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의 미술이 있는 삶(37)] 그 집의 뒷모습, 늙은 여자/장숙
여성들의 파편화된 모습 통해 인생의 여정 담아내우리 내부에 가지고 있고
이미 거기에 살고 있으나
깨닫지 못하는 우리 '집'의 모습
늙음이란 단어에서는 왠지 서글픈 냄새가 난다. 늙는다는 것이 더 이상 연륜이나 지혜의 상징이 아니라 시듦의 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지금, 자본주의 사회는 건강과 아름다움으로 대표되는 젊음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고 늙음은 최대한 늦추고 싶으나 피할 수 없는 사형선고의 집행유예로 선언해버렸다.
우리가 늙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삶에서 죽음으로 가는 과정인 인생 속에서 늙음은 죽음에 좀 더 가까운 것임을 알고 있으며, 그 모습은 시드는 꽃과 꺼져 버린 촛불처럼 가장 찬란했던 순간 뒤의 소멸과 그림자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도 사는 곳도 직업도 각기 다른 여성들의 몸 일부분의 포착과 구멍을 막아 염(殮)을 하는 과정의 사진을 통해, 흑백의 사진 그 자체가 흰 전시공간에 검은 얼룩의 구멍이 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삶의 ‘구멍’을,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무리 갈구해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우물 같은 욕망의 ‘빈 공간’을 본다.

상처 입은 짐승의 아픈 등과 거친 나무껍질을 닮은 이 뒷모습에는 얼굴이 없다. 때로는 얼굴이 보이는 앞모습도 흐릿하고 겹쳐져서 그 얼굴은 어느 누구의 얼굴도 아닌 얼굴이 된다. 따라서 얼굴 없는, 혹은 어느 누구의 얼굴도 아닌 이 모습들은 우리 모두의 얼굴이 된다.

이제는 다 타버린 장작더미 속의 작은 불씨처럼, 인간이 가진 모든 영화로운 욕망의 끝에는 결국 스스로 욕망의 결핍이 되어버린 늙은 여자가 있다. 그러나 늙은 여자는 한 번 빠지면 돌아올 수 없어서 가까이하기 두려운 검고 깊은 심연(深淵)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이미 우리 내부에 가지고 있고, 우리가 이미 거기에 살고 있으나 깨닫지 못하고 때로는 그 존재를 부정하고 싶은 우리 ‘집’의 모습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늙은 몸의 뒷모습으로 세계라는 집에 이미 살고 있다. 얼굴을 두 손으로 온전히 가려도, 늙은 여자들이 평생을 일구었을 밭이랑 같은 이마의 주름은 우리의 마음에 더욱 더 깊이 새겨지고, 낡고 녹슬어 세워둔 농기구와 같은 손가락들은 얼굴의 표정을 가리기보다는 오히려 더 처절한 표정을 보여준다.
오래된 나무옹이 같은 늙은 여자의 주름과 점은 몸 전체가 된다. 늙은 여자의 몸이 살고 있는 집은 그 몸과 하나이자 집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들풀과 꽃들, 수많은 벌레들과 같은 생명체와 함께 더 커다란 집을 이룬다. 수몰지역은 블랙홀처럼 주변의 모든 것을 없애버려 ‘빈 공간’으로서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예전에 살던 집, 일구던 논과 밭, 그리고 과거의 삶과 추억을 물 밑에 묻어둔 채 이를 품고 가는 것처럼, 늙은 여자의 주름과 점, 뒷모습에서 시작된 세계는 이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어느새 커다란 집이 되어 우리를 감싼다.


저술가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집에서는 공허를 즐기는 표시가 나타난다.”고 했고, 철학자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공간은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라 실존적인 체험의 공간이며, 일종의 정체성을 갖는 공간’이고, “사물(건축)은 하늘과 땅, 신성함과 죽을 운명의 인간이 바로 거기에 어우러지는 사방의 모여듦이다.”라고 설명했다. 집의 공허함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할머니의 뒷모습, 상처, 주름은 하늘과 땅의 가운데에 있는 인간에게 삶의 체험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모여들고,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로 모여든 가장 절절한 표현인 것이다.
그 몸의 점, 늙은 여자의 몸이라는 얼룩은 점점 커지고, 이는 우리의 집, 우리의 세계, 우리의 우주로 커다랗게 확대되어 우리 모두를 품어 안는다. 그래서 죽음이 이미 우리와 함께임을 아는 늙은 여자의 등은 쓸쓸하지만, 여기에서의 삶이 ‘살아볼만한 인생’이었음을 나직이 읊조린다.
우리는 그 집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집의 뒷모습을 내 몸인 듯 보고 있다. 어느새 늙은 여자가 되어.

장 숙
상명대학교 및 동대학원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미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과 캐나다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공근혜 갤러리, 자하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울산국제환경사진페스티벌, 서울사진축제 등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여성을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작품 그 자체를 하나의 물음표로, 집으로 여기며 관객에게 제시하고 있다.
전혜정
미술비평가, 독립 큐레이터. 예술학과 미술비평을 공부했다. 순수미술은 물론, 사진, 디자인, 만화, 공예 등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전시와 비평 작업, 강의를 통해 예술의 감상과 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으며, 창작자와 감상자, 예술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고 있다. <아트씨드프로젝트(ART Seed Project): 시각문화연구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국민대 대학원 등에서 전시기획, 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