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인은 마음만 먹으면 넘쳐나는 작품과 연주자들을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남녀노소 선택 조건도 없이 기호에 맞게 연주를 들을 수 있어 예술의 정수 같은 느낌도 든다. 작품과 연주에 따른 평가가 수반되어야 하지만 유독 한국에서 비평의 비중은 미흡한 편이다.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는 그의 천부적 기량을 통해 음악을 즉물적으로 표현하고 청중에게 압도적인 감흥과 박수를 받는다. 이것은 악보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성과 인격적인 해석을 끌어내는 매력을 보여주는 행위이다.
곡을 꾸밈없이 연주하고 최상의 음색을 만들기 때문에 그의 연주는 누구에게나 통하는 일정 방정식이 성립된다. 크라이슬러도 연주의 미에 집중한 연주자로 빈의 커다란 독자성을 형성하고 음악적 미감을 높이는 데 공헌했다.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카라얀도 초기에는 토스카니니의 지휘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으나, 후기에는 자신만의 세계를 개척하고 현대적 감각을 실은 지휘자로 변화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많은 연주의 경험이 가져다준 결과이다.
연주는 작곡가의 사상, 표현 의지, 취지를 역행해서는 안되며, 연주자의 재 창조적 권리를 억압해서도 안 된다. 작곡가와 연주자는 마라톤의 릴레이처럼 상호 협조적 역할을 해야 바람직한 연주가 탄생 될 수 있다. 시간 예술인 연주는 그 결과를 남길 기록이 필요하다.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연주와 비평은 매우 밀착된 관계이며, 음악적 어법을 재조명할 수 있는 필수적 단계이다. 음악적 어법이란 연주와 비평 간의 상호 소통될 수 있는 음악적 해석을 말하며 시간 예술인 연주 체험에 대해 실제적 평가를 말하는 것이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차이콥스키의 <비창>을 연주했다면 사람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교의 수위는 비슷할 것이다. 작품을 감상한 후, 평가가 수반되어야 연주 기록이 되며 연주자도 연주 당시를 재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형식미와 절대음악의 객관성을 주장한 비평가 한슬릭(Hanslick, E. 1825-1904)은 음악은 연주이지만, 유희는 아니며 음향적 형식의 범위를 넘는 음악적 해석을 완강히 거부했다. 연주할 때 음악 이외의 소재는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주가가 작품을 옳게 인지하고 이를 무대에서 전달할 때는 독선적이며 주관성이 강한 해석은 피해야 한다. 자칫 작곡자의 의도에 빗나간 작품이 될 수 있고, 청중에게도 공감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곡의 배경과 취지를 파악하고 시대적 조류를 수용하는 노력과 함께 옛날 작품도 현대 감각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비평가는 작품을 감상할 때, 같은 작품을 놓고도 매번 평가하는 각도가 달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시대와 장소, 연주자에 따른 차별화가 빚어낸 결과이다. 보편적으로 객관적인 연주에 중점을 두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시대이건, 연주자이건, 일정한 작품에 대한 공통성은 있다. 더욱이 객관적으로 연주할 때 그것은 선명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연주란 개인적인 감정이나 독창적 기교가 섞이지 않은 악보에 있는 그대로 연주하여 작곡가의 취지를 존중하는 연주이다.
낭만파의 연주는 객관적 해석과 악보에 충실하고 원래의 관습을 중요시하여 잠재적인 음악의 본질을 찾으려고 했다. 오늘날엔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한 후 연주자가 재창조하게 되었다. 같은 연주자가 한 작품을 반복할 때 매번 다른 연주가 된다는 것이 인정되었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