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란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습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제거했다”고 주장했지만 미국 고위 당국자들은 정작 핵무기급 농도의 우라늄이 어디로 옮겨졌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우라늄이 외부로 이동된 사실을 인정하며 핵물질의 실질적 통제가 어려운 상황임을 시사했다.
◇ 고농축 우라늄 400㎏, 공습 전 이미 이사파한으로 이전 정황
23일(이하 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전날 ABC방송에 출연한 자리에서 “핵무기 9~10개를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우라늄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향후 이란과 협의해야 할 과제”라며 “다만 이란은 그 연료를 무기화할 수 있는 장비를 잃었기 때문에 능력 자체는 크게 후퇴했다”고 말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CNN과 인터뷰에서 “이란은 이 물질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NYT와 인터뷰에서 “그 우라늄이 마지막으로 확인된 시점은 이스라엘의 공습 전 약 일주일 전”이라고 말했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우라늄이 이동됐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이 우라늄은 핵 연료용 캐스크에 보관돼 있으며 크기상 차량 10대의 트렁크에 나눠 실을 수 있는 수준이라는 점에서 미군의 정밀 폭격을 피해 은닉된 것으로 추정된다.
◇ “시설 파괴는 심각…그러나 모든 핵심 장비 옮기긴 어려워”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과 댄 케인 합참의장은 22일 기자회견에서 “공습으로 포르도와 나탄즈, 이스파한의 핵시설 3곳 모두 심각한 손상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위성사진 분석 결과 포르도 지하시설의 입구 주변에는 미군이 투하한 3만파운드짜리 벙커버스터 폭탄의 구멍이 여러 개 관측됐다.
다만 나탄즈 시설의 경우 지상 원심분리기 시설이 파괴되고 전력 공급이 끊기며 핵농축 시스템 전반이 붕괴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전력 중단으로 원심분리기의 회전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졌고, 대부분이 파손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미 정부 관계자는 “포르도에서 장비를 전부 철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핵시설 관련 설계 문서 일부는 시설 지하 깊숙이 묻혀 있었고, 이는 재구축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핵 개발 중단했다”던 이란, 사실상 20년째 지속
이란은 공식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부인하고 있으나 NYT는 이스라엘이 과거 확보한 이란 핵 관련 아카이브 자료와 미국 정보당국 분석 등을 종합해 볼 때 “이란의 핵무기 개발 시도는 사실상 2003년 이후 중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2015년 미국과의 핵합의(JCPOA) 체결 이후 IAEA의 감시를 수용했으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를 “재앙”이라며 파기한 이후 감시 카메라를 제거하고 사찰도 거부해왔다.
현재는 전쟁 발발로 IAEA의 현장 사찰도 전면 중단된 상태다. 그로시 사무총장은 “현장에 있던 사찰단이 언제 복귀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며 “포르도나 나탄즈처럼 이미 파괴된 시설에 접근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 “수년간 재건 어려울 것”…그러나 이란, 새 시설도 준비 중
미국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NYT에 “이번 공격으로 이란의 핵무기 능력은 2~5년 이상 후퇴했다”고 평가했다. 이란은 나탄즈 남쪽에 새로운 지하 핵시설을 건설 중이지만, 아직 본격적인 가동은 시작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NYT는 “미국이 이란의 핵능력을 실질적으로 제한했던 것은 오히려 2015년 오바마 행정부의 합의였다”며 “물리적 공격보다 외교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