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V 없이 '맨주먹' 공정으로 한계 돌파…칩 자립 가속
신작 '메이트 80' 되레 가격 인하…수율·공급망 장악 과시
신작 '메이트 80' 되레 가격 인하…수율·공급망 장악 과시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주도의 대중국 포위망이 촘촘해질수록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는 오히려 독기를 품고 있다. 화웨이가 플래그십 스마트폰 '메이트 80(Mate 80)'과 함께 공개한 자체 AP '기린(Kirin) 9030'은 그 생존 본능의 결정체다. 미국이 14나노미터(nm) 이하 첨단 장비 반입을 원천 봉쇄한 상황에서 보란 듯이 내놓은 '7나노급' 칩셋은, 단순한 신제품 출시를 넘어 반도체 전쟁의 판도를 뒤흔드는 '도발'로 읽힌다. 기린 9030의 등장은 미국의 제재가 중국의 시계를 멈추기는커녕, 독자 생존의 길을 앞당기는 촉매제가 되었음을 시사하는 뼈아픈 반증이다.
美가 죽인 칩, 보란 듯 부활
반도체 업계에서 기린 칩의 역사는 처절한 '생존 투쟁기'다. 2020년 미국의 제재 수위가 정점에 달했을 때, 시장은 기린 칩에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내렸다. 첨단 공정 접근이 차단된 상태에서 화웨이의 반도체 사업은 고사(枯死)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화웨이는 끈질겼다. 2020년 '메이트 40' 이후 침묵을 깨고 2023년 '메이트 60'으로 복귀하며 건재함을 알렸다. 이번 '메이트 80'에 탑재된 '기린 9030 프로'는 화웨이가 가장 어두운 터널을 완전히 빠져나왔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외부의 거센 압박 속에서도 R&D(연구개발)의 끈을 놓지 않고 기술적 반복을 거듭한 결과다.
EUV 없는 '맨주먹' 혁신
기린 9030의 성취는 장비의 열세를 설계와 공정 최적화로 극복한 '시스템 혁신'에 있다. 물리적 미세 공정 축소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화웨이는 우회로가 아닌 정면 돌파를 택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기린 9030 양산의 열쇠로 SMIC의 DUV(심자외선) 장비를 활용한 'N+X' 공정을 지목한다. 기존 장비로 회로를 여러 번 겹쳐 그리는 다중 노광과 반복 패터닝을 통해 하위 노드의 성능을 모사하는 기술이다. 설계 규칙을 조이고 공정 스텝 수를 늘려야 해 비용이 치솟고 수율 확보가 난해한 '고육지책'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 비효율적인 방식을 유일한 생존 파이프라인으로 만들어냈다.
공정의 한계는 패키징과 아키텍처 기술로 메웠다. 칭화대 웨이 사오쥔 교수의 분석처럼, 중국은 다이 스태킹(die-stacking)과 고도의 이종 집적 기술로 전력 효율을 끌어올렸다. 하드웨어의 물리적 열세를 시스템 설계 역량으로 상쇄하며 7나노급 퍼포먼스를 구현한 것이다.
수율 잡았다…'가격 파괴' 자신감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용 부담이 큰 'N+X' 공정을 쓰고도 완제품 가격을 낮췄다는 것은, 화웨이가 수율을 안정화 단계를 넘어 수익을 낼 수 있는 수준으로 통제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나아가 EDA(전자설계자동화)부터 소재, 부품, 장비에 이르는 내수 공급망 전반에서 비용 통제력을 확보했다는 강력한 방증이다.
리처드 위 화웨이 컨슈머 BG 회장이 언급한 자체 OS '하모니OS 6'의 도약과 안드로이드·iOS와의 '3강 체제' 선언 또한 이러한 자신감의 연장선상에 있다.
제재의 역설, '독자 노선' 굳혔다
기린 9030은 화웨이가 숱한 좌절을 딛고 일어선 결과물이자, 외부 압박이 기술적 돌파구를 여는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향후 중국 반도체 산업은 공정 한계 최적화, 아키텍처 혁신, 그리고 공급망의 완전한 국산화를 향해 속도를 낼 것이다.
지정학적 기술 패권 경쟁은 중국 반도체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지만, 역설적으로 중국은 그곳에서 독자 생존이라는 새롭고도 견고한 길을 닦고 있다. 기린 9030은 그 길 위에서 중국이 쏘아 올린 가장 위협적인 신호탄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2026 대전망] 혁신·포용의 'K-AI시티' 전환](https://nimage.g-enews.com/phpwas/restmb_setimgmake.php?w=270&h=173&m=1&simg=2025121516594408240c35228d2f510625224987.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