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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소비자들, 가격 횡포 車 딜러들에 '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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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소비자들, 가격 횡포 車 딜러들에 '선전포고'



미국의 한 자동차 딜러상 홈페이지에 올라온 현대 팰리세이드 판매가. 정찰가에서 무려 1만6000달러(약 2000만원)에 육박하는 웃돈이 붙었다. 사진=카스쿱스이미지 확대보기
미국의 한 자동차 딜러상 홈페이지에 올라온 현대 팰리세이드 판매가. 정찰가에서 무려 1만6000달러(약 2000만원)에 육박하는 웃돈이 붙었다. 사진=카스쿱스

미국의 자동차 소비 문화는 다른 나라들과 큰 차이가 있다.

자동차를 만드는 기업에서 대리점을 통해 직접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딜러들이 자동차 제조업체로부터 차량을 구매한 뒤에 소비자들에게 다시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는 자동차가 없으면 살 수 없을 정도 국토가 넓은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워낙 국토가 넓은 관계로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집에서 여러 대를 굴려야 경우가 흔하고 필요할 때 기다릴 여유가 없는 생활 환경 때문에 이미 다양한 종류의 차량을 미리 갖춰 놓고 있는 딜러상들로부터 차를 구매하는 문화가 오래 전부터 굳어졌다.

딜러를 통한 자동차 판매 시스템이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불리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자동차 제조업체가 정한 권장소비자가격(MSRP)이 있긴 하지만 MSRP는 흥정을 위한 기준점으로 기능하는 데 그친다.

딜러와 어떻게 흥정을 하느냐에 따라 정찰가보다 얼마든지 저렴하게 구입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신차의 경우 제조업체 대리점을 통해서만 구입할 수 밖에 없어 가격을 둘러싼 흥정이 거의 불가능한 구조로 돼 있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차이가 큰 셈이다.

그러나 전통처럼 굳어진 이같은 흥정 문화가 최근 들어 붕괴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경색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차를 구매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면서 MSRP대로 구매하기는커녕 MSRP보다 높은 가격에 차를 구입하는 경우도 과거 어느 때보다 많아졌기 때문이다.

물론 수요가 많은 잘 나가는 차를 빨리 사고 싶은 경우에는 웃돈을 주는 것이 관행이었지만 신차 수급 자체가 불안해진 상황을 이용해 딜러상들이 앞다퉈 웃돈을 챙기는 일이 널리 확산되면서 자동차 소비자들 사이에서 ‘이건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는 반발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美 자동차 소비자 80% “정찰가에 웃돈 주고 신차 구입”


테슬라라티는 시장조사업체 GfK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의 내용이 충격적이라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소비자의 등골만 빼먹는 딜러업체들을 상대로 ‘소리 없는 반란’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고서에서 테슬라라티가 충격적이라고 언급한 대목은 지난 5~6월 신차를 구입한 미국 소비자 가운데 무려 80%가 MSRP에 또는 MSRP보다 웃돈을 주고 산 것으로 확인된 점이다. 딜러와 흥정을 통해 또는 딜러상끼리 경쟁 과정에서 종종 제공되는 할인 혜택을 받아 저렴하게 새차를 구입할 수 있었던 딜러 시스템만의 관행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뜻이다.

주목할 대목은 이처럼 웃돈이 횡행하는 전례 없는 현상을 경험한 소비자들의 생각이다. 과연 딜러상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웃돈을 챙기는 방식을 고수할 수 있을지 주목하게 하는 부분이다.

GfK 보고서에 따르면 딜러로부터 정찰가보다 높게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들 가운데 △34%는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는 수수료를 물고 샀다고 밝혔고 △31%는 가격 문제로 당초 염두에 뒀던 모델을 사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30%는 원하는 사양을 포기해야 했다고 밝혔고 △30%는 염두에 뒀던 딜러와 흥정이 잘 되지 않아 다른 딜러로부터 구입했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딜러상들이 심각하게 여겨야 할 것으로 보이는 부분은 웃돈을 주고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들의 경우 31%가 구입처를 다른 딜러로 바꾸기로 마음 먹었고 27%는 앞으로 살 자동차 브랜드를 바꾸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정찰가를 주고 산 소비자들의 경우 그 비율이 각각 14%, 10%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웃돈을 주고 신차를 사야 했던 소비자들의 배신감이 매우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테슬라라티는 전했다.

딜러업체들 입장에서 더 우려스러운 조사 결과는 울며겨자 먹기로 웃돈을 준 소비자들 가운데 31%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용했던 딜러를 이용하지 말 것을 권유하겠다고 밝힌 대목이다. 자신이 배신감을 느낀 것을 넘어 지인들에게까지 웃돈 받는 딜러를 피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할 정도로 웃돈을 챙기는 것에 반감을 드러냈다는 뜻이다.

◇자동차 제조업체들, 대안 마땅치 않아 골머리


테슬라라티는 신차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최근의 상황을 악용해 딜러상들이 웃돈을 앞다퉈 챙기는 행위에 대해 소비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것은 자동차 제조업체들에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미 정찰가를 권유는 해왔지만 실제로는 딜러상들이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게 미국의 자동차 판매 시스템인데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처럼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어서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것. 딜러들은 제조업체의 대리점이 아니라 독립 사업자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딜러들의 가격 횡포에 배신감을 느낀 소비자들이 브랜드에 대한 배신감까지 아울러 느끼는 현상은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심히 우려할만한 사안이라는 것.

테슬라라티는 따라서 이를 계기로 딜러상들에게 판매를 모두 맡기는 방식에서 벗어나 세계 최대 전기차 제조업체 테슬라가 사용하고 있는 직접 판매 방식이나 구독 서비스 형태의 판매 방식 등을 새롭게 도입하는 방안을 제조업체들이 검토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내다봤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