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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인구통계까지 손질…인종·성별 세부자료 축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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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美 인구통계까지 손질…인종·성별 세부자료 축소 우려

개인정보 보호 방식 변경 추진…소수집단 자료 비공개 가능성
선거구·정부지원·차별 판정 근거 흔들릴 수도…2030 조사 앞두고 논란
지난 2020년 8월 4일(현지시각) 인구조사 참여를 독려하는 표지판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의 보도 위에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0년 8월 4일(현지시각) 인구조사 참여를 독려하는 표지판이 미국 매사추세츠주 서머빌의 보도 위에 놓여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030년 인구조사를 앞두고 개인정보 보호 방식을 손질하면서 인종·성별 등 소규모 집단에 대한 세부 통계가 대폭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인구조사 자료는 단순한 인구 집계를 넘어 선거구 획정과 연방정부 재원 배분, 인종·성별 차별 여부 판단 등에 광범위하게 활용된다. 세부 자료가 사라지면 특정 지역이나 소수집단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사실상 '통계적으로 보이지 않는 집단'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행정부가 인구조사국의 개인정보 보호 방식을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2030년 인구조사에서 인종과 성별 등에 관한 일부 세부 자료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번 개편은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체류자와 일부 외국 국적자를 연방 하원 의석 배분을 위한 인구에서 제외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미국에서 '누구를 인구로 세고 어떤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소수집단' 늘어날 수도

FT에 따르면 핵심은 인구조사국이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세밀한 인구통계를 공개하는 방식을 바꾸려 한다는 점이다.

인구조사국은 지난 2020년 조사에서 '차분 프라이버시(differential privacy)'라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적용했다. 실제 통계에 일정한 수준의 통계적 잡음을 더해 개인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대신 작은 지역이나 소수 인구집단에 관한 자료도 가능한 한 공개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개인의 신원을 보호하면서도 통계 자체는 최대한 남겨두는 방식인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상무부는 지난 6월 이 같은 '잡음 주입' 방식을 금지했다. 대신 개인을 식별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는 통계는 공개하지 않는 '억제(suppression)' 방식이나 여러 작은 집단과 지역을 더 큰 범주로 합쳐 공개하는 방식을 활용하도록 했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목적은 같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인종이나 규모가 작은 성별·연령 집단의 인구가 너무 적어 개인을 추정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집단의 통계를 아예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또는 여러 지역과 집단을 묶어 하나의 큰 범주로 만들면서 기존에 확인할 수 있었던 차이가 통계상 사라질 수도 있다.

결국 미국 전체 인구나 대규모 집단을 파악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더라도 작은 지역과 소수집단으로 내려갈수록 자료의 해상도가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지난 2일 보스턴에서 열린 통계학자들과 인구조사국 관계자들의 회의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관계자들은 새 개인정보 보호 방식 때문에 2030년 조사에서 인종과 성별 등에 관한 일부 세부 통계를 제공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인정했다.

스티브 맥필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석통계관은 이 같은 변화가 정치적 개입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을 얼마나 우려하느냐고 질문했다. 마이클 호스 인구조사국 관계자는 새로운 방식에 따른 일정한 결과는 "피할 수 없다"는 취지로 답했다.

◇선거구·정부지원·차별 판단까지 영향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미국 인구조사 결과가 선거구 획정과 정부 예산 배분 등 주요 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은 10년마다 전국 인구조사를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50개 주에 연방 하원 435석을 배분한다. 각 주에서는 이를 다시 선거구 획정의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인구통계가 미국 정치권력의 배분과 직접 연결되는 셈이다.

인구조사 자료는 정부 예산 배분에도 활용된다. 매년 약 1조5000억달러(약 2082조원)의 연방정부 지원금 배분 과정에서 인구와 지역별 특성을 보여주는 통계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학교와 의료시설, 교통, 주택 등 각종 공공정책을 설계하려면 어느 지역에 어떤 사람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국 단위의 전체 인구는 정확하게 집계되더라도 특정 지역에 사는 소수집단의 자료가 사라지거나 더 큰 범주에 흡수되면 정책 수요를 세밀하게 파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인종별 자료는 미국의 투표권과 시민권 문제에서도 중요하다. 특정 인종집단이 선거구 획정이나 공공정책 과정에서 불리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를 판단하려면 지역별 인구 구성과 실제 결과를 비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부 통계가 줄어들수록 차별이 실제로 발생했는지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작업도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다.

기업과 연구기관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 기업들은 점포와 공장 위치, 상품 수요 등을 판단할 때 인구조사 자료를 이용하고 대학과 연구기관 역시 지역·인종·소득집단별 변화를 분석하는 기초자료로 활용한다.

즉 개인정보 보호방식의 기술적 변경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 사회를 얼마나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문제라는 지적이다.

◇AI 발전이 촉발한 개인정보 보호 딜레마

다만 개인정보 보호 강화 자체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인공지능(AI)과 컴퓨팅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름이나 주소를 삭제한 익명 통계도 다른 공개 정보와 결합하면 특정 개인을 다시 찾아낼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조사국은 개별 응답자의 정보를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인구와 지역을 지나치게 세세하게 나눠 공개하면 특정 마을이나 인구가 적은 집단에서는 공개된 정보만으로도 개인을 추정할 위험이 있다.

문제는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높이면 통계의 세밀함이 떨어지고, 세부 자료를 최대한 유지하면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높아지는 상충 관계다.

2020년 도입된 차분 프라이버시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통계를 조금 변형하는 방식을 택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같은 인위적인 잡음이 통계 자체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지 쿡 인구조사국 국장대행 등은 실제 수치에 인위적인 변화를 가하지 않는 것이 통계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되살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반면 통계 전문가들은 잡음을 없애는 대신 자료를 통째로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환하면 특히 인구가 적은 집단에 관한 정보가 대규모로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결국 논쟁의 핵심은 '조금 불완전하더라도 세부 통계를 공개할 것인가, 개인정보 노출 위험이 있는 통계는 아예 공개하지 않을 것인가'라는 선택으로 압축된다.

◇불법체류자 배제와 맞물려 정치 쟁점화

통계 공개방식 개편이 더욱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구조사의 정치적 기능 자체도 손질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FT가 확인한 인구조사국 내부 문건 초안에는 불법체류자와 일부 외국 국적자를 연방의회 의석 배분을 위한 인구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담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행정부에서도 2020년 인구조사에 시민권 보유 여부를 묻는 질문을 추가하려 했다. 연방대법원은 2019년 당시 행정부가 제시한 이유가 설득력이 없다고 판단해 제동을 걸었고 결국 2020년 조사에서는 시민권 질문이 포함되지 않았다.

트럼프가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관련 정책도 다시 추진되고 있다. 2030년 인구조사를 준비하기 위한 시험조사에는 시민권 관련 질문이 포함됐다.

불법체류자를 의석 배분 인구에서 제외하면 이민자가 많이 거주하는 주의 연방 하원 의석과 대통령 선거인단 배분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세부 인종·성별 통계 축소 문제까지 더해지면서 인구조사 제도 전반이 트럼프 행정부의 정치적 목표에 맞게 재편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통계 신뢰성과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민주당과 시민권 단체들은 정확한 소수집단 통계가 투표권 보호와 차별 실태 파악에 필수적이라고 맞서고 있다.

◇2027년 방식 확정…향후 법적·정치적 충돌 가능성

향후 파장은 2030년 인구조사 방식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더욱 커질 전망이다.

주요 조사 방식은 내년 4월까지 확정돼야 한다. 앞으로 약 1년 안에 어떤 개인정보 보호기법을 사용할지, 어느 수준까지 세부 통계를 공개할지가 결정돼야 하는 셈이다.

세부자료 공개가 실제로 크게 축소될 경우 학계와 시민권 단체, 지방정부 등의 반발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선거구 획정과 연방정부 재정 배분에 활용되는 자료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하다.

특히 불법체류자를 의석 배분용 인구에서 제외하는 방안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지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소송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또 다른 위험은 인구조사에 대한 신뢰 자체가 낮아지는 것이다. 이민자와 소수집단이 정부가 자신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할지 불안해 조사 참여를 꺼리면 조사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이는 다시 선거구 획정과 정부 지원금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