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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53)] 미국식 실용주의를 실감케 하는 영화 '사랑은 살며시 다가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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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치유하는 영화(53)] 미국식 실용주의를 실감케 하는 영화 '사랑은 살며시 다가오고'

영화 '사랑은 살며시 다가오고'.
영화 '사랑은 살며시 다가오고'.
요즘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돌싱'이라는 말이 흔히 들리게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돌싱들은 재혼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번의 실패 경험을 거친 만큼, 상대방에게 바라는 조건도 더 까다로워진 것은 당연하다.

재혼을 결심한 여성들은 첫 번째 결혼에서 낳은 자식들을 위해 재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반면 남성들은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어서 재혼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특히 의외였던 것은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올드 미스들의 경우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노처녀는 노총각과 결혼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 이유는 결혼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남자 싱글들이 자식에 대한 욕심이 있는 경우가 많아서이다. 나이가 들어 출산 가능성이 낮아진 자신과 같은 경우보다는 출산을 고집할 가능성이 높은 총각들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다.

돌싱들의 증가로 인해 필자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소개팅 부탁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혼한 사람뿐만 아니라 자식들의 혼사 문제까지 부탁받기 때문이다. 심지어 선배의 재혼 상대를 알아봐주면서 그의 아들 중매도 서는 경우도 있다. 물론 '대를 이어 충성한다'고 놀려주기는 하지만 말이다.

모 스타급 연기자가 재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아버지 여자친구에게 어머니라고 부르며 용돈을 드리기도 한다니 세상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특히 정보통신의 발달로 소개팅 앱 등을 통해 새로운 이성을 소개자 없이 직접 만나는 것이 대세인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그래서 진지한 만남을 원하는 경우 지인에 의해 소개 받는 수요도 늘고 있다. 마찬가지로 직장을 구하거나 직원을 뽑는데 있어서도 이러한 경향이 늘고 있다.

공정에 대한 이슈가 증가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럴수록 공개 채용 못지 않게 일부 업종에서는 추천에 의한 채용 방식도 선호되고 있다. 어차피 신입 사원인 경우 업무를 새로 가르쳐야 하므로 본인들의 실력이야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추천 채용의 숨은 의도는 주로 신입 사원의 부모 영향력을 활용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알고 보면 형식적으로는 공채이나 실질적으로 추천제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렇듯 세상사 이면에는 대부분에 속하는 경우가 있고 아닌 경우가 있지만, 진실은 어느 것이 옳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결혼 역시 재혼을 하느냐 마느냐, 중매냐 연애냐 이런 것들은 정답이 없고 결과론적으로 당사자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의미를 잘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모든 현상에는 숨은 이유들이 있고 항상 현상에 대해 다른 면이 있는지 숙고해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례이지만 수년 전 사별한 공직자 신분인 친구가 필자에게 재혼을 위한 소개를 부탁했다.

일반적으로는 사별이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한다면 상대를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소개해줄 여자분들을 알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자측 입장에서는 사별한 사람보다는 사이가 안 좋아져서 이혼한 분을 배우자로 선호한다는 것이다. 이유인 즉슨, 사별한 경우 돌아가신 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남아있을 수 있어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원수처럼 싸우다가 헤어진 경우가 상대를 완전히 잊어버리기 때문에 새로운 사랑을 하기가 좋다는 것이다. 알고 나니 상당히 일리가 있는 해석이다.

영화 '사랑은 살며시 다가오고'에서는 서부 개척 시대라는 험한 환경에서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별이 부부 간에도 있었을 것이고, 그 아픔을 희망으로 승화시켜 가는 여인의 내면을 잘 보여준다.

서부 개척 시대에 새로운 땅을 찾아 나서는 열정으로 가득찬 신부 마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신혼의 남편은 서부로 가는 도중 없어진 말을 찾으러 추격하다 낙마하여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미칠 듯이 상심한 그녀는 실의에 빠져 지낸다. 남편 없이 새로운 삶을 찾아 서부로 가는 것은 무의미해졌고, 다시 동부로 돌아가기엔 길이 너무 멀고 험하다. 이러한 난감한 상황이 같이 서부로 떠난 무리들 사이에 알려졌고, 혼자 어린 딸을 키우고 있던 클락으로부터 날씨가 좋아지면 어디로 떠나든지 돕겠다는 조건으로 입주 가정부 제의를 받는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제의를 받아들이지만,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어하지 않는 어린 딸 미시의 심술로 갈등도 깊어진다. 날씨가 좋아지는 봄이 오면 원래 집인 동부로 돌아가려고 하였지만, 클락의 세심한 배려와 그의 딸 미시와의 '미운 정'은 쌓여만 간다.

더구나 먼저 간 남편의 아이가 임신된 것을 알고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고 잘 대해주는 그들을 떠날 수 없게 된다. 엠비씨 제작사의 김흥도 감독은 사랑에 있어서도 미국적 실용주의 정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수 있는 영화라고 평한다. 소위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이라는 미국식 실용주의는 영어의 어순에서도 알 수 있다. 그것은 영어의 경우 긴 문장에서의 핵심은 앞에 위치시킨다. 즉, 수식어는 전부 뒤로 하고 가장 중요한 말부터 먼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사랑한다'라고 먼저 말하고 이유나 수식은 전부 그 뒤이다.

여주인공 역시 클락이 자신의 딸을 키우기 위해 조건부이지만 살자는 제안에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지만 담대하게 승낙한다. 어쩌면 그녀의 실용주의적 성향은 영화 시작부터 복선을 넣어두었다.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그녀는 동부에서 편하게 살아갈 수 있지만 신혼을 서부에서 시작하려고 남편을 따라 나선다.

그리고 영화 끝 부분에서는 미망인이 된 후 만난 남자와는 같이 생활하기로 한 기한이 거의 끝날 무렵 그녀가 먼저 클락에게 떠나기 싫다고 편지를 쓴다. 우리말의 경우 중요한 말은 주로 가장 뒤에 위치시킨다. 이러이러해서 너를 사랑한다라는 식으로 사랑하는 이유를 먼저 설명하고 말하고, 사랑한다는 표현은 가장 뒤에 위치한다.

어떤 성향이나 성격을 결정하는 염색체가 더 좋다, 나쁘다가 아니다. 다양한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성 차원에서의 성향을 말한 것이지 국민 개개인을 비교하여 본다면 우리나라 여성들도 서구 여성 못지 않다.

한국 역사상 가장 모험적인 사람들은 하와이로 이민 간 사람들과 결혼한 '사진 신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이유는 처음으로 외국으로 이민을 선택한 분들도 대단히 용감한데, 그 동안 결혼하기 위하여 사진만 보고 하와이로 먼 길을 배 타고 간 것은 더 용감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들은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어떤 식이던 생활해보고 남자를 결정하는 그런 호사는 없었다. 단지 가난한 현실을 벗어나기 위해서 우선 무엇인가 실행부터 하고 보는 담대한 결심을 한 것이다. 이처럼 그녀들이 보여준 한국형 프래그머티즘은 더욱 강하다고 보여진다.

이제야 김흥도 감독이 속에 있는 말을 이야기할 때 결론을 먼저 말하고 나머지를 뒤에 이야기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도 성격과는 안 맞지만 좋은 시도라고 생각하고 시작해 보려고 한다. '여러분 사랑합니다'가 아니라 '사랑합니다. 여러분!'으로 말이다.


노정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noja@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