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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캄브리콘 "엔비디아 빈자리 접수"…2026년 50만개 생산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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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디코드] 中 캄브리콘 "엔비디아 빈자리 접수"…2026년 50만개 생산 '승부수'

SMIC 7나노 기반 '쓰위안' 주력…수율 20% '치명적 약점'
화웨이와 정면승부…바이트댄스·알리바바 확보해 '몸집 불리기
중국 AI 반도체 기업 캄브리콘이 2026년까지 칩 생산량을 3배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하며 '반도체 자립'의 선봉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캄브리콘은 미국의 제재로 생긴 엔비디아의 공백을 노리지만, 위탁생산을 맡은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이 20%에 불과해 양산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AI 반도체 기업 캄브리콘이 2026년까지 칩 생산량을 3배 이상 늘리겠다고 선언하며 '반도체 자립'의 선봉장을 자처하고 나섰다. 캄브리콘은 미국의 제재로 생긴 엔비디아의 공백을 노리지만, 위탁생산을 맡은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이 20%에 불과해 양산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중국의 인공지능(AI) 칩 설계업체인 캄브리콘(Cambricon Technologies Corp.)이 2026년까지 칩 생산량을 현재의 3배 이상으로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목표를 수립했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로 인해 엔비디아(Nvidia)가 떠난 거대한 시장 공백을 메우는 동시에, 중국 내 최대 경쟁자인 화웨이(Huawei)로부터 시장 점유율을 뺏어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하지만 중국 최대 파운드리(위탁생산) 업체인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이 20% 수준에 머물고 있어, 실제 양산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2026년 50만 개 목표…'쓰위안'으로 승부


4일(현지 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베이징에 본사를 둔 캄브리콘은 2026년 총 50만 개의 AI 가속기를 공급할 준비를 하고 있다.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캄브리콘의 올해 생산량이 약 14만 2000개임을 감안하면, 2년 내에 생산 규모를 3배 이상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소식통에 따르면, 캄브리콘의 이 같은 증산 계획에는 회사의 최첨단 칩 모델인 '쓰위안(Siyuan) 590'과 '쓰위안 690'이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캄브리콘은 전체 목표 생산량 중 최대 30만 개를 이 두 가지 고성능 모델로 채울 예정이다. 해당 칩들은 SMIC의 최신 제조 공정인 'N+2' 7나노미터(nm) 기술을 통해 주로 생산될 것으로 알려졌다.

캄브리콘의 생산 확대 움직임은 중국 정부가 올해 초부터 엔비디아 제품 사용을 적극적으로 억제하면서 시작된 '탈(脫) 미국 기술' 기조와 맞물려 있다. 중국 칩 제조사들은 이 기회를 틈타 급성장하고 있으며, 화웨이 역시 내년까지 최첨단 AI 칩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릴 준비를 하고 있다. 여기에 상하이에서 데뷔를 앞둔 신생 기업 무어 스레드(Moore Threads)까지 가세하며 중국 내 AI 반도체 시장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엔비디아 떠난 자리, 캄브리콘 '독식' 시도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월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서 사실상 차단됐다"고 언급하며, 이러한 상황이 화웨이와 같은 중국 현지 경쟁자들의 부상을 촉진할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행정부가 엔비디아의 최신 칩인 'H200'의 중국 판매 허용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베이징 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거나 채택을 방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갈등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캄브리콘이다. 캄브리콘은 지난 9월 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14배 폭증했으며, 2021년 이후 시가총액은 9배나 급등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캄브리콘은 현재 전체 주문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고객사 바이트댄스(ByteDance)에 이어, 알리바바 그룹(Alibaba Group) 등 중국 내 거대 빅테크 기업들로부터 새로운 주문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율 20%' 딜레마…SMIC 기술 한계


그러나 캄브리콘의 장밋빛 전망 뒤에는 심각한 기술적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캄브리콘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파트너사인 SMIC의 생산 능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SMIC의 기술력이 여전히 글로벌 표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현재 SMIC가 생산하는 캄브리콘의 최상위 모델인 590과 690 칩의 수율은 불과 2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생산된 칩 5개 중 4개가 불량품으로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도체 산업에서 수율은 곧 수익성과 직결되는 핵심 지표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세계 1위 파운드리인 대만 TSMC의 경우, SMIC보다 3세대(약 7년) 앞선 최신 2나노 공정에서도 이미 60% 이상의 수율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와 비교하면 SMIC의 7나노 공정 수율은 상업적 양산이라 부르기에 민망한 수준이다.

또한, AI 가속기 제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칩의 공급 부족 문제도 잠재적인 병목 현상으로 지적된다. 중국 기업들은 아직 자체적인 HBM 기술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화웨이의 최신 '910C' AI 가속기조차 여전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메모리 칩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파운드리 확보 전쟁…미·중 생태계 분열


캄브리콘이 직면한 또 다른 과제는 한정된 SMIC의 생산 라인을 두고 화웨이 등 다른 경쟁자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이다. AI 개발 속도뿐만 아니라, 중국 내에서 가장 앞선 칩 제조사인 SMIC의 생산 능력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목표 달성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로버트 리(Robert Lea) 애널리스트는 "화웨이, 바이두, 캄브리콘 등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중국 내 AI 가속기 공급이 상당히 증가했지만, 급증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SMIC의 첨단 7나노 칩의 낮은 생산 수율이 이러한 불균형을 악화시키고 있으며, 당분간 주요 병목 현상으로 남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방향성은 명확하다. 지정학적 긴장과 엔비디아 칩 공급의 불확실성은 중국 AI 기업들을 자국 칩 공급업체로 몰아넣고 있다. 리 애널리스트는 "중국과 미국의 엇갈린 전략은 결국 글로벌 AI 생태계의 분열(bifurcated global AI ecosystem)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6년 컴퓨터 과학자 천 톈쓰(Chen Tianshi)가 설립한 캄브리콘은 중국 정부의 반도체 자립 추진 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로 꼽힌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올해에만 반도체 자립을 위해 약 980억 달러(약 144조 원)를 쏟아부을 것으로 예상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칩 공급 차단 노력을 비판하며, 워싱턴의 정책적 우선순위에 대한 취약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내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하이곤(Hygon), 메타X(MetaX) 등 급부상하는 경쟁자들과 함께 캄브리콘이 주도하는 중국 AI 반도체 산업은 딥시크(DeepSeek)에서 알리바바에 이르는 중국 테크 기업들이 오픈AI나 구글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인지, 아니면 낮은 수율과 기술적 한계에 봉착해 '그들만의 리그'에 머물 것인지 기로에 서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