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뉴욕증시 반도체 붕괴 "대공황 조짐"... 중간선거 AI 데이터센터 후폭풍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뉴욕증시 반도체 붕괴 "대공황 조짐"... 중간선거 AI 데이터센터 후폭풍

엘리엇 무서운 경고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파티장에 울린 화재경보

월가에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중앙은행은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펀치볼을 치워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중앙은행이 아니라 파티에 참석한 손님 하나가 한가운데서 이렇게 외치고 있다. “화재경보기가 거의 다 울리고 있다!” 금융시장에 너무 달아올라 조만간 대폭락 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준엄한 경고이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폴 싱어가 이끄는 헤지펀드 엘리엇이다. 굴리는 돈만 8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0조 원이 넘는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지난 2일 공개한 엘리엇의 10월 투자자 편지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현재 상당한 약세장을 예고하는 경보음이 사실상 모두 울리고 있다.” 엘리엇은 지금 시장을 대공황 직전의 ‘광란의 20년대’에 빗댔다. 빚을 내 투자하는 열기, 새 기술에 대한 들뜬 기대가 그때와 꼭 닮았다는 것이다. 편지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새로 등장한 단어 하나다. FOGO, ‘포고’라고 읽는다. 풀어 쓰면 Fear of Getting Obliterated, 우리말로 옮기면 “완전히 박살 날지 모른다는 공포”앹 된다.

엘리엇은 기업 경영진을 몰아붙이는 ‘행동주의 투자자’로 유명하다. 한국에서는 삼성물산 합병에 반대하며 정부와 국제 소송까지 벌인 곳이다. 그만큼 만만치 않은 상대가 내놓은 경고이니, 월가가 귀를 기울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포고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쌍둥이 형제인 포모(FOMO)부터 알아야 한다. 포모는 ‘나만 놓칠까 봐 두려운 마음’이다. 동료가 주식으로 차를 바꾸다는 얘기를 들으면 잠이 안 온다. 단톡방에 수익 인증이 올라올 때마다 손가락이 근질거린다. 결국 ‘지금이라도 사야지’ 하며 뛰어든다. 한때 유행한 ‘벼락거지’라는 말을 떠올려 보면 된다. 남들은 다 버는데 나만 가만히 있다가 가난해지는 것 같은 기분, 그것이 포모의 정체다.
포고는 정반대다. ‘이러다 다 날리겠다’는 공포다. obliterate라는 단어는 원래 ‘글자를 지워 흔적도 없이 없앤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왔다. 조금 손해 보는 수준이 아니라 계좌가 통째로 사라지는 느낌이다. 재미있는 건 포모와 포고가 서로 다른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제 포모 때문에 산 사람이 오늘 포고 때문에 판다. 롤러코스터를 떠올리면 쉽다. 꼭대기까지 덜컹덜컹 천천히 올라갈 때는 설레지만, 내려올 때는 순식간이고 모두가 비명을 지른다.

내리막은 왜 그렇게 빠를까

비밀은 빚, 그러니까 레버리지에 있다. 오르는 장에서는 너도나도 돈을 빌려 주식을 산다. 그런데 가격이 꺾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담보로 맡긴 주식 값이 떨어지면 증권사는 돈을 채워 넣으라고 독촉하고, 투자자는 울며 겨자 먹기로 주식을 판다. 그 매도가 가격을 또 끌어내리고, 다음 사람이 또 판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공포가 공포를 낳는다. 엘리엇은 이를 “연쇄적이고 자기강화적인 강세장의 해체”라고 불렀다. 극장에서 누군가 “불이야!” 하고 외치면, 정말 불이 났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모두가 출구로 몰리는 것과 같다. 문은 좁고 사람은 많으니, 넘어지는 사람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다.

역사책에도 이 장면은 여러 번 나온다. 1929년 대폭락 뒤 미국 다우지수는 3년 만에 고점 대비 90% 가까이 주저앉았다. 닷컴 시절에는 회사 이름에 ‘닷컴’만 붙여도 주가가 뛰었고, 2008년 금융위기 직전에는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주택 대출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모두가 “이번엔 다르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 포모는 하룻밤 사이에 포고로 얼굴을 바꿨다. 오르는 데는 몇 년이 걸렸지만 무너지는 데는 몇 달이면 충분했다.

엘리엇이 본 도미노 조각들


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떤 도미노가 먼저 쓰러질까. 엘리엇이 꼽은 후보는 네 가지다. 계속 불어나는 미국의 나럏빚,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 은행이 아닌 펀드가 기업에 돈을 빌려주는 ‘사모신용’ 시장의 부실, 그리고 인공지능 열풍이다.

여기에 투자라기보다 도박에 가까운 거래도 시장을 비틀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것이 당일 만기 옵션이다. 쉽게 말해 ‘오늘 장 마감 전에 오를까, 내릴까’에 거는 내기다. 맞히면 몇 배, 틀리면 0이 된다. 실적보다 화제성으로 움직이는 밈 주식 투기도 마찬가지다. 엘리엇의 파트너 제시 콘은 최근 SNS에 이렇게 썼다. “지금 주식시장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실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기는 종목은 계속 이기고, 지는 종목은 크게 얻어맞는다.”

AI 이야기가 특히 흥미롭다. AI 회사가 인프라 회사에 투자하고, 그 돈이 다시 AI 회사의 매출로 돌아오는 ‘순환 투자’가 있다는 것이다. 친구끼리 서로 물건을 사 주면서 장사가 잘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돈이 정말 밖에서 들어오는지, 안에서 빙빙 도는 것인지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게다가 데이터센터를 짓는 막대한 돈의 상당 부분이 빚이라는 점도 엘리엇은 걱정한다. 엘리엇은 AI에 대한 기대가 꺾이면 그 충격이 “역사적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역설도 하나 있다. 호황을 떠받치는 기둥이 많으니 튼튼해 보이지만, 엘리엇은 오히려 그 가운데 한두 개만 흔들려도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기둥이 많다는 건 금이 갈 곳도 많다는 뜻이다.

겁먹기 전에, 안전벨트부터


물론 이 경고를 곧이곧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엘리엇은 원래 분기마다 어두운 전망을 내놓기로 유명한 곳이다. 게다가 올해 9월까지 엘리엇의 수익률은 2%에도 못 미쳤다. 같은 기간 S&P 500이 13% 가까이 오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파티에 와서 음악이 시끄럽다고 투덜대는 손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편지는 시장이 언제 무너질지도 말하지 않는다. 비관론도 꾸준히 외치면 언젠가는 맞는다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그래도 포고라는 말은 기억해 둘 만하다. 이 말은 ‘언제 떨어지나’에 대한 점괘가 아니라, ‘떨어질 때는 이렇게 떨어진다’는 안내문이기 때문이다. 빚이 많고 한쪽으로 쏠릴수록 내리막은 가파르다. 엘리엇은 “50년 역사에서 부진한 시기는 늘 시장 격변을 동반했고, 그 뒤에는 보기 드문 기회가 찾아왔다”고 썼다. 남들이 포모에 들떠 있을 때 조용히 실탄을 모아 두었다가,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 헐값이 된 자산을 주워 담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엘리엇식 생존법이다.

AI 반도체 기대로 달려온 한국 시장도 남의 일이 아니다. 엘리엇의 편지가 알려진 날 국내 반도체 대형주가 4~5%씩 미끄러지며 작은 예고편을 보여 줬다.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더 오를까”가 아니라 “내 생각이 틀렸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일지 모른다. 롤러코스터에 오를 때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경치가 아니라 안전벨트다. 파티는 즐기되, 출구가 어디인지는 알아 두자.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