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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전쟁] 테슬라 '테라팹' 선언… 반도체 독립의 꿈인가, 60조 원짜리 신기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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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패권 전쟁] 테슬라 '테라팹' 선언… 반도체 독립의 꿈인가, 60조 원짜리 신기루인가

머스크 "7일 안에 공개"… 연 2억 개 칩 자급자족 선언, 최대 400억 달러 베팅
'2나노 클린룸 혁신' 주장에 전문가 경악… "4680 배터리 실패 데자뷔" 경고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 년을 바쳐 쌓아 올린 반도체 제조 기술의 장벽 앞에, 일론 머스크가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 년을 바쳐 쌓아 올린 반도체 제조 기술의 장벽 앞에, 일론 머스크가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사진=로이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 년을 바쳐 쌓아 올린 반도체 제조 기술의 장벽 앞에, 일론 머스크가 정면 도전장을 내밀었다. 경험치 '0'의 테슬라가 과연 반도체 제조의 '성역'을 허물 수 있을까.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가 최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7일 안에 '테라팹(Terafab)' 프로젝트를 공개하겠다"고 선언하며 글로벌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었다. 테라팹은 테슬라가 로보택시와 인공지능(AI)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탑재될 핵심 반도체를 직접 설계·생산하는 초대형 자체 생산 공장()이다. 엔비디아라는 '반도체 황제'에 대한 의존을 끊겠다는 '반도체 독립 선언'이기도 하다.

배런스는 18(현지 시각) "테슬라가 34년 안에 AI 연산 병목 현상이 성장의 족쇄가 될 것으로 판단, 이를 선제 차단하기 위해 직접 제조라는 강수를 선택했다"고 보도했다. 월가의 시선은 엇갈린다. "AI 수직 계열화의 완성"이라는 환호와 "또 다른 희망 고문의 시작"이라는 냉소가 교차한다.

테슬라 ‘테라팹’ 프로젝트 추진 현황 및 실현 가능성 분석. 도표=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테슬라 ‘테라팹’ 프로젝트 추진 현황 및 실현 가능성 분석. 도표=글로벌이코노믹

왜 지금 반도체 공장인가… "3~4년 후 AI 병목이 성장 발목 잡는다"


테슬라 경영진이 테라팹 구상에 속도를 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옵티머스 로봇의 연간 양산 목표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의 앤드류 퍼코코(Andrew Percoco) 분석가는 지난 16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테슬라가 연간 1억 대 이상의 옵티머스 로봇 생산이라는 장기 목표를 달성하려면 해마다 최소 2억 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이는 현재 테슬라의 자동차 및 로보택시용 칩 수요보다 50배 이상 많은 수치다.

현재 테슬라는 자율주행 학습을 위해 엔비디아의 'H100' GPU 수만 개를 확보하고 있으며, 엔비디아의 최대 고객 중 하나다. 그러나 머스크는 이 같은 외부 의존 구조를 "AI 경쟁력의 아킬레스건"으로 규정하고, 자체 설계한 AI 학습용 칩 '도조(Dojo)'와 추론 전용 칩 'HW 5.0' 개발에 병행해 박차를 가해왔다. 테라팹은 이 자체 설계 칩을 외부 파운드리에 맡기지 않고 직접 생산하는 최후의 퍼즐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에 테슬라 연간 설비투자 계획액의 두 배에 달하는 자금을 단기간에 쏟아붓는 구조는 재무적 부담이 상당하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독자 구축 대신 기존 반도체 제조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본다.

"클린룸에서 담배 피워도 된다"… 전문가들이 경악한 이유

기술적 장벽은 자금 문제보다 더 가파르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진단이다.

머스크는 지난 1"반도체 업계가 클린룸 개념을 오해하고 있다""테슬라는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음식을 먹어도 될 만큼 새로운 표준을 가진 2나노 공정 팹을 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반도체 업계에서 즉각 역풍을 불러왔다.

반도체 공정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인간의 호흡 과정에서 발생하는 0.1마이크로미터() 수준의 미세 입자조차 2나노 회로를 파괴할 수 있다""클린룸 청정도 기준은 수율(양품 비율)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를 완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공정 기술의 기본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도체 제조는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운용, 식각(에칭), 수율 관리 등 수십 년간 축적된 미세 공정 노하우가 필수적인 영역이다.

설계와 제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도 부담이다. 테슬라는 과거 짐 켈러(Jim Keller), 피터 배넌(Peter Bannon) 같은 칩 설계 전문가를 영입해 자체 자율주행 칩(HW3·HW4) 개발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2023년 말 가네시 벤카타라마난(Ganesh Venkataramanan) 부사장이 퇴사한 데 이어 20248월에는 피터 배넌마저 테슬라를 떠나면서, 핵심 칩 설계 역량이 오히려 약화된 상태다.

4680 배터리의 기시감… '제조의 덫'에 또 걸리나


시장이 테라팹에 냉소를 보내는 결정적 근거는 테슬라의 '4680 배터리 잔혹사'.

머스크는 2020'배터리 데이' 행사에서 2022년까지 100기가와트시(GWh) 규모의 4680 배터리 생산 체제를 갖추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2025년 초 현재 실제 생산량은 목표치의 5분의 120GWh 수준에 머물러 있다. 차세대 공정으로 내세운 '건식 전극 기술'은 양산 단계에서 심각한 결함이 드러났고, 핵심 부품의 외부 의존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도네시아 금융 매체 IDN파이낸셜스(idnfinancials.com)는 지난 18일 보도에서 "배터리보다 공정 난도가 수백 배 높은 최첨단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 테슬라가 '제조 혁명'을 공언하는 것은 과거의 실패 패턴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테라팹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마이크론(Micron)2022년 착공한 아이다호주() 보이시 반도체 공장이 2027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이 비교의 준거가 된다. 수십 년의 제조 노하우를 보유한 마이크론조차 공장 완공에 5년이 걸린다. 반도체 제조 경험이 전무한 테슬라가 2028년 양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물리적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

삼성·SK하이닉스, 테라팹이 던진 '지각변동의 시나리오'


테라팹 구상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 테슬라의 자체 칩 생산은 TSMC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와 SK하이닉스는 테슬라향 수주 확대 가능성을 타진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테라팹이 현실화된다면 이들 파운드리 수주 기회는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반면 테라팹 건설이 대규모 지연·축소되어 테슬라가 결국 외부 파운드리에 계속 의존할 경우, 삼성전자 파운드리 부문의 반사 수혜 가능성이 부각될 수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테슬라가 독자 팹 구축과 외부 파트너십을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현실적 절충안으로 선택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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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의 지옥'을 건너는 머스크의 마지막 시험


일론 머스크의 테라팹 구상은 테슬라를 단순 자동차 기업에서 AI·로봇을 아우르는 수직 계열화된 기술 제국으로 전환하려는 야심의 결정판이다. 설계부터 제조까지 모든 공정을 장악하겠다는 구상은 애플이 자체 AP 설계로 스마트폰 산업의 지각을 흔든 '실리콘 혁명'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애플은 생산을 TSMC에 맡겼다. 직접 제조까지 내재화한 전례는 인텔 정도인데, 그 인텔조차 최근 파운드리 사업 분리를 검토하는 처지가 됐다.

반도체 제조는 자본력만으로 단기 정복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수율을 0.1%포인트 높이기 위해 수천 번의 공정 실험을 반복하는 '제조의 지옥'은 돈과 시간, 그리고 실패의 내성이 쌓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문이다. 테슬라가 4680 배터리의 실패를 교훈 삼아 '근거 있는 낙관론'으로 무장했는지, 아니면 같은 함정에 두 번 빠지는지, 그 판단은 2028년 테라팹의 첫 번째 웨이퍼가 나오는 순간 내려질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