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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대통령의 이상한 포트폴리오 "반도체 메모리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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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대통령의 이상한 포트폴리오 "반도체 메모리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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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전 고려대 교수

트럼프의 메모리 매도와 자본의 대이동


자본시장의 유동성은 정치적 수사보다 정직하며, 자산가의 계좌 내역은 때로 거시경제 지표보다 냉혹한 선행지표 구실을 한다. 최근 공개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직자 재산 거래 내역에서 가장 도드라진 대목은 단연 메모리 반도체 대표주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의 전량 및 대규모 순매도와, 이를 통해 확보된 실탄의 상당 부분이 메타 플랫폼스(Meta) 등 빅테크 플랫폼 기업으로 향했다는 점이다.

월스트리트와 여의도 증시를 막론하고 이번 리밸런싱은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 자신이 '미국 우선주의'와 '반도체 패권'을 외치며 관세 장벽과 제조업 부흥을 주창해 온 장본인이기에, 그가 사적으로 운용하는 포트폴리오에서 제조업의 총아인 메모리 반도체를 털어내고 플랫폼 소프트웨어로 피신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차익 실현을 넘어 시장의 구조적 변곡점을 시사하는 징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왜 트럼프는 인공지능(AI) 붐의 중심에 서 있던 메모리 반도체를 던졌을까?

시클리컬(Cyclical) 자산의 본질: 고점 피크아웃 공포

메모리 반도체는 본질적으로 '경기 순환형 원자재'에 가깝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라는 고부가가치 제품군이 부각되며 마치 구조적 성장주처럼 포장되었으나,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의 시차에 따라 가격 변동성이 극대화되는 제조업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공장이 완공되어 대량 양산 체제에 돌입하는 순간 공급 과잉이 발생하고, 가격이 급락하면 기업의 영업이익은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마이크론을 비롯한 메모리 3사는 AI 데이터센터 증설 열풍 속에서 기록적인 설비투자(CAPEX)를 감행해 왔다. 그러나 2026년 현재 시장이 마주한 현실은 '전통적 IT 수요(스마트폰·PC)의 부진'과 'HBM 증산에 따른 범용 D램 및 낸드 플래시의 과잉 공급 압박'이다. AI 향 특수 수요가 전체 반도체 시장의 덩치를 견인하기에는 비(非)AI 완제품 시장의 회복 탄력이 미진하다.

트럼프와 그의 자산운용 참모진은 바로 이 '사이클의 꼭짓점'을 직관적으로 포착했을 개연성이 크다. 시클리컬 주식 투자의 불문율은 ‘고(高)PER에 사서 저(低)PER에 파는 것’이다. 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며 외견상 밸류에이션이 저렴해 보이는 순간이야말로 사이클의 정점이며, 그때 주식을 처분하지 않으면 수년간 긴 다운사이클의 터널에 갇히게 된다. 트럼프의 매도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이 누렸던 유례없는 호황의 꿀물이 이미 다 빠졌다는 냉철한 손익 계산의 결과물이다.

AI 거품론과 인프라 지출(CAPEX)의 피로감

AI 생태계의 헤게모니가 물리적 하드웨어(칩셋·메모리)에서 '실질적인 수익화(Monetization)' 단계로 넘어가는 이행기적 마찰도 결정적 원인이다.지난 수년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메타 등 하이퍼스케일러들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메모리를 사재기하듯 쓸어 담았다. 그러나 주주들은 이제 하드웨어 구축 비용을 묻는 단계에서 "그래서 AI로 얼마를 벌어들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거대 기술 기업들의 자본적 지출이 무한정 팽창할 수 없다는 경계감이 번지면서, 공급망 말단에 위치한 하드웨어 부품사들에 대한 실적 기대치는 급격히 하향 조정되고 있다.

인프라가 깔리고 나면 다음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몫이다. 메모리 공급업체는 고객사인 빅테크의 설비투자 축소 소식 하나에 주가가 수십 퍼센트씩 출렁이는 취약성을 지닌다. 반면 메타와 같은 기업은 AI 모델을 자체 광고 시스템(Advantage+)에 도입해 이미 실질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고 있다. 하드웨어를 '공급하는 자'보다, 그 인프라를 활용해 '현금을 회수하는 자'에게 프리미엄이 쏠리는 국면이다. 트럼프의 계좌가 마이크론을 버리고 메타를 취한 것은, AI 인프라의 공급망 리스크를 회피하고 플랫폼의 현금 창출력에 올라탄 전형적인 방어적 헤지이자 전환이다.

지정학적 리스크와 '제조업 관세'의 역설

정치인 트럼프의 언설과 투자자 트럼프의 지갑이 어긋나는 지점도 흥미롭다. 트럼프는 집권 시 글로벌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에 고율 관세를 매기겠다고 위협하고 칩스법(Chips Act) 보조금 축소를 공언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관세 폭탄과 규제 리스크가 메모리 제조사들에게 양날의 검이 아니라 일방적인 독(毒)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반도체는 웨이퍼 가공부터 후공정 패키징, 최종 기기 조립에 이르기까지 국경을 수차례 넘나드는 고도로 글로벌화된 복합 생태계다. 미국 내에 완벽한 메모리 수직계열화를 구축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수년의 시간이 소요되며, 이는 마이크론 같은 미국 기업에도 치명적인 제조 단가 상승을 유발한다.

자신이 촉발할 수 있는 통상 마찰과 무역 분쟁이 반도체 공급망에 야기할 비효율성을 그 스스로가 모를 리 없다. 공장과 설비라는 무거운 유형자산을 짊어진 메모리 제조업체는 관세 장벽의 유탄을 정면으로 맞지만, 국경 없이 디지털 트래픽으로 수익을 올리는 소프트웨어·소셜 플랫폼 기업은 공급망 단절의 충격파에서 한 발 비켜서 있다. 자신의 정치적 폭풍이 몰고 올 파고를 누구보다 잘 아는 선장이 가장 먼저 흔들릴 배(메모리)에서 뛰어내린 셈이다.

서울신문

자본은 이념을 따르지 않는다

트럼프의 메모리 매도 사태가 한국 증시와 투자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징하다. 첫째, HBM 열풍에 취해 메모리 반도체의 시클리컬적 속성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다. 둘째, AI 투자의 축이 '인프라 구축'에서 '서비스 수익성'으로 옮겨가는 거대한 회전목마의 방향을 읽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의 입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애국주의와 제조업 르네상스를 외칠지언정, 그의 통장은 철저히 자본의 한계효용과 위험 대비 보상을 추종한다. 메모리 주식의 손절 및 차익 실현은 단순한 한 거물의 포트폴리오 조정을 넘어,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환상이 걷히고 가혹한 냉정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리는 서늘한 전조(前兆)다.

트럼프의 예단은 무결한가: '인간 지표'의 함정과 메모리 반론

트럼프의 포트폴리오 재편을 반도체 다운사이클의 확정적 신호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시장을 움직이는 거물 정치인의 자산 이동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본시장의 절대적 미래를 보증하는 나침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역사적으로 유력 정치인이나 유명 자산가의 매매는 시차를 둔 '역발상 지표'로 작용하거나, 섣부른 조기 퇴각으로 판명 난 사례가 적지 않다.

트럼프의 매도 논리는 메모리 산업을 과거의 '소품종 대량생산형 범용 원자재'로 바라보는 낡은 틀에 갇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과거의 D램과 낸드는 수요 예측 실패가 곧장 재고 누적과 가격 폭락으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사이클 산업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핵심 축인 HBM(고대역폭 메모리)은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엔비디아 등 빅테크 고객사와의 1년 이상 선(先)주문 및 맞춤형 수주 계약을 기반으로 생산 라인이 배정된다. 공급업체가 무턱대고 증설해 재고를 덤핑하던 과거의 '치킨게임' 구조가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적 진입장벽이 세워진 것이다.

만약 온디바이스(On-device) AI 기기의 확산과 차세대 AI 가속기 출시로 메모리 병목 현상이 지속된다면, 메모리 업계의 호황은 '단기 피크아웃'이 아니라 2~3년 이상 이어지는 '슈퍼사이클의 연장선'일 수 있다. 트럼프의 매도는 거대한 구조적 성장의 초입에서 사이클 공포에 질려 너무 일찍 열차에서 뛰어내린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공직자 재산 공개에 나타난 거래를 도널드 트럼프 개인의 혜안이나 거시경제적 통찰로 과대 해석하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트럼프와 같은 초고액 자산가들의 상장주식 계좌는 통상 전문 자산운용사(패밀리 오피스나 외부 위탁 브로커)의 알고리즘과 룰베이스(Rule-based) 원칙에 의해 운용된다. 특정 종목이 단기간에 목표 수익률을 초과 달성하면 비중을 기계적으로 줄여 이익을 확정하고, 상대적으로 덜 오른 대형주로 리밸런싱하는 전형적인 포트폴리오 관리 기법이 작동했을 개연성이 높다.

즉, 이는 '메모리 산업의 종말'을 예견한 지정학적 결단이라기보다는, 운용 매뉴얼에 따른 통상적인 차익 실현과 변동성 축소 과정에 불과할 수 있다. 정치인의 이름표가 붙었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한 리밸런싱에 과도한 예지력을 부여하는 것은 전형적인 후광 효과(Halo effect)다.

피크아웃 오판의 역사: 조기 매도의 기회비용


월스트리트의 역사에서 경기순환주를 너무 일찍 팔아 거대한 상승 랠리를 놓친 대가의 사례는 부지기수다.반도체 산업은 '피크아웃(정점 통과)' 논란이 불거진 시점부터 실제 업황이 꺾이기까지 6개월에서 1년 이상 주가가 추가 폭등하는 특성을 자주 보여왔다.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향해 질주하는 국면에서 제기되는 피크 우려는 종종 기우에 그치며, 쇼티지(공급 부족) 국면이 한 번 더 연장되는 순간 주가는 밸류에이션 상단을 뚫고 올라간다.

만약 메타 등 빅테크가 AI 인프라 확충 속도를 늦추지 않고 HBM과 차세대 고용량 서버 D램의 판가(ASP)가 유지된다면, 트럼프의 마이크론 손절은 저평가 국면에서의 엑시트이자 뼈아픈 기회비용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트럼프의 포트폴리오 변화는 투자자들에게 'AI 인프라 과열과 사이클 정점 가능성을 점검하라'는 경각심의 계기로 삼는 것까지만 유효하다. 그의 매매를 시장의 절대적 정답지로 받들어 동조 매도에 나서는 것은, 정치적 상징성과 금융 시장의 펀더멘털을 혼동하는 우(愚)를 범하는 일이다.

자본시장의 승패는 유명 인사의 베팅을 추종하는 데서 갈리지 않는다. AI 시대의 메모리가 단순 원자재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대체 불가능한 특수 부품으로 진화할 것인가에 대한 독자적인 분석과 셈법만이 포트폴리오의 성패를 가를 것이다.

자본은 이념을 따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유명 인사의 직관이 시장의 파고를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다.

투자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트럼프의 매매에 일희일비하며 무비판적으로 추종하는 태도가 아니다. AI 시대의 메모리가 과거의 시클리컬 원자재로 회귀할 것인가, 아니면 대체 불가능한 핵심 고부가가치 자산으로 재평가될 것인가에 대한 독자적이고 냉철한 펀더멘털 분석만이 거친 변동성의 파도를 헤쳐 나갈 유일한 기준이 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