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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을 일군사람(10)]발레계 야전 사령관 한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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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을 일군사람(10)]발레계 야전 사령관 한칠

[춤밭을 일군사람(10)]-한 칠 ‘발레터닝서클’(비바츠 발레앙상블) 예술감독

발레계 야전 사령관이자 인디 발레의 대표 발레리노


늦은 나이에도 공연할 수 있는 발레 테크닉 개발


他장르 춤에서 응용한 팔동작과 상체움직임 구사


솔로 작품 『만다로』로 ‘뉴욕타임즈’로부터 극찬 받아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평론가] 한 칠(韓 七·Daniel Han)은 1962년 4월 9일 나주 출생이다. 최 현, 김학자, 블라드밀 독고도브스키, 겔시 커클렌드의 제자인 그는 금강석 같은 굳은 심지로 야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발레 꽃을 피워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체득한 그는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발레 견습생들에게 늘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다. 짧은 남성 발레 무용수의 무대 생명력을 극복해내며, 그는 굳건하게 활동하고 있다.

한 칠은 독립 발레리노로서 겪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인내와 극기, 거침없는 소신으로 묵묵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창작발레 안무가이자 발레 마스터다. 그만의 특별한 훈련법과 열정은 세대차가 나는 발레 연기자들과 한 무대에 설 수 있게 하는 힘의 원동력이 된다. 그는 자부심으로 발레 30년의 현재를 노력만이 해내는 경지로 만들어 가고 있다.
무용수들에게 사표(師表)를 보여주면서, 소통을 위해 기꺼이 한 무대에 선다. 그는 무대에 공연을 올리는 안무가, 스탭들, 그리고 무용수들 모두가 정갈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무대를 꾸며야 한다고 강조한다. 존경하는 스승들의 가르침이 자신의 생각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그러한 생각과 행동이 무대 예술에 대한 진정한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 침향무(2002년)
청년시절, 그는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다. 무용 입문, 2년 만에 고(故) 최현 선생의 지도로 1984년 동아무용 콩쿨에 한국 무용으로 입상하기도 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1987~1988)은 물론 동랑 현대 무용단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다가 국립 발레단(1989~1990·국립발레단 솔리스트)에 입단하게 된다. 미국으로 건너가 1990년부터 1991년까지 고학을 하면서도 악착같이 미국 뉴욕의 엘빈 에일리 댄스스쿨에 다녔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데이비드 하워드 댄스스쿨과 브로드웨이 댄스센터에서 겔시 커클렌드와 베기블렉 그리고 뉴욕 콘서바토리 발레스쿨에서 블라드밀 독고 도브스키에게 수학하면서 여러 안무가들과 작업을 같이했다.

그는 타 장르 춤의 장점들을 그만의 발레 방식에 담아냄으로써 개성이 뚜렷하고 어떤 남성무용수와도 견주어도 뛰어난 팔동작(port de bras)과 상체의 움직임(Epaulement)으로 지적인 발레를 구사하는 무용수로 평가 받아왔다. 자신의 안무에 자신의 생각과 장점을 최대한 활용, 타 안무가들과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어 모든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1993년과 1994년 미국 미네소타 댄스 씨어터 게스트 주역으로 활동하였던 한 칠은 1993년 뉴욕 코리오그라퍼 온 포인트 발레 빌더스가 선정한 안무가에 뽑혀 15분짜리 솔로 작품 『만다라』를 공연, ‘뉴욕 타임즈’로부터 참가 작품 중 가장 훌륭한 평을 받았다. 뉴욕, 캘리포니아, 일본, 괌 그리고 국립 발레단 해설이 있는 발레에 등에서 수차례 공연하면서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고, 창작 안무가로서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게 된다. 1994년에는 괌 정부로부터 예술공헌상을 받기도 하였다. 1994년부터 1995년 미국 세인트 루이스 발레단의 주역으로도 활동하다 1995년에는 미국 뉴저지 발레단 주역으로 옮겨 잠깐 활동하다 그 해 말 귀국하게 된다.

▲ 선 라이즈 선 셋(2010년)
뉴욕에서 여러 스승들에게 수학을 한 뒤 1994년부터 2008년까지 캘리포니아 누보챔버 발레단 게스트 주역, 2005년 ‘서호주 링크댄스컴퍼니’ 게스트아티스트, 2006년 ‘서호주 발레단’ 게스트아티스트로 프로 발레단 경력이 화려하다.

그의 교육경력도 다양하다. 세인트루이스 발레스쿨 발레강사, 뉴저지 명숙전 댄스센터, 누보챔버발레 스쿨 게스트 발레마스터, 국립발레단 아카데미 전임 강사, 서울예술대학 무용과 발레강사, 호주 퍼스의 액설런트 발레스쿨 발레 강사, 호주 퍼스의 콘서바토리 발레스쿨 발레 강사, 한국 예술종합학교 무용원 및 전통원 무용과에서 후학들을 지도했으며 지금도 여러 곳에서 발레를 지도하고 있다.

발레 작품이 『만다라』라는 제목만으로도 개성이 있듯이 그의 작품은 철학적이면서 동양적인 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그 위에 인간의 심리상태를 발레로 승화 시켜낸다. 그의 작품은 서정적이면서 드라마틱하고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자연스러움 속에서 관객의 감성을 자극하는 극적 발레를 추구하고 있다.

그는 음악과 무용수가 하나가 되어 표현하는 아름다움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길을 추구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음악이다. 음악이 전체적인 스토리 전개와 감정을 표현하는데 선두에 선다. 그의 열정은 늘 살아 숨 쉬고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 The Tree(2011년)
5년 동안의 미국 활동을 끝내고 1996년 친정 국립발레단으로 컴백 무용수와 안무를 병행하면서 『침향무』(듀엣·1998년), 『To my sweet heart, 나의 애인에게』(1997년 제1회 발레협회 추최 안무 경연대회)에서 그랑프리를 받으면서 주목 받는다. 그리고 국립발레단 중견단원 공연에 『니르바나』(1998년)를 출품 관객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으면서 점점 안무가에 길로 접어든다.

그는 3년 동안 국립 발레단의 활동을 마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끝없는 창작이라는 고행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 시작은 1998년 12월부터다. 미국 멤피스대학에서 세미나를 개최하였고, 멤피스 퍼로밍 아트센터에서 작품들을 공연하고, 그 이듬해 3월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한칠 발레 콘서트’를 개최하면서 본격적 홀로서기에 나선다.

그 후 그는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공연하기 시작하면서 2001년 6월에는 퍼포밍 아트센터 (멤피스 테네시), 캘리포니아 누보챔버 발레단과 한칠 발레단 합동공연(켈리포니아), 2002년10월 퇴계 이 황 탄신 500주년 기념 초청공연 등으로 개인 공연을 시작한다. 국립 오페라단 『코지판 투테』를 안무,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그는 프리랜서 안무가로서 한국에서의 활동과 창작에 고통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처참하게 느끼면서 예술가로서 살아갈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그는 호주로 유학할 결심을 하고(웨스트 오스트랄리아 아카데미오브 퍼포밍 아트) 이디스 콴 대학에서 2006년에 졸업하였고, 안무가로서 체계적 공부를 시작, 창작 예술 석사 과정을 3년(2009년)만에 마무리하였다.

▲ Talk to Her(2012년)
‘동시대 클래식 발레 작업에 적합한 새로운 안무 스타일을 창조하기 위한 참선과 한국춤의 원리와 활용에 관한 사용’(The use of principles and practice of zen and korean dance to create a new choreographic style for contemporary classical baller work)에 관한 논문을 썼고 그리고 졸업 작품 『강강술레』를 발표, 대학 측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았다.

석사 과정 중에도 ‘서 호주 발레단’과 ‘온 포인트 무용단’의 게스트로 활동했고 2008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본격적 작품 활동에 들어간다. 그는 졸업 작품을 발전시켜 『우주 그 영원한 순환 강강술레』(2008년 3월), LA문화원 초청 미국 무용수들을 한국 창작 발레에 출연시켜 『밤하늘을 바라보며』(2008년 8월) 를 공연하기도 하였다.

2008년에는 미국 플러튼 칼리지 씨어터에서 공연된 『호두까기인형』에서 게스트 주역으로 출연하였고, 미국 컬티스 씨어터에서 공연된 『언덕너머 저멀리(Over the Hill and Far Away)』의 초청 안무를 맡게 된다.

최승희 춤 축제에서는 한국 무용과 발레를 융합시켜 『내 눈물 속에 당신이여』(2008)를 출품하여 기대를 모으기도 했다. 그 후 매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오고 있는 그의 작품들을 보면 『다시날다』(2009) 『Sunrise Sunset』(2010), 제32회 서울 무용제 출품작 『The Tree』(2011) 『비창』(2011)을 발표했다.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하며 타 안무가들과 차별화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는 그는 얕은 유행을 타거나 모방한 작품이 아니라 자신의 철학과 소신을 갖고 관객의 공감대를 사는 감성 발레, 쉬운 스토리로 처음 발레를 접한 사람도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무대 장치가 화려하지 않더라도 춤과 음악, 감정 표현만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작품을 추구한다. 이것이 한 칠이 추구하는 작품스타일이다.

그는 2012년에 새로운 작품으로 전국 투어 공연을 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안무한 『발레와 빛의 소리』는 5월 부산, 익산, 단양, 공주 등에서 7회 공연을 하면서 관객들에 뜨거운 반응을 얻고 왔으며 또한 발레로 듣는 이야기 『나무』를 통해 발레를 처음 접하는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면서 대중 발레의 서막을 열어가고 있다.

올해 20회가 넘는 공연을 개인단체에서 해냈다. 안무가 한 칠이 추구하는 작품이고 그가 발레 예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삶의 목표다. 끝없는 노력과 발레를 끝없이 즐기는 한 칠은 자연 예술가(Natual Artist)임에 분명하다. 2012년 한 칠은 비바츠 발레 예술메니즈먼트 대표 조윤혜와 손잡고 비바츠발레 앙상블 예술 감독 및 안무가로 변신했다.

『발레와 빛의소리』는 카타 IT 국악밴드와 융합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공연장마다 큰 호응을 얻고 있으며 100% 초청공연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올해의 피날레를 장식할 공연을 전주 한국소리문화의 전당에 초청되어 11월3일 오후 5시에 공연한다. 그리고 내년 공연도 벌써 여러 군데 초대 받은 상태다. 특히 문화 나눔 사업 ‘발레로 듣는 이야기 나무’는 발레 소외계층의 열렬한 환영을 받고 있다.


▲ 발레와 빛의 소리(2012년)
관객의 반응은 뜨겁고 한 칠의 심장도 뜨겁다. 예술은 서로 공유하는데 큰 가치가 있다며, 무한질주의 한 칠은 즐거운 마음으로 발레를 통해 세상과 행복한 소통을 하고 있다.

/장석용 댄스칼럼니스트(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