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4회)]
'젊음은 좋은 것이고, 늙음은 나쁜 것' 이란 편견 팽배
이대로 살 것인가? 새로운 삶의 변화 줄 것인가? 선택 기로
'소리없이' 울지 말고 흔들리지도 말고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젊지도 늙지도 않은 세대
하지만 극히 최근까지 우리 사회뿐만 아니라 개개인도 중년기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아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기보다 그런 시기가 없는 것처럼 살아왔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한 저명한 사회학자의 표현대로 그들이 ‘소리내어 울지 않는 세대’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나의 삶에서 그런 시기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애써 부인하고 눈을 감았기 때문인가? 이런 이유에서 지금이라도 중년기에 관심을 갖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먼저, 우리의 생애를 몇 개의 시기로 나누는 것이 정확한 지에 대한 일치된 견해는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생애는 살아가는 장소와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문제와 갈등이 많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청소년기’도 사실상 우리 삶에 나타난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필자의 할머니는 15세에 결혼해서 18세에 첫 자녀를 낳았다. 그 나이를 지금의 여학생으로 바꾸면, 중학교 때 결혼해서 고등학생 때 첫 자녀를 낳은 꼴이 된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이해가 안 되지만 1900년도 초반의 여성들은 대개 10대 중반에 결혼하고 자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우리 할머니는 소위 청소년기를 거치지 않았다. 아니, 그 시대에는 청소년기라는 것 자체가 없었다.

그렇다면, 중년기는 무엇과 무엇의 가운데인가? 우리의 삶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는 어린이로 사는 시기이고, 두 번째는 어른으로 사는 시기이다. 이 시기의 한 가운데는 소위 ‘청소년기’가 있다. 그리고 어른으로 사는 시기는 또 두 시기로 나뉜다. 첫 번째는 ‘젊은이’로 사는 시기이고, 두 번째는 ‘늙은이’로 살아가는 시기이다. 따라서 중년기는 ‘젊은이’와 ‘늙은이’의 가운데 있는 시기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앞서 이야기한대로 ‘더 이상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지도 않은 시기’다.
중년기는 지나가는 ‘젊음’과 다가오는 ‘늙음’이 공존하는 시기다. 하루하루 늙어간다는 것을 느끼지만, 이 사실을 강하게 부정하고 싶은 시기다. 우리는 ‘청춘’이 삶의 절정이고, ‘젊은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는 편견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이 편견을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늙어가는 것’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것이 된다. 따라서 ‘젊은 것은 좋은 것이고, 늙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미신(迷信)이 생겨난다. 덕분에 자신이 중년이라는 사실을 가능하면 감추고, 계속 청춘의 모습으로 살아가려고 애쓴다. 계속 젊은 ‘척’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래저래 중년은 고달프다.
아무리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늙어간다는 것을 ‘몸’을 통해 느낀다.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이다. 우선 외모가 눈에 띠게 달라져 간다. 어느 덧 흰머리가 생기기 시작하고, 눈가에 주름이 짙게 패이기 시작한다. 날씬하던 몸매도 어느덧 영락없는 ‘아저씨’ ‘아줌마’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중년이 되어간다는 것은 사회적인 관계에서도 느낄 수 있다. 20대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비록 경험은 없었지만 ‘푸릇푸릇’한 젊음과 패기에 넘쳐있었다. ‘세상이 모두 내 것’과 같은 느낌으로 노력하면 오르지 못 할 산이 없는 것 같은 느낌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어느 덧 40대 후반이 되자, 20대의 패기와 꿈은 점점 사라지고 새로 입사한 신입사원을 볼 때마다 어느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떠난 적도 없고, 떠나보낸 적도 없는데’ 속절없이 젊음이 사라져 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중년에는 가족 관계에도 큰 변화가 생긴다. 이제 자녀들이 모두 성장하여 부모의 곁을 떠나는 소위 ‘자녀의 진수기’이므로 대부분의 부모들은 ‘텅 빈 둥우리’를 경험한다. 자녀들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살아가고, 모든 것을 자녀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한국의 부모들에게 자녀들이 곁에서 떠나간다는 것은 살아가는 목적과 의미를 새로 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몸으로 느끼는 아저씨?아줌마
이런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는 중년기는 과연 어떤 시기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중년기는 현재의 자신의 삶을 평가하는 시기다. “지금 나는 젊었을 때 꿈꿨던 대로 살고 있는가?”,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새로운 변화를 주어야 할 것인가?” 등의 중요한 질문에 답을 찾아야 하는 시기다.

현재의 삶을 평가하는 시기
위기(危機)는 위험(危險)과 기회(機會)를 내포하고 있다. 중년이 위기의 시기라는 말은 다름 아니라 중년은 위험한 시기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기회의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마치 칼이 위험한 도구인지 편리한 도구인지를 판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칼이 범인의 손에 들어가서 사람을 해치게 되면 흉기가 되지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는 주부가 사용하면 유용한 도구가 된다.
중년기는 노쇠해지고 쇠퇴해지는 시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자신과 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게 하고, 나이에 대한 시간전망을 바꾸어 지금까지의 삶에 대해 재평가를 하게 하며, 미래의 삶에 대해 준비하게 하는 귀중한 발달의 기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년은 위기의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보다 나은 삶을 설계하고 보람 있는 노후를 설계하고 준비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다.
중년의 위기는 발달과 변화의 과정을 포함하는 것으로 가치관이나 행동의 변화 때문에 생기는 일시적인 심리적 혼란감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소리 없이’ 울지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중년의 변화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