에서 또 다른 현재성을 획득한다. 따라서 전통의 생명은 동일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정신이 서로 다른 시대의 몸에서 새롭게 발화하는 차이에 있다.

장홍심류 ‘바라승무’는 ‘춤추는 몸’에 관한 예술이면서 ‘존재하는 몸’에 관한 철학이다. 장삼의 선은 시간의 흔적을 공간에 새기고, 바라의 울림은 흔적을 흔들어 깨우며, 회전과 도약은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살핀다. 마지막 굿거리에서 모든 움직임과 소리가 중심으로 수렴할 때, 우리는 춤의 끝이 소멸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침묵임을 깨닫는다. 침묵 속에서 몸은 지나간 시간을 품으면서도 새로운 시간을 향해 다시 깨어난다.

신숙경의 '바라승무'가 남긴 가장 깊은 인상은 ‘울림 이후의 침묵’에 있다. 바라의 강렬한 금속음이 사라진 뒤에도 관객의 내면에는 보이지 않는 진동이 지속되고, 그 진동 속에서 장홍심의 시간과 오늘의 신숙경의 시간이 하나의 현재로 겹쳐진다. 춤은 존재의 순환과 생성을 사유하는 행위로 승화된다. 그 순간 전통은 더 이상 박물관에 보존된 과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과 감각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살아 있는 시간임을 증명한다.

신숙경이 연희한 장홍심류 '바라승무'는 과거를 향한 회고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무엇을 이어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받은 것을 어떻게 다시 살아 있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한 몸의 움직임과 하나의 바라 소리 속에서 동시에 울렸다. 신숙경의 춤은 바로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답변으로서, 전통이란 멈춰 있는 유산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생성하는 현재의 생명임을 묵직하게 품격있게 보여주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한국춤협회©한필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