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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전자, ASML '하이 NA EUV' 품었다…글로벌 반도체 '기술 전쟁' 새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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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삼성전자, ASML '하이 NA EUV' 품었다…글로벌 반도체 '기술 전쟁' 새 국면

1.1조 원 투입, 2나노 공정 승부수…파운드리 1위 TSMC 정조준
먼저 장비 받은 인텔, 신중론 TSMC…3사 3색 전략에 시장 판도 '요동'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사진=오픈AI의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세계 반도체 패권 경쟁이 초미세 공정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꿈의 장비' 확보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절대 강자 TSMC와 기술 초격차를 노리는 인텔을 추격하고자 약 1조1000억 원(약 7억7300만 달러)에 이르는 거액을 차세대 노광장비에 투입하기로 했다. 반도체 회로를 더욱 미세하게 새길 수 있는 ASML의 최신 '하이 NA EUV' 장비를 먼저 확보해, 2나노 이하 공정에서 판도를 바꿀 승부수로 삼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16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 최첨단 장비를 자사의 2나노 공정과 그 이후 세대 공정에 배치할 계획이다. 이 장비로 생산하는 고성능·저전력 칩은 삼성전자의 차세대 모바일 프로세서 '엑시노스 2600'은 물론, 테슬라의 차세대 인공지능(AI) 하드웨어 같은 미래 기술의 핵심 두뇌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한때 주춤했던 설비 투자를 다시 공격적으로 전환하며 세계 파운드리 경쟁의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출사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게임 체인저' 하이 NA EUV 장비는 무엇인가


반도체 성능은 웨이퍼 위에 얼마나 더 미세하고 정교한 회로를 새기느냐에 달렸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바로 이 회로 패턴을 그리는 핵심 장비다. 이번에 삼성이 도입을 결정한 '하이 NA(High Numerical Aperture) EUV'는 기존 EUV 장비의 기술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기술이다.

기존 EUV 장비 렌즈의 개구수(NA)가 0.33인 데 반해, 하이 NA EUV는 이를 0.55까지 끌어올렸다. 빛을 모으는 능력이 크게 향상되면서 약 1.7배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으며, 트랜지스터 집적도를 이론상 거의 3배 가까이 높일 수 있다. 이러한 정밀도는 더 낮은 전력으로 더 높은 성능을 내는 칩 생산을 가능하게 해, 앞으로 10년간 반도체 미세화 경쟁에서 없어서는 안 될 장비로 꼽힌다.

이번에 도입하는 '트윈스캔 EXE:5200B' 모델은 연구개발용 이전 모델(EXE:5000)보다 시간당 웨이퍼 처리량을 개선해 양산에 가장 알맞다. 대당 가격은 약 5500억 원에 이른다. 앞서 2025년 7월 인텔이 세계 최초로 이 양산형 모델을 인도받았고, 한 달 뒤인 8월에는 SK하이닉스가 D램 생산을 위해 이천 M16 공장에 도입하며 하이 NA 시대의 막을 열었다.

삼성·TSMC·인텔, 셈법 다른 '초격차' 전략


삼성전자의 대규모 투자는 경쟁사들과는 다른 전략적 행보를 보인다는 점에서 세계 반도체 업계의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삼성은 2018년 세계 최초로 7나노 공정에 EUV를 도입했고 2020년에는 D램 생산에도 이를 적용하며 기술 혁신을 이끌어 왔다. 이번 하이 NA EUV 조기 도입 결정은 과거 기술 혁신을 주도했던 '초격차' 전략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반면 파운드리 1위 기업인 TSMC는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내외 언론 보도에 따르면 TSMC는 2나노 공정까지는 기존 EUV 장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1.4나노 공정에 이르러서야 하이 NA EUV를 일부 도입하기 시작할 방침이다. TSMC의 이러한 행보는 공정 안정성과 수율을 우선시하는 기존 전략을 고수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은 인텔이다. 인텔은 2025년 7월 첫 장비를 확보한 데 이어, 최근 ASML에 대한 하이 NA EUV 주문량을 1대에서 2대로 늘렸다. IT 전문매체 WCCF테크와 비츠&칩스에 따르면, 인텔은 이 장비를 활용해 2027년 위험부담생산, 2028년 양산을 목표로 하는 14A(1.4나노급) 공정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한동안 설비투자에 신중했던 삼성전자가 다시 적극적인 투자 주기로 돌아섰다고 분석한다. ASML의 가장 앞선 장비에 먼저 투자하는 것은 단순한 장비 구매를 넘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기술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는 삼성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준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거인들의 전략이 앞으로 10년의 산업 지형도를 어떻게 그려나갈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