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코딩만으론 어림없다"… AI가 불러온 신입 개발자의 '취업 대재앙'

글로벌이코노믹

"코딩만으론 어림없다"… AI가 불러온 신입 개발자의 '취업 대재앙'

빅테크 신입 채용 3년 새 50% 급감… "Z세대 뽑느니 AI 쓰겠다"
코딩 넘어 영업·기획까지 요구… 공대 졸업장 '무용론' 확산
인공지능(AI)이 신입 개발자가 설 자리를 빠르게 지우고 있다. 과거 초급 엔지니어가 도맡던 단순 코딩과 디버깅(오류 수정)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전 세계 기술(테크) 업계에 공대 출신 신입 채용문이 굳게 닫히고 있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인공지능(AI)이 신입 개발자가 설 자리를 빠르게 지우고 있다. 과거 초급 엔지니어가 도맡던 단순 코딩과 디버깅(오류 수정)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전 세계 기술(테크) 업계에 공대 출신 신입 채용문이 굳게 닫히고 있다. 이미지=빙 이미지 크리에이터
인공지능(AI)이 신입 개발자가 설 자리를 빠르게 지우고 있다. 과거 초급 엔지니어가 도맡던 단순 코딩과 디버깅(오류 수정) 업무를 AI가 대체하면서, 전 세계 기술(테크) 업계의 신입 채용문이 굳게 닫히고 있다.

'레스트 오브 월드(Rest of World)'는 지난 9(현지시각) 전 세계 엔지니어링 전공자들이 직면한 '일자리 대재앙(Jobpocalypse)'의 실태를 심층 보도했다.

"졸업이 두렵다"… 캠퍼스 덮친 공포


보도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공과대학 졸업생들이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맞았다.

인도 자발푸르에 있는 인도정보기술디자인제조연구소(IIITDM)에 다니는 리샤브 미슈라(Rishabh Mishra) 씨는 2022년 입학 당시만 해도 실리콘밸리 진출을 꿈꿨다. 하지만 졸업을 1년 앞둔 지금, 그 꿈은 악몽으로 바뀌었다.

미슈라 씨는 이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400명 동기 가운데 취업에 성공한 사람은 25%도 안 된다"라며 "졸업이 다가올수록 모두가 극심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라고 토로했다. 일부 학생은 취업을 미루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지만, 그는 "1년 뒤 시장에 나와봤자 학위는 더 쓸모없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러한 현상은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 두바이, 케냐 등 전 세계 공과대학에서 공통으로 나타난다. 과거 신입 사원 몫이던 소프트웨어 유지·보수나 테스트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학생들은 이른바 '잡포칼립스(Jobpocalypse·일자리와 종말의 합성어)'를 마주했다.

"코딩 전쟁은 끝났다"… 사라진 신입의 자리


데이터가 증명하는 고용 한파는 충격적이다. 샌프란시스코 벤처캐피털 시그널파이어(SignalFire)가 낸 보고서를 보면, 지난 3년 동안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신입 채용 규모는 50% 넘게 줄었다. 지난해 채용 시장이 다소 회복세를 보였음에도, 전체 신규 채용 인원 가운데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7%에 그쳤다.

더 큰 문제는 기업 현장의 인식 변화다. 관리자급 인사 37%"Z세대 직원을 채용하느니 차라리 AI를 활용하겠다"라고 답했다.
컨설팅 기업 EY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인도 IT 서비스 기업들이 자동화와 AI 도입으로 신입 채용을 20~25% 줄였다"라고 분석했다. 유럽에서도 링크드인 등 주요 구직 플랫폼 내 주니어 기술직 공고가 지난해 35% 감소했다.

두바이에 본사를 둔 IT 채용 업체 실리콘 밸리 어소시에이츠(Silicon Valley Associates)의 바히드 하그자레(Vahid Haghzare) 이사는 "5년 전만 해도 개발자 모시기 전쟁이 벌어졌지만, 지금은 그런 열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라며 "신입 수요는 5%도 안 될 만큼 거의 자취를 감췄다"라고 설명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2025 일자리 미래 보고서'에서 기업 40%AI 자동화를 이유로 인력을 줄일 계획이라고 경고했다.

"개발자? 영업도 하고 AI도 다뤄라"… 달라진 생존 공식


기업이 신입에게 요구하는 역량 기준도 완전히 바뀌었다. 단순히 코드를 짜는 능력은 기본이고, 이제는 프로젝트 관리나 영업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하그자레 이사는 "최근 기업들은 신입 엔지니어에게 고객을 직접 상대하거나 제품을 파는 '추가 책임'까지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인도 등지에서는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이 아예 영업이나 마케팅 직군으로 눈을 돌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케냐 공과대학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리타 산데 루칼레(Rita Sande Lukale) 씨는 "데이터 로깅이나 시스템 진단 같은 초급 업무는 이미 AI가 다 하고 있다"라며 "이제는 알고리즘을 깊이 이해하고 복잡한 자동화 시스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고차원적인 기술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생산성 눈높이도 높아졌다. AI 기반 채용 업체 굿스페이스 AI(GoodSpace AI)의 리암 팰런(Liam Fallon) 제품 총괄은 "기업들은 신입 사원들이 AI 도구를 활용해 기존보다 70% 이상 더 많은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대학 교육이 이 같은 산업계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3~5년 동안 컴퓨터 공학을 배우고 취업에 나서는 기존 교육 모델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뜻이다. 하그자레 이사는 "학생들은 출구 없는 구덩이로 빠지고 있는데, 어떻게 빠져나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국형 부트캠프'의 위기와 공학 교육의 과제


이번 외신 보도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입사를 꿈꾸며 코딩 열풍에 뛰어든 한국 청년들에게도 큰 경각심을 준다. 한국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등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이미 신입 개발자 채용 공고는 줄고 있다. 기업들은 당장 실무에 투입할 수 있는 '중고 신입'이나 경력직만 찾는다.

특히 정부 지원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단기 코딩 교육 과정(부트캠프) 수료생들은 갈 곳을 잃었다. 단순한 '코드 작성(Syntax)' 능력만으로는 AI와 경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공학 교육은 이제 단순히 프로그래밍 언어의 규칙만 가르치는 '문법 교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AI를 도구로 활용해 실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책을 그리는 '설계(Design)'와 전체 구조를 만드는 '건축(Architecture)' 역량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한, 개발자라 할지라도 비즈니스 논리를 이해하고 다른 직군과 소통할 수 있는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단순히 인력 공급을 늘리는 양적 접근이 아니라, AI가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인간 지능을 어떻게 공학에 접목할 것인지, 교육 당국과 대학의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