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광범위한 관세 부과를 불법이라고 판단한 배경에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조항 해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판결은 대통령의 긴급 권한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를 가르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 IEEPA 어떤 법인가
IEEPA는 지난 1977년 제정된 법으로 미국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때 대외 거래·투자·금융 흐름을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구체적으로는 자산 동결, 금융 거래 차단, 수출입 제한 등이 가능하다.
즉 IEEPA는 경제·금융 제재 수단이지 관세 부과를 위한 법률이 아니었다는 점이 이번 판결의 핵심이다.
◇ 법원이 문제 삼은 부분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IEEPA는 ‘관세(tariff)’라는 용어를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과세 권한은 미국 헌법상 의회가 보유한 권한이며 IEEPA는 이를 대체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또 “만약 의회가 대통령에게 관세 부과 권한을 위임하려 했다면 법률에 ‘관세’ ‘세율’ 같은 명확한 용어가 반드시 포함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 왜 불법 판결 나왔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4월 ‘경제 비상사태’를 선언하며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 일괄적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그가 근거로 든 것이 바로 IEEPA였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비상사태라도 세금을 신설하거나 부과하는 권한까지는 위임되지 않았다”고 보면서 대통령 권한 남용에 해당한다고 결론 내렸다.
◇ 대법원으로 간 쟁점
이 사건은 결국 연방대법원으로 향하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미국 헌법상 ‘중대한 질문(Major Questions)’ 원칙이 적용될지 주목한다. 이는 대통령이 사회·경제 전반에 영향을 주는 중대한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의회의 명시적 승인이 없으면 기존 법률을 근거로 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브루킹스연구소는 “IEEPA가 대통령에게 무제한적 세금·관세 권한을 주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대법원이 이를 확인하면 향후 모든 행정부의 긴급권 해석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 교역국·소비자에 미치는 영향
만약 대법원이 이번 판결을 확정한다면 한국·EU·일본 등 교역국 기업들은 환불 청구 및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고 나설 수 있다. 동시에 미국 내에서는 관세 여파로 소비자 물가 상승과 경기 위축 우려가 벌써 확산되고 있다. 최근 소비자심리지수 하락과 인플레이션 기대치 상승도 같은 맥락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