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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人]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 - "한국 사회, 민주화가 발전할수록 내부 단속 강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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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人]문화비평가 이택광 교수 - "한국 사회, 민주화가 발전할수록 내부 단속 강화돼"

“토론과 논쟁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구조로 가고 있어”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이미지 확대보기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최근 우리 사회는 시스템의 붕괴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화비평가인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22일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단했다.
이 교수는 "최근 특히 지난해에는 개인적으로 지금까지 내 생각을 많이 바꾼 한 해였다"며 "세계체제론을 언급한 이마누엘 윌러스타인의 언어로 표현하면 한국 사회가 시스템의 붕괴에 직면한 상황"이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그러면서 "붕괴의 조짐이 바로 토론과 논쟁을 허락하지 않는 내부 단속의 강화"라는 역설적인 상황을 거론했다.

우리 사회는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 전후 이념 충돌이 극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진보 진영의 위선을 질타하는 목소리와 함께 일부 극우 세력의 가짜뉴스(페이크 뉴스) 전파가 일상적으로 이뤄졌다.

이 교수는 "민주화의 결과물이 이런 전체주의적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경험들이 확인해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특이하거나 이상해 이런 현상이 드러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 보다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발전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역설적 현상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의 설명은 새로운 사고를 주문한다. 그의 날카로운 진단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게 만든다.
외부의 목소리를 차단하고, 내부 단속을 강화하는 흐름이 결코 민주주의 퇴행이 아니라는 것이라면 일단 한숨을 돌리게 한다.

한 단계 도약을 위한 내부 진통이라면 다행이기 때문이다. 이 교수의 진단처럼 우리 사회의 진통이 성숙을 위한 의례적 과정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시기가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 사회가 성숙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갈등을 겪는 게 사실이라면 이런 질문은 어떨까. 다른 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열린 태도는 가능할까.

단일민족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한 교육을 받아온 기성세대들과 달리 우리 사회는 지금 다문화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 시대의 도래와 달리 의식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귀화 프로농구 선수 라건아(31·전주 KCC) 등은 국내에서 당했던 각종 인종차별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 교수는 "인종차별은 근대 민족 국가의 탄생과 궤를 같이 한다"고 전제했다. 그는 이어 "민족주의가 지닌 양면성이 있는데, 내부 구성원들의 평등을 말하기도 하지만, 바깥 구성원들에 대한 배제 논리로도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한국 사회의 현상을 이론과 직관으로 진단한다. 그의 진단엔 뚜렷한 이론과 철학적인 사색, 사회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융합돼 있다.

이 교수는 문화평론가이지만 영문학자이기도 하다. 영국 셰필드 대학에서 문화비평으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분석해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당대를 직시하는 객관적인 비평으로 언론과 네티즌의 관심을 끌어왔다.

이 교수는 이날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근 생활에 대해서도 간략히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국제적인 네트워크 구축에 나섰다"며 "저는 2013년부터 미력하나마 아시아 학자들을 중심으로 학술연대를 구축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이런 노력이 '아시아 이론 네트워크'(ATN), '글로벌 포스트 미디어 연구네트워크(GPSN)였다.

ATN은 수년 전 사실상 자리를 잡은 상태이지만,GPSN은 지난해 시작돼 본격화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이 교수는 예상했다.

이 교수는 올해 하반기에는 1년 기간으로 연구년을 가진다. 연구년에는 그동안 미뤄뒀던 영어 저서가 탄생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는 "한 권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의 정치 철학에 대한 것이고, 한 권은 한국의 민중미술에 대한 것"이라고 말했다. '준비된 정도'를 묻는 질문에 이 교수는 "들뢰즈에 대한 것은 50% 정도, 민중미술에 대한 것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고 답했다.

'이것이 문화비평이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판타지', '인문좌파를 위한 이론 가이드', '마녀 프레임', '상파, 파리를 그리다' 등으로 국내 독자들에게 성찰과 사색의 시간을 제공했던 그가 연구년에 어울리는 걸작을 내놓기를 기대해 본다.


유명현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mhyo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