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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M&A 1.3조 달러 돌파… 한국기업 수혜 전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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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M&A 1.3조 달러 돌파… 한국기업 수혜 전망은?

이란 전쟁·AI 충격에도 메가딜 18건… 한국 기업 인수 타깃 부상
1분기 M&A 역대 최대·전년比 20%↑… 국내 소재·부품사 매물 주목
전쟁·AI가 흔드는 1.3조 달러 M&A… 한국, 기회냐 위기냐
 올해 1분기 전 세계 M&A 거래 총액이 약 1조 3000억 달러를 돌파해 역대 1분기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올해 1분기 전 세계 M&A 거래 총액이 약 1조 3000억 달러를 돌파해 역대 1분기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 사진=연합뉴스

반도체·배터리로 먹고사는 나라가 1조 3000억 달러짜리 자본 재편의 파도 앞에 서 있다. 포식자가 될 것인가, 먹잇감이 될 것인가. 올해 1분기 전 세계 인수합병(M&A) 시장은 전쟁과 AI 충격을 비웃듯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유니레버 식품 사업부 448억 달러 매각, 시스코의 291억 달러 도매업체 인수 등 조 단위 메가딜이 주간 단위로 쏟아지는 가운데, 국내 소재·부품 기업들이 글로벌 전략 자본의 인수 레이더에 포착되고 있다는 신호가 감지된다.

블룸버그는 1일(현지시각) 올해 1분기 전 세계 M&A 거래 총액이 약 1조 3000억 달러를 돌파해 역대 1분기 기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유니레버의 맥코믹(McCormick) 매각과 시스코의 제트로 레스토랑 디포 인수가 이번 주에만 연달아 발표됐으며, 10억 달러 이상 메가딜은 1분기에만 18건에 달했다.

블룸버그는 이 추세가 유지될 경우 2025년 연간 M&A 총액인 약 4조 5000억 달러마저 넘어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역대급 1분기'의 민낯… 전쟁이 꺾은 20% 상승세


숫자만 보면 화려하다. 전년 동기 대비 20% 가까이 급증한 1조 3000억 달러는 블룸버그가 집계를 시작한 이래 1분기 단일 최고 기록이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균열이 숨어 있다.

지난 2월 말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약 6주간 M&A 거래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5% 급감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 선을 돌파했고, S&P 500 지수는 연초 대비 6% 하락하며 투자심리를 짓눌렀다. 1분기 전체로 보면 플러스지만, 후반부는 명백한 마이너스다. 20%의 상승분이 사실상 1~2월에 집중 생성됐다는 의미다.
웰스파고(Wells Fargo) 글로벌 M&A 부문 수장 제프 호건은 "전쟁은 현재 시장의 가장 큰 악재임이 분명하다" 면서도 "실질적 의미를 지닌 대형 거래들은 계속 성사되고 있다" 며 연간 반등 가능성을 열어뒀다. 한 박자 쉬고 있을 뿐, 시장의 체력 자체가 꺾인 것은 아니라는 진단이다.

2025년 '관세 전쟁 학습효과'… 기업들, 이제 불확실성에 면역됐다


시장 참가자들이 지목하는 반등의 근거는 불과 1년 전의 경험이다. 2025년 초,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관세 전쟁이 M&A 시장을 강타했을 때도 거래는 급격히 위축됐다. 그러나 시장은 반등했다. 우호적 규제 환경과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두 축이 흔들리지 않은 덕분이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ank of America) 글로벌 M&A 공동대표 이반 파만은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당장 불확실성이 있더라도, 1년·2년·5년 후를 내다봤을 때 맞는 딜이라면 바로 지금이 실행할 때'라고 기업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팬데믹 직후, 그리고 지난해 'Liberation Day' 이후에도 시장이 빠르게 회복했다는 사실이 경영진의 결정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왁텔 립턴(Wachtell Lipton Rosen & Katz)의 카레사 케인 파트너도 같은 맥락에서 말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자체가 더 이상 많은 기업에게 선택지가 아니다."

골드만삭스 역시 런던 컨퍼런스에서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것은 사치라고 경고했다. 변동성은 이제 예외적 상황이 아니라 뉴노멀이며, 그 안에서 결단하는 기업이 다음 사이클의 주인이 된다는 논리다.

지정학보다 무섭다… AI가 M&A 판도를 뒤흔드는 법

이번 M&A 사이클에서 이란 전쟁보다 더 근본적인 변수로 주목받는 것이 AI다.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 미주 M&A 공동대표 릴리 마드하비는 "AI는 지정학적 불확실성보다 더 직접적으로 거래 진행 여부를 좌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체적으로는 두 방향에서 M&A를 자극하고 있다. 하나는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등 기존 IT 플랫폼 기업들이 AI 신흥 강자에 의해 사업 모델 자체를 위협받으면서 생존을 위해 매각 또는 합병에 나서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AI 경쟁력을 내재화하려는 대형 기업들이 기술 스택과 인재를 한꺼번에 확보하기 위해 인수에 나서는 경우다.

마드하비는 "딜에 나서기 전 AI가 자사 사업 모델에 미치는 영향을 먼저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거래 준비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고 덧붙였다. 지금의 소강상태가 체념이 아닌 준비의 시간이라는 해석이다.

한국기업, 포식자냐 먹잇감이냐


이 흐름은 한국 경제에 양날의 칼이다. 기회의 측면부터 보자. 글로벌 기업들이 AI 대응과 공급망 내재화를 위한 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면서, 반도체·2차전지·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 공급망에 걸쳐 있는 국내기업들에 대한 전략적 인수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본지가 접촉한 국내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현재 복수의 해외 전략적 투자자(SI)가 국내 특정 소재·부품 기업에 대한 인수 가능성을 검토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고 전했다.

반면 위협의 그림자도 짙다. 이란 전쟁발 고유가와 인플레이션 재점화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은 한국 제조업의 수익성을 직격한다. 원가 압박이 현금 흐름을 죄면, 기업 가치는 떨어지고 외국 자본의 저가 인수 기회는 넓어진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국내 건설·조선 기업들이 헐값에 경영권을 내준 전례가 공연한 기억이 아닌 이유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한국기업들의 재무 체력이다. 주요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은 2020년대 들어 현금 보유고를 크게 확충했다. 이 체력을 방어막으로 쓸 것인지, 공세적 인수의 실탄으로 활용할 것인지—그 선택이 지금 이 순간 경영진의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글로벌 M&A 사이클은 공포를 먹고 자란다. 2020년 팬데믹도, 2025년 관세 전쟁도 결국 더 큰 반등의 발판이 됐다.

지금 1조 3000억 달러의 자본이 움직이는 방향은 단순한 시장 이벤트가 아니라 산업 지형도의 재설계다.

한국기업들이 이 재설계 과정에서 설계자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무한하지 않다. 올해 남은 3개 분기, 결단의 속도가 생존의 조건이 될 것이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