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삼성전자, '광(光) 전쟁' 선포…2027년 CPO로 TSMC 잡는다

글로벌이코노믹

[실리콘 디코드] 삼성전자, '광(光) 전쟁' 선포…2027년 CPO로 TSMC 잡는다

AI 병목 해결사 실리콘 포토닉스…싱가포르 연구 거점 전진 배치
TSMC 연합군 '선점', 삼성은 '인텔 인력' 영입으로 승부수
데이터 전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AI 반도체의 성능을 제한하던 구리 배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빛(Light)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이 차세대 전장으로 떠올랐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데이터 전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AI 반도체의 성능을 제한하던 구리 배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빛(Light)으로 신호를 주고받는 '실리콘 포토닉스' 기술이 차세대 전장으로 떠올랐다. 사진=오픈AI의 챗GPT-5.1이 생성한 이미지
삼성전자가 '실리콘 포토닉스(Silicon Photonics·SiPh)' 기술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의 판을 흔들고 있다. 고성능 AI 프로세서의 최대 난제로 꼽히는 데이터 병목 현상을 해결하고, 선두 주자인 대만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한 전략적 포석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R&D(연구개발) 네트워크를 대폭 확장하며 2027년 'CPO(Co-Packaged Optics·패키지 내 광학 소자 탑재)' 상용화를 목표로 내걸었다. 업계에서는 이 시점이 차세대 패키징 시장에서 삼성과 TSMC가 진검승부를 벌이는 원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9일(현지시각) 디지타임스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실리콘 포토닉스를 미래 핵심 기술로 지정하고 기술 확보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 개발을 넘어, TSMC가 장악하고 있는 2.5D 및 3D 패키징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한 '게임 체인저'로 광(光) 기술을 선택했음을 시사한다.

AI 시대, 전자는 지고 광자가 뜬다


지난 10년 가까이 이론적 영역에 머물러 있던 실리콘 포토닉스가 급부상한 배경에는 거대언어모델(LLM) 등 대규모 AI 모델의 등장이 자리 잡고 있다.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칩 설계 기업들은 기존 구리 배선이 가진 물리적 한계에 직면했다. 데이터 처리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구리선은 대역폭 부족과 발열, 막대한 전력 소모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 포토닉스는 전기 신호를 레이저 빛으로 변환해 미세한 도파로(Waveguide)를 통해 전송한 뒤, 수신부에서 다시 전기 신호로 바꾸는 기술이다. 실리콘의 높은 굴절률을 이용해 빛을 가두고 제어함으로써, 전기 저항 없이 테라바이트(TB)급의 초고속 데이터 전송을 가능케 한다. 꽉 막힌 고속도로 위에 고속철도(KTX) 선로를 까는 것과 같은 혁명적 변화다.

인텔이 2016년 데이터센터용 트랜시버를 통해 이 기술을 처음 상용화했을 때만 해도 시장의 반응은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AI 워크로드가 폭증하며 전례 없는 데이터 이동 수요가 발생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이제 '빛'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CPO, 10배 속도에 전력 반…파운드리 최전선


기술 경쟁의 최전선은 단연 CPO(Co-Packaged Optics)다. 기존에는 광학 모듈을 서버 외부에 장착했다면, CPO는 연산 칩과 광학 부품을 하나의 기판(Substrate) 위에 함께 패키징하는 방식이다. TSMC 측 분석에 따르면, CPO 기술이 상용화 단계에 이를 경우 데이터 처리량은 최대 10배 증가하고 전력 소모는 절반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물론 기술적 난관은 여전하다. 광학 소자는 온도 변화에 극도로 민감해 열 관리가 필수적이며, 멀티 칩 모듈 내에서 하나의 소자만 고장 나도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리스크가 있어 설계 난이도와 비용 부담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을 선점하는 기업이 차세대 파운드리 시장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현재 스코어는 TSMC가 다소 앞서 있다. TSMC는 엔비디아를 비롯해 아이어 랩스(Ayar Labs), 설레스티얼 AI(Celestial AI), 라이트매터(Lightmatter) 등 실리콘밸리의 유망 스타트업들과 강력한 동맹을 맺고 기술 상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지난 'GTC 2025' 컨퍼런스에서 광 기반 스위치 칩을 소개하며 "이 기술이 데이터센터의 운영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삼성, TSMC 출신 인재 영입…싱가포르 교두보


이에 맞서는 삼성전자의 전략은 '글로벌 R&D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기술 내재화와 인재 영입이다. 삼성은 싱가포르에 위치한 연구 센터를 확장하며 실리콘 포토닉스 연구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주목할 점은 이 센터를 이끄는 인물이 TSMC 출신의 킹지엔 추이(King-Jien Chui)라는 사실이다. 그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남석우 최고기술경영자(CTO) 산하의 본사 기술 개발 조직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또한 삼성은 인텔에서 CPO를 연구했던 핵심 인력들을 공격적으로 영입하며 엔지니어링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은 한국을 중심으로 싱가포르, 인도, 미국, 일본을 잇는 R&D 벨트를 가동 중이다. 특히 싱가포르는 A*STAR(싱가포르 과학기술청) 산하 연구소들과 광학 파운드리인 컴파운드텍(CompoundTek), 그리고 고대역폭메모리(HBM)용 패키징 장비 핵심 공급사인 ASMPT의 본사가 위치해 있어 기술 협력의 최적지로 꼽힌다. 삼성은 이곳에서 브로드컴과도 실리콘 포토닉스 개발을 위한 협력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들은 삼성이 실리콘 포토닉스를 파운드리 고객 확보를 위한 중요한 '레버리지(지렛대)'로 보고 있다고 분석한다. TSMC가 선점한 기존 패키징 시장의 판도를 뒤집을 수 있는 '이퀄라이저(균형추)'로서 광 기술에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리콘 포토닉스가 향후 파운드리 시장에서 HBM에 버금가는 전략적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TSMC 연합, 100Tbps급 서브시스템 시연


삼성이 추격을 서두르는 사이, TSMC 진영은 이미 구체적인 성과물을 내놓으며 격차 벌리기에 나섰다. 지난 11월 말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2025 TSMC 유럽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OIP) 포럼'에서 TSMC의 파트너사인 알칩 테크놀로지(Alchip Technologies)와 아이어 랩스는 양산 가능한 수준의 광 연결 서브시스템을 시연했다.

이 시스템은 TSMC의 'COUPE(Compact Universal Photonic Engine)' 플랫폼을 기반으로 아이어 랩스의 광학 입출력 칩인 'TeraPHY'와 알칩의 전기 인터페이스 다이를 결합한 형태다. 가속기당 100Tbps(초당 테라비트) 이상의 대역폭을 지원하며, 'UCIe(Universal Chiplet Interconnect Express)' 표준을 통해 통신한다. 톰스 하드웨어(Tom’s Hardware)는 이 시스템에 대해 "자체적인 광학 스택을 구축하기 어려운 개발자들을 위한 최적의 솔루션"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설계는 프로토콜 변환 칩렛, 전기 집적회로(EIC), 그리고 광학 칩 등 세 가지 핵심 칩렛으로 구성된다. 특히 포럼에서 공개된 레퍼런스 디자인은 가속기 다이, HBM 스택, 광학 엔진 등을 단일 기판 위에 모두 통합한 형태로, 장치당 256개 이상의 광학 포트로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TSMC 진영의 기술이 단순한 개념 증명을 넘어 상용화 단계에 깊숙이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반도체 업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제시한 2027년 상용화 목표는 사실상 TSMC와의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2030년경에는 실리콘 포토닉스가 칩 레벨까지 통합되면서 파운드리 시장의 핵심 경쟁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폭증하는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TSMC 모두 생태계 파트너 확보와 기술 리더십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다. TSMC가 스타트업과의 연합 전선을 통해 발 빠른 상용화를 꾀하고 있다면, 삼성은 글로벌 거점을 활용한 자체 역량 강화로 '초격차' 역전을 노리는 모양새다. 2027년, 반도체 패키징 시장의 패권이 '빛'을 지배하는 자에게 넘어갈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ditor’s Note]


반도체의 속도는 이제 전자가 아닌 광자(Photon)에 달렸습니다. 무어의 법칙이 물리적 한계에 봉착하면서, 칩을 어떻게 연결하고 패키징하느냐가 칩 자체의 성능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삼성전자가 싱가포르 R&D 센터를 거점으로 실리콘 포토닉스에 승부수를 던진 것은 단순한 기술 추격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HBM 시장에서의 실기를 만회하고, 다가올 '포토닉스 시대'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입니다. 2027년 상용화라는 삼성의 시간표가 계획대로 지켜진다면, 파운드리 시장의 만년 2위 꼬리표를 뗄 수 있는 결정적 기회가 될 것입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