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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을 일군 사람(6)]-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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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을 일군 사람(6)]-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춤밭을 일군 사람들(6)]-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슬픔이 침화되어 화석이 될 것 같은 情限의 정서


춤 집현전의 지고지순한 한국춤 학사


전통 춤밭에서 창작의 서사를 써내다

‘승무’에서 정갈한 엄숙함이 달빛처럼 피어나


16년 간 연극인에게 ‘몸의 움직임’을 집중 지도


한국 춤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신명의 미학’으로 풀어내



▲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평론가] 한명옥 국립국악원 무용단 예술감독은 1956년 9월 7일 서울 출생으로 성신여고를 졸업하고 이화여대와 대학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그녀는 1975년 대학 입학 이후, 의상 대사를 사랑한 선묘낭자처럼 춤 사랑에 빠졌고, 뉴욕대 대학원에 진학,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뉴욕의 한복판에서 우리 춤을 생각하는 역설적 상상력은 그녀의 오늘을 가늠케 하는 척도다.

늘 연구하는 그녀의 자세는 대학 수석졸업이라는 당연한 결과를 낳았다. 한국적 정서 위에 서양의 과학적 분석력을 꿰뚫는 탐구정신이 달처럼 걸려있고, 고즈넉한 산사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처럼 작은 목소리로도 몰입에 지친 춤꾼들을 녹일 격려를 구슬처럼 달고 있다. 그녀가 살풀이나 승무를 추면, 정갈한 엄숙함이 문지방으로 들어오는 달빛처럼 피어난다.

▲ 꽃신이대 출신들의 ‘배꽃 춤판’에서 보았던 최근의 그녀는 늘 그래왔듯 겸양지덕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남을 배려하는 현모양처형 무용가다. 치우치지 않고, 모자라지 않고 자신을 숙성시키며 완벽을 자랑하지 않으며 전통의 미덕 존중과 뜨거운 창작 정신으로 공생의 길목, 저 만치 앞에 서서 서로를 격려하는 드문 선비의 자세를 보여 왔다.
국악고, 서울예술단, 대전연정국악원, 인천시립무용단에서 현재에 이르는 그녀의 춤 커리어는 정통의 궤적 그 자체다. 수원대, 공주대, 부산대, 용인대, 중앙대, 한예종, 성균관대에 이르는 그녀의 강좌는 학생들에게 진지하며 유쾌한 나날이었다. 청춘을 춤 밭에 두고 살아온 나날들은 무인(舞人)들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지만 자신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중요무형문화재 제97호 <살풀이춤> 이수자로서 그녀의 행보는 한국무용연구회, 창무회, 한국무용교육학회, 한국무용협회에서 역할과 봉사로 무용 발전에 기여해왔다. 많은 상을 타왔지만, 그녀가 본격 수상 반열에 오르고 관심을 끌게 된 것은 2006년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로부터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을 받고 부터다.

▲ 미인도한명옥, 길은 험하고 마음은 급해도 그녀는 변칙과 곁눈질을 멀리하고 춤의 정도를 걸었다. 대기만성(大器晩成)은 그녀를 호위무사처럼 지켜보고 있다. 슬픔을 익히고 삭여, 즐거운 맛을 빚어낼 줄 아는 진정한 춤꾼의 자세를 견지하는 안무가, 그녀는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욕심내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차근차근 춤 밭의 서사를 쓰며 내공을 길러왔다.

김매자(한국 전통무용, 창작무용), 김천흥(춘앵전 및 한국무용사 이론), 이매방(중요무형문화재 ‘살풀이춤’ ‘승무’ 외 다수), 정혜윤(진주 교방굿거리 춤), 태종실(경기도 지방 김숙자류 춤과 소고춤) 선생에게서 사사받는 등 한명옥은 학구열에 충만한 인정받는 도제수업의 길을 무던히 인고하였다. 낭랑한 그녀의 목소리가 후학들에게도 춤 나침판이 되었으면 한다.

한명옥, 그녀의 춤에는 늘 슬픔이 배어있다. 모래알로 흩어지는 어머니에 대한 끝없는 그리움 같은, 그 슬픔이 침화되어 화석이 될 것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듯한 정한(情限)의 정서를 보여준다. 단아하면서도 강인한 여인상은 그녀를 통해 극대화된다. 그녀의 얼굴에 남은 춤 여정의 여운, 우리는 행복할 수 있었지만, 그녀에게 강요된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 승무(이매방 류)그녀의 신체 표현력에 대한 집요한 연구는 결국 우리 춤을 살찌운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전통문화유산의 복원과 창조, 부토 춤 연구, 양주 별산대 놀이, 광주검무, 무용에 있어서 극적 표현성 연구, 무용수의 부상 연구, 보존과 재현, 창작에 있어서 기법연구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그녀는 춤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 분석하고, 자신의 춤에 응용하고 있다.

한명옥은 1985년 5월 ‘85청소년예술제에 『흙바람』(국립극장 소극장)으로 안무가의 길을 걷는다. 9월에 국악교육 30주년 기념대공연으로 창작무용 『또 하나의 벽』(국립극장 대극장)을 안무, 소극장과 대극장을 조율하는 안무가가 되었다. 이듬해, 제6회 창무회 정기공연에서 『탈, 탈』(문예회관 대극장)을 안무, 이화여대 출신의 역량 있는 한국무용 안무가가 되었다.

1991년 뉴욕 메리몬트 맨해튼 칼리지 극장에서 한명옥무용단은 ‘전통에서 현대까지’를 공연하였고, 안무는 한명옥이 맡았다. 이대 출신이 주축이 된 한국춤 전공자들의 춤 단체인 창무회, 김매자 선생이 종사(宗師)인 이 단체에서 한명옥은 1993년 창무 레퍼토리 컴퍼니 무용단의 창단 공연(포스트극장) 총구성 및 지휘를 맡아 그 능력을 인정받았다.

▲ 새굿1994년 서울예술단 시절, 그녀는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공연’ 안무, 제18회 정기공연 『징게멍게 너른들』, 뮤지컬 조안무, 가무악 공연 ‘우리소리 한마당’ 조안무 및 지도, ADF 개막공연 『천도』 조안무 및 지도‘, ‘국군의 날’ 국방부 주최 축하공연 『깃발춤』을 구성하였고, 서울예술단 제21회 정기공연 무용극 『고구려의 혼』을 조안무하는 도제수업을 하였다.

한명옥에게 독립 춤 안무가로서 길을 가게 한 것은 1995년 5월 30일 북촌 창우극장에서의 ‘풍물과 춤의 만남’이었다. 이듬 해, 한명옥은 드림무용단을 창단하고 제1회 정기공연 ‘한명옥의 전통춤판’ (창무 포스트극장)을 갖는다. 이후 지속적으로 그녀의 정기공연은 계속되었다. ‘한명옥의 춤, 그 영혼의 향기’는 정동극장 관객들의 일렁이는 마음을 사로잡았다.

한명옥의 경력 중, 애정이 갈 듯한 대목은 한예종의 초창기에 해당되는 1996년부터 금년 까지 16년 동안 강사와 겸임교수로서 연극인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연극인의 기본인 되는 ‘몸의 움직임’을 집중적으로 지도해 왔다는 점이다. 직위와 열정으로 미루어 그녀의 됨됨이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탐욕과 쟁취에서 초연한 자세를 보여 왔다는 점은 상찬 받아야한다.

▲ 조율21998년부터 대전 연정국악원의 부름을 받은 그녀는 정기공연을 수행하였고, 제1회 전통무용 연구발표회, 『천년의 세월』을 안무하고 특별 출연, 『정재』를 초연 안무하면서도 유파별로 본 우리춤 6인전 ‘소고춤’ 등을 소화해내었다. 한명옥의 21세기를 여는 작업은 인천에서 시작되었다. 2001년 6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에서 인천시립무용단 제45회 정기공연 ‘몸짓20’에서 제5대 예술감독으로서 그녀는 춤 지평을 새로 연다.

인천에서 보낸 6년은 『전통춤사위로 푸는 몸짓』,『살풀이춤』,『미추홀-생명의 땅』,『류별로 본 우리 춤작가 8인전』,『‘월인천강지곡』,『인천의 춤 한국의 춤』,『본향(本鄕)-마음이 머물다 가는 춤』,『새 굿』,『심청 왕후』,『조율-춤이 빚어낸 풍경』,『‘미륵의 꽃』,『미인도(美人圖』,『균형-창을내어 안을 들여다보다』,『백야(白夜)-Since2001』와 같이 했다. 인천 무용사에 큰 획을 그은 그녀는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를 갖게 된다.

인천을 떠난 2007년 6월 한명옥드림무용단은 제7회 정기공연 ‘왕기철 소리꾼과 떠나는 한명옥의 춤 여행’에서 작년 11월 29일, 제10회 정기공연을 거행했다. 병행하여 그녀는 경복궁, 국립민속박물관, 국립국악원, 포스트극장, 한국의 집 등에서 조선시대 과거제 재현, 궁중정재(아박무, 춘앵전, 검무 등), ‘살풀이춤’, ‘명무전’ 등으로 우리 춤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 소고춤그녀의 춤 빛깔은 미국(뉴욕, 워싱턴, 하와이), 홍콩, 베트남(호치민, 하노이), 일본(가고시마, 나고야), 중국(심양, 대련, 천진, 청도, 허난 성, 허베이 성, 상해예극학원무용학교), 방콕, 미얀마, 캄보디아, 인도,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해외에서도 그녀의 춤은 들뜨지 않고 한국 춤의 아름다움과 정서를 ‘신명의 미학’으로 풀어내었다.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공연을 위해 다니던 그녀는 국악원 무용단 수장이 되어 날마다 우리 소리와 우리 춤으로 전통의 향기를 피워내고 있다. 그녀는 보름달이 뜨고 질 줄을 안다. 그녀가 그간의 공연에서 보여준 미학적 성취는 그리움을 바탕에 깐 ‘믿음과 사랑’이었다. 연꽃같이 뜰 수밖에 이치로, 그녀의 존재감은 투명한 블루, 투명하고 담백하며 깔끔하다.

백색 눈물의 만개, 몸과 마음이 바르면 세상에 거칠 것 없다는 한명옥의 안무는 전통의 그윽한 멋과 맛을 보여주며 몸이 악기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새 한국 춤의 지평을 넓혀갈 그녀의 춤은 전통의 바른 보존과 변주에서 보여주는 깊이를 느끼게 한다. 오랜 세월, 자주색 응어리의 피 속에 머문 냉기를 털어내는 작업은 인생에 대한 견성과 관조다.


▲ 미륵대나무는 5년을 기다려 싹을 틔운다. 하룻밤에 한 척 씩 뻗어 숲을 지배한다. 한명옥, 그녀는 대나무과에 속해 있음이 분명하다. 한명옥, 그녀의 춤은 현재완료진행형이며 그녀의 안무작은 슬픔을 치유하는 명약이다. 많은 고증과 연구를 거친 전통춤과 창의력 번뜩이는 창작 춤으로 우리를 늘 즐겁게 해줄 것을 믿는다.

/장석용 댄스 칼럼니스트(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