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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EU 지도부, ‘이·팔 전쟁’ 입장 둘러싸고 갈등 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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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EU 지도부, ‘이·팔 전쟁’ 입장 둘러싸고 갈등 표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왼쪽)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왼쪽)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 사진=로이터
유럽연합(EU) 지도부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대한 공식 입장을 놓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이번 전쟁이 일어난 지 1주일이 지난 시점인데도 불협화음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7일(이하 현지시간) 긴급 정상회의까지 열어 EU의 입장 정리를 놓고 논의했으나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다.

EU 지도부가 교통 정리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스라엘의 반격이 갖는 정당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이견 표출


18일 유로뉴스에 따르면 무엇보다 EU 지도부를 이끄는 두 지도자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 사이에 견해차가 있다.

미셸 EU 정상회의 의장은 전날 열린 긴급 정상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국제법과 국제사회의 인도주의 관련 법규의 테두리 안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가 있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격이 자위권 행사의 일환이라는 점에 대해 EU 정상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얘기다.

다만, 그는 가자 지구의 알아흘리 아랍병원이 공습을 당해 5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에 대해서는 “사실로 확인된 것으로 보인다”라며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은 국제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아흘리 아랍병원에 대한 공습이 이스라엘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팔레스타인 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입장인 셈이다.

그러나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좀 더 구체적인 확인이 필요하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미셸 의장과는 다르게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두 지도자는 이스라엘이 이미 예고한 지상군 투입을 앞두고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 지구를 전면 봉쇄한 조치에 대해서도 시각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앞서 주제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가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 봉쇄 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것을 두고 미셸 의장은 “기본적인 기반 시설을 차단하고 물과 전기까지 끊은 조치는 국제법 위반이다”라며 봉쇄 조치를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반면에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가자 지구 주민들에게 물을 공급하는 것이 인권 차원에서 필수적이다”라면서도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가 국제법 위반인지에 대해서는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미셸 의장은 벨기에 총리를 했던 정치인이고,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독일 국방부 장관을 지낸 정치인이다.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 독단’ 비판론 고개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에 대한 비판론이 EU 회원국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이스라엘을 직접 방문하기도 한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은 이번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이스라엘의 반격이 자위권 행사 차원이라는 점을 강조해 왔으나 가자 지구에 대한 전면 봉쇄 조치 등이 국제법의 테두리를 벗어났다는 EU 지도부 내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디언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전쟁이 터진 지 며칠이 지난 뒤에야 뒤늦게 국제법을 존중하는 범위에서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두고 비판론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EU 지도부 내의 이 같은 불협화음은 EU 외교정책의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확산되는 양상도 보인다.

가디언에 따르면 미셸 의장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지난 13일 이스라엘을 방문한 사실도 언론 보도를 통해서 알게 됐다”라며 “이스라엘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문제를 비롯해 EU의 외교정책은 법적으로 EU 정상회의의 소관 사항이지 EU 집행위에는 권한이 없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EU의 대외정책은 EU 회원국 정상들이 논의해 정하는 것이지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이 권한도 없이 일방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행위는 독단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