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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의 영화산책] 권투선수 통해 바라본 인생 관조기…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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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의 영화산책] 권투선수 통해 바라본 인생 관조기…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미수(米壽)를 바라보는 나이, 1930년 5월 31일(만 86세)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생인 노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재개봉 영화를 본다는 것만도 행운이다. 73세에 만든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Million Dollar Baby)'(2004)는 지금도 깊은 감동을 준다. 193㎝의 큰 키에 배우로서 정의의 편에서 응징자의 역할을 주로 맡았던 그는 배우·감독·제작·음악을 담당하며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완전히 컨트롤하고 제압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 작품은 인생을 관조하며 아름답게 늙어 가는 법을 가르쳐주는 교본이다. 영화 장인의 걸작은 2005년 제7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수상, 골든 글로브상, 전미영화비평가협회상, 미국배우조합상, 미국 각본가협회상, 미국감독조합상, 뉴욕비평가협회상, 보스턴비평가협회상, 시카고비평가협회상 등을 휩쓸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권투선수 출신 원작자 F.X. 툴(제리 보이드)의 단편 '불타는 로프, 코너에서 전하는 이야기(Rope Burns: Stories from the Corner)'를 아카데미 각본상 수상작가 폴 해기스가 시나리오화 했다. 별 것 아닌 영화를 '별 것'으로 만드는 연금술사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노련함은 이 작품을 명작으로 만든다. 모퉁이의 세 사람이 펼쳐낸 인생이야기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감독은 아일랜드 출신 작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노년의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아일랜드계로 설정한다. 녹색 트레이닝이 아일랜드 국기를 떠올리며, 제목 '밀리언 달러 베이비'는 1센트 가게에서 100만 달러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진귀한 보물물건을 찾아낸 것, 나이는 들었지만 투지의 여성 복서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빛바랜 허름한 복싱도장, 은퇴한 두 노인,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청소부로 일하며 지내는 스크랩(모건 프리먼), 서른이 넘은 복서 지망생 매기(힐러리 스웽크)가 삼각편대를 이루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사각의 정글은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 인생의 축소판을 상징한다.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그들은 도반으로서 권투를 삶의 교본으로 삼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등을 돌린 딸에게서 느끼는 서운함과 복서의 일생을 망쳤다는 죄책감을 안고 사는 프랭키, 선수 때 한쪽 눈을 잃고 체육관 청소부로 일하며 지내는 스크랩, 원수 같은 가족을 떠나 소망했던 복서가 되고 싶은 메기는 한 팀이 되어 의기투합한다. 도입부에 프랭키는 복서의 험로를 잘 알기에 복서로 키워달라는 메기에게 "여자는 가르치지 않아"라고 말하며 매몰차게 내친다.

감독은 인생을 권투에 비유하면서 모든 세상의 아픔을 체험한 세 사람이 자신들의 내공을 감춘 채 미완의 꿈을 갖고 살아가지만 '가족'이란 단어 앞에 자유롭지 못함을 간파해낸다. 또한 배신한 인물의 비열함, 가족이라 할 수 없는 뻔뻔스러움, 인정을 모르는 몰염치함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삶의 깊이를 가족, 과거, 배신, 의리에 엮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차분히 보여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여러 도장에서 나이와 여성인 탓에 거절을 당했던 메기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매일 도장을 찾아 연습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스크랩이 조금씩 메기를 돕고, 프랭키를 설득한다. 스승이 된 프랭키는 메기를 가혹하게 훈련시키고, 메기는 스스로 답을 찾아 급성장 한다. 시합에서 매번 이기자 메기에게 자신감을 가지라고 모쿠슈라라는 별명이 적힌 가운을 선사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별명의 뜻을 매번 물어보았지만 스승은 챔피언이 되면 알려주겠다고 한다. 챔피언 쟁탈전, 챔피언의 반칙으로 메기는 치명상을 입고 입을 제외한 모든 신경을 잃는 식물인간이 된다. 프랭키가 그토록 강조했던 이기는 것보다 제1원칙인 '너 자신을 보호하라'는 말이 무너지고, 다리는 썩어 들어가고 절단하기에 이르자 매기는 프랭키에게 자신의 고통을 끝내달라고 간청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스승이자 아버지로 따랐던 프랭키는 누구보다 아꼈던 메기를 그녀의 소원대로 조용히 잠재우고, '모쿠슈라(Mo chuisle, 내 사랑스러운 소중한 딸, 내 새끼)'라며 흐느낀다. 혈육 이상의 가족으로서 진한 감정을 쌓아간 감동의 드라마는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이 소박하고 진솔한 인생 성찰 영화는 무게 중심을 지키며 보편적 현대인들의 메마른 정서를 자극한다. 신이 사랑한 물건은 주님이 가져가신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프랭키의 뒷모습이 인상 깊다.
장석용(Chang, Seok Yong) 글로벌이코노믹 문화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