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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상단 ‘비즈니스’ 갈망할 때… 아시아는 20년 만의 역대급 ‘투자 슈퍼 사이클’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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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상단 ‘비즈니스’ 갈망할 때… 아시아는 20년 만의 역대급 ‘투자 슈퍼 사이클’ 돌입

미·중 갈등과 이란 전쟁이 촉발한 지정학적 위기, 역설적으로 ‘투자 폭발’ 촉매제 됐다
국방·AI 인프라·에너지 전환 중심 ‘구조적 폭증’… 2030년 자본 지출 16조 달러 전망
공급망 독점한 중국·대만·한국·태국·말레이시아, ‘산업 업그레이드’ 가속화
폭스콘 로고.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폭스콘 로고.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베이징을 방문해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모색했지만, 정작 아시아 대륙은 미국의 개입 없이도 이미 스스로 거대한 경제적 영토 확장인 ‘자본 지출(Capital Expenditure·CapEx)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

미·중 무역 전쟁, 중동 전쟁(미·이스라엘 대 이란), 글로벌 AI 패권 경쟁이라는 삼각 파고가 역설적으로 아시아 전역의 첨단 산업 투자를 2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강력한 촉매제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16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아시아 전역의 자본 지출이 2003~2007년 중국의 산업화 급증기 이후 최초로 ‘슈퍼 사이클’에 진입했다고 했다.

보고서는 현재 약 11조 달러 규모인 아시아의 자본 지출이 오는 2030년에는 16조 달러(약 2경 4,00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는 최근 성장 속도의 3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란 전쟁이 당긴 도화선: 중동 석유 탈피와 ‘에너지 안보’ 투자 폭발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중동발 원유 및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망이 마비되면서, 중동 석유 의존도가 60%에 달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화석 연료를 대체할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석유·가스 가격 폭등을 가만히 앉아 견디는 대신, 독자적인 ‘전략적 회복력’을 키우기 위해 자본 투자를 다각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 재생에너지 전환 투자를 전방위로 선도하고 있다. 자체 공급망을 통제해 수입 연료 의존도를 낮췄으며, 축적된 금융 구조를 바탕으로 글로벌 태양광·풍력·전기차 시장의 가치 사슬을 완벽히 지배하고 있다.

대만은 수입 연료 부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화석 연료를 상쇄할 카드로 '원전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과거 원전 반대 여론이 높았으나, 에너지 안보 위기가 닥치자 이란 전쟁 직후 가동을 멈췄던 제1원전의 안전 점검 및 재가동 검토에 착수했다.

아울러 폭스콘(Foxconn)은 신에너지 진출을 위해 수소 연료전지 연구·생산 센터에 6억 달러를 전격 투자했다.

한국과 베트남은 지난달 원자력 에너지 및 AI 협력을 포함한 12개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며 에너지·기술 안보 동맹을 다졌다.

글로벌 AI 붐, 아시아 ‘수출 엔진’에 불 지폈다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와 고성능 컴퓨팅 수요 폭발은 아시아 기술 기업들의 설비 투자를 광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2026년부터 2028년까지 전 세계 AI 데이터 센터 투자 규모가 2조 8,000억 달러에 달할 것이며, 아시아의 관련 지출은 연평균 33%씩 복합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4월 한국의 반도체 수출은 무려 173% 급증하며 전례 없는 대호황을 기록했다. 세계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는 올해 자본 지출 예산을 최대 560억 달러(약 77조 원)라는 상한선까지 증액하며 3나노미터 등 첨단 공정 라인을 가동하고 있다.

중국은 AI 하드웨어 확장을 주도하며 향후 2년간 거대 빅테크 기업들의 자본 지출이 연평균 30%씩 성장할 전망이다. 이미 4월 집적회로(IC) 수출 가치는 99.6%, 자동 데이터 처리 장치 부품은 47.3% 폭증했다.

말레이시아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반사이익과 낮은 전기료를 무기로 글로벌 데이터 센터의 핵심 기지로 부상했다. 싱가포르 접경지인 조호르(Johor) 주에는 미국·중국·호주 자본이 밀려들며 지난해에만 279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유치, 상업 건설 및 제조업 지형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

탈중국 ‘공급망 다변화’의 수혜주, 태국


미국의 대중국 관세 인상 조치와 지정학적 위험은 동남아시아로의 자본 이동을 가속화했다. 독일의 인쇄회로기판(PCB) 제조업체인 스타팀 글로벌(Strateem Global)은 태국 프라친부리에 10,000㎡ 규모의 공장을 세운 후, 미국 고객사들의 주문이 폭주하며 공급망 다변화의 최대 수혜를 입었다.

태국 투자위원회(BOI)에 따르면 2026년 1분기 투자 신청 금액은 전년 동기 대비 2.4배 달하는 309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최근 틱톡(TikTok)의 대규모 데이터 인프라 확장을 포함한 대형 프로젝트들을 연이어 승인했다.

아시아 산업 주기의 대전환: "미국 구걸 필요 없다"


과거 아시아의 산업 성장은 1950년대 일본의 철강·자동차 부흥(한국전쟁 미국 조달 수혜), 1970년대 한국의 중화학공업 투자, 대만의 전자 제조업 업그레이드 등 미국의 수요와 직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2026년 현재의 자본 슈퍼 사이클은 아시아 내부의 상호 보완적 생태계와 글로벌 기술 수요가 스스로 굴려 가는 독립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의 쉬톈첸 수석 경제학자는 "현재의 산업 순환은 철저한 분업과 협력이 바탕"이라며 "일본이 핵심 화학 물질을 공급하면, 한국이 첨단 메모리 반도체를 만들고, 대만이 칩을 위탁 생산하며, 중국이 데이터 센터와 대규모 인프라를 구축하는 완벽한 상호 보완 구조"라고 설명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CEO들이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베이징에서 거래를 갈망하고 있지만, 아시아는 이미 거대한 지정학적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며 미국 없이도 스스로 미래 기술과 에너지 권력을 재편하는 '거대한 투자 엔진'을 풀가동하고 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