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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깍쟁이'와 '경칠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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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에 담긴 이야기] '깍쟁이'와 '경칠 놈'

얼마 전 모 방송국의 퀴즈 프로그램을 보다가 적잖이 놀란 적이 있다. 그동안의 내 상식과 전혀 다른 답을 접했기 때문이다. 전체 50문제 중에서 49번 문제가 빌미가 되었는데, 그 지문은 이랬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는 범죄자들의 죄명을 얼굴에 새긴 후 석방했다고 합니다. 범죄자들은 얼굴 흉터 때문에 사회생활을 온전히 할 수 없어서 지금의 청계천에 모여 살며 구걸을 하거나 남의 집 장례 때 악귀를 쫒아내는 일을 해 주며 상주로부터 돈을 뜯어 연명하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이 단어’를 사용하여 <서울 ×××>라 했고 지금은 얄밉게 행동하는 사람에게 ‘이것 같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무엇일까요?』 한 문제만을 남긴 학생은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답을 내지 못 했고 사회자는 정답이 <깍쟁이>라고 했다. 그런데 사회자의 ‘깍쟁이’ 소리를 듣는 순간 “어! 이건 아닌데”하는 의문이 뇌리를 확 스쳤다.

내가 알고 있던 ‘깍쟁이’의 어원은 조선이 아닌 고려시대로 올라가고, 특히 고려 때 개성에서 가계를 차려 놓고 장사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부연하자면 ‘깍쟁이’는 <가게 쟁이>에서 변형된 말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이문을 남기려 할 때의 인색한 모습을 비꼬아, 가게라는 단어에 사람을 낮춰 부르는 ‘쟁이’를 합해 ‘가게 쟁이’라 한 것이다.
따라서 깍쟁이(가게 쟁이)는 ‘장사치’의 또 다른 말일 뿐만 아니라, 나라가 고려에서 조선으로 바뀌고 수도도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겨지는 가운데 ‘서울깍쟁이’란 말이 새롭게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의 종로거리는 조선시대에도 많은 가게들(육의전)이 모여 ‘운종가’로 불리며 여기서 장사하던 사람들을 개성에서처럼 깍쟁이라 불렀다고 한다. 때문에 서울깍쟁이 훨씬 전에 ‘개성 깍쟁이’가 있었고, 이러한 깍쟁이는 퀴즈에서 언급된 <조선시대 얼굴에 문신한 사람>과는 그 관련성이 많이 희박하다. 그렇다면 문신당한 사람들이 퀴즈의 정답처럼 깍쟁이가 아니면 무슨 말로 불렀을까? 이를 위해서 먼저 조선시대 형벌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시대의 형벌 중에는 ‘문신’이 있었다. 이를 경형(黥刑) 또는 묵형(墨刑)이라도 부르는데 주로 절도나 도망자에게 가했던 형벌로, 얼굴이나 팔뚝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는 벌이었다.
얼굴 경우에는 가로 세로 3센티 범위 안에 두 글자를 새겼으며, 주로 ‘절도(竊盜)’가 가장 흔했고 특별히 훔친 물건이 소나 말일 경우 ‘도우(盜牛)’나 ‘도마(盜馬)’를, 노비가 도망가다 붙잡혔을 때는 ‘도망(逃亡)’·‘도노(逃奴)’·‘도비(逃婢)’를 새겨 넣었다.

우리가 사극에서 종종 듣는 ‘경칠 놈’이란 말은, 「경(黥)치다 즉, 먹물로 새기다」 에서 유래된 것으로, 죄를 지어 평생 얼굴에 문신을 새긴 채 살아갈 놈이라는 저주의 욕설이다.
아무튼 ‘경친 놈’들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 이상 범죄자임이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되었다. 한번 경 치게 되면 온갖 따돌림을 당하기 때문에 결국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런 사람들끼리 인적이 드문 청계천 변을 따라 움집을 파고 살았으니 그들을 ‘땅꾼’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대개 비렁뱅이 거지노릇을 하였지만, 퀴즈 내용처럼 장사를 치루는 집에서 잡귀몰이 역할을 하거나 소돼지를 잡는 백정 혹은 사형(死刑)을 집행하는 망나니 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그럼 퀴즈로 돌아가서, 잠시 살펴본 대로라면 퀴즈의 답이었던 ‘깍쟁이’에 대해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한다. 그리고 만일 탈락한 학생이 ‘땅꾼’이나 ‘경친 놈’이라 말 했더라면 아마도 그 문제의 답에 대한 논란이 의외로 커졌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