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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미래대응기금 vs 미래파멸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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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미래대응기금 vs 미래파멸기금

노르웨이 "역사의 교훈"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1969년 북해에서 대형 유전이 발견됐을 때 노르웨이는 유럽의 보잘 것 없는 변방 국가였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노르웨이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를 가진 나라가 됐다. 지금 노르웨이 글로벌 정부연기금(GPFG)의 시장가치는 약 21조3천억 크로네로, 국민 1인당 380만 크로네에 이른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진짜 자산은 돈이 아니라 규칙이다. 돈을 모으는 규칙보다 돈에 손대지 않는 규칙이 오늘의 노르웨이를 만들었다.

한국에도 비슷한 기회가 찾아왔다. 반도체 호황으로 2027년 국세수입은 584조4천억 원, 올해 본예산보다 194조2천억 원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이 가운데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웃도는 162조3천억 원으로 미래대응기금을 만들겠다고 한다. 총지출을 820조9천억 원으로 12.8% 늘린, 역대 최대 증가율의 예산과 함께 추진되는 일이다. 횡재성 세수를 한 해에 다 쓰지 않고 쌓아 두겠다는 발상은 언뜻 노르웨이 석유기금을 떠올리게 한다. 문제는 겉모습이 아니라 작동 원리다.

노르웨이는 1990년 석유기금을 만들었고, 첫 입금은 1996년에 이뤄졌다. 이후 30년 가까이 원칙을 지킨 결과, 기금에 들어간 석유 수입 순유입은 5조4천2백억 크로네인데 기금 가치는 21조 크로네를 넘었다. 불어난 돈의 4분의 3이 원금이 아닌 운용수익이다. 규칙을 지킨 시간이 돈을 불린 것이다.

노르웨이 기금의 첫째 원칙은 원금 불가침이다. 석유 수입은 전액 기금으로 들어가고, 정부 예산에는 기금의 기대 실질수익률 만큼만 옮겨 쓸 수 있다. 2001년 도입된 이 재정준칙의 상한은 4%였고, 2017년 3%로 더 낮아졌다. 기금이 해마다 3% 넘게 불어나는 한 원금은 줄지 않는다. 석유가 바닥나도 기금이 남는 구조다. 경기가 나쁠 때는 지출을 늘리고 좋을 때는 줄여 경기 변동을 완화하는 역할도 한다.
둘째 원칙은 단일 통로다. 기금의 돈은 의회가 의결한 국가예산을 거쳐서만 쓰인다. 기금이 스스로 사업을 벌이거나 정부가 따로 꺼내 쓰는 길은 없다. 기금은 해외 자산에만 투자해, 오일머니가 국내 경기를 과열시키는 이른바 ‘네덜란드병’도 막았다. 정치인이 손댈 수 있는 틈을 제도적으로 막아 둔 것이다. 운용은 중앙은행 산하 투자관리기관이 맡되 운용 지침은 재무부와 의회가 정하고, 보유 종목과 수익률은 낱낱이 공개된다. 투명성이 곧 통제 장치다.

우리나라의 미래대응기금은 정반대로 설계됐다. 162조3천억 원 가운데 45조4천억 원은 기금이 직접 청년·성장동력·지방·교육 사업에 쓴다. 12조5천억 원은 국채 발행을 줄이는 데 들어간다. 나머지 104조4천억 원 이상은 여유재원으로 쌓아 두고, 필요하면 추가경정예산 없이 쓸 수 있다. 세수 결손이 나면 기금운용계획 변경만으로 대응할 수 있어 국회의 사전 통제가 약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노르웨이가 막아 둔 문을 한국은 처음부터 열어 두는 셈이다. 같은 분야의 사업이 일반회계와 기금 두 갈래로 집행되면 중복과 칸막이에 대한 우려도 커진다. 여기에 1972년부터 이어진 교육교부금의 내국세 연동 구조를 끊는 개편까지 함께 추진된다. 지방과 교육으로 갈 몫의 일부가 중앙정부 기금으로 옮겨 가는 중대한 변화가 예산 심사의 빠듯한 시간표에 묻혀 처리될 판이다.

더 큰 차이는 빚이다. 노르웨이는 남는 돈을 쌓았지만 한국은 빚을 내면서 쌓는다.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3조 원 안팎으로 사실상 균형인데도 국가채무는 1,413조8천억 원에서 1,519조8천억 원으로 106조 원 늘어난다. 적자국채 순증 규모가 108조 원에서 96조 원으로 줄어든다지만 여전히 100조 원에 가깝다. 빚을 갚을 수 있는 돈을 기금에 묶어 두고 국채는 계속 찍기 때문이다.

국가채무 이자비용은 올해 36조5천억 원에서 2030년 53조3천억 원으로 불어난다. 이자를 주고 빌린 돈으로 주식과 채권에 투자하는 것을 저축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국가채무비율이 48.3%로 낮아진다는 설명도 빚을 갚아서가 아니라 반도체 가격 상승으로 명목 GDP가 커진 분모 효과가 크다.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채무의 비중은 2030년 75.7%까지 오히려 높아진다.
수입의 지속성도 다르다. 노르웨이의 석유는 수십 년에 걸쳐 나오는 자원이지만 반도체 세수는 경기 사이클에 따라 출렁인다. 불과 몇 년 전에도 국세수입은 2022년 395조9천억 원에서 반도체 불황을 거치며 2024년 336조5천억 원으로 60조 원 가까이 줄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기금의 재원인 추가 세수가 2028년 61조7천억 원으로 급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029년부터 추가 세수가 아예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봤다. 세수 전망이 빗나가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적자국채로 돌아온다. 정부의 중기 계획에서도 2029년부터 총지출이 총수입을 넘어선다. 일시적 수입으로 항구적 지출을 만드는 순간, 기금은 미래를 위한 저수지가 아니라 불어난 지출을 메우는 임시 저장고로 전락한다.

물론 정부의 문제의식에도 나름 일리는 있다. 일반회계로 들어온 돈은 그해에 소진해야 하니 세수 변동을 흡수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과 세수를 채무 상환에 몰아 쓰면 국고채 발행이 221조8천억 원에서 100조 원대로 급감해 채권시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취지가 옳을수록 설계는 더 엄격해야 한다. 노르웨이처럼 규칙을 먼저 세워야 하는 이유다.

노르웨이의 교훈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지출 상한을 법으로 정해야 한다. 기금에서 예산으로 옮기는 돈은 원금이 아니라 운용수익의 일정 비율 이내로 묶어야 한다.

둘째, 통로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 기금의 모든 지출은 국회가 의결하는 본예산을 거치게 하고, 여유재원의 인출 요건은 세수 결손과 경제위기로 좁혀야 한다.

셋째, 빚부터 줄여야 한다. 여유재원은 원칙적으로 국채 상환에 먼저 쓰고, ‘추세선을 웃도는 추가 세수’의 산정 방식도 법률로 고정해 해마다 기준이 바뀌지 않게 해야 한다.

넷째,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여유재원의 운용 내역과 수익률, 사업비의 성과를 정기적으로 공시하고, 45조 원 규모의 사업비는 일반회계와 같은 엄격한 성과평가를 받게 해야 한다. 노르웨이 국민이 기금을 믿는 것은 기금이 무엇을 하는지 낱낱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호황기의 재정 규율은 불황기보다 지키기 어렵다. 노르웨이가 반세기 동안 지켜 온 것은 결국 정치로부터의 거리였다. 돈이 넘칠 때는 무엇이든 ‘미래 투자’라는 이름을 달 수 있다. 12월 2일까지 국회 심사가 기금의 이름이 아니라 규칙을 따지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야 미래대응기금이 미래를 소모하는 기금이 아닌, 미래를 지키는 기금이 될 수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