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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소풍, 그 기억에 걸린 슬픔에 대한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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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의 소풍, 그 기억에 걸린 슬픔에 대한 회상

[무용리뷰] 노정식 안무의 『소풍 2, Picni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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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식 안무의 『소풍 2, Picnic 2』
M극장 ‘우리시대 춤과 의식전’의 새로운 기운, 로 댄스 프로젝트(Roh Dance Project)의 대표 노정식은 성진수의 대본 ‘소풍’을 기반으로 이동하 출연의 독무를 잘 안무해냈다. 대부분 소풍은 즐거운 추억을 안겨주지만 소수의 노약자들에겐 버려짐으로 연결된다. 소풍은 시인 천상병에겐 지상으로의 외유였고, 어떤 어린이들에겐 버림의 의미로 쓰여지기도 한다.

노정식의 ‘소풍’은 슬픔이 침화된 고통의 의미로 다가온다.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1990년 춥지만 따뜻했던 어느 날, 어머니는 할머니 댁으로 소풍을 가자고 말했다’라는 사내의 낭만적 내레이션과는 판이하게 다른 슬픈 사연이 숨어있다. 어머니 손에 이끌려 떠났던 할머니 집, 사탕이랑 사과를 들고 꿈에 부풀어 있었던 날, 어머니는 홀연히 떠났고 그는 버려졌다.
사연을 안고 검정색 양복을 입은 한 사내가 여행용 가방을 들고 등장한다. 저음의 첼로가 슬픔의 농도를 짙게 하면, 세월에 그을린 사내는 느린 걸음으로 분노와 연민으로 슬픔이 삭아 내린 추억의 흔적을 더듬는다. 내레이션은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음악이 변주되며, 배신에 허탈해 하며 사네는 큰 소리로 웃는다. 또 다시 내레이션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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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식 안무의 『소풍 2, Picni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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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식 안무의 『소풍 2, Picnic 2』
적정량의 조도가 받혀주는 가운데 사내는 내공이 있는 응축된 동작으로 분노를 반복해내며, 영화배우 캠 캐리의 얼굴 연기의 일면을 보인다. 이 때 조명은 하이키 라이트, 이 대목이 강조되고 있음을 알린다. 다시 갈매기, 파도소리가 스쳐간다. 바닷가 어디 쯤 버려졌을 사내는 유년을 생각해내며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쓸쓸함이 감도는 바닷가 풍경이다.

창문 너머 그리운 그곳에 버려진 자신, 어머니를 용서할 수 없는 사내의 분노, 갈매기와 파도소리가 반복되는 가운데 무대 바닥에는 숱한 종이비행기가 쌓이며 공연은 종료된다. 노정식, 그도 차디찬 무용계에 버려진 채 생존을 이어가는 외로운 존재이다. 힘들게 현재적 삶을 살아가며, 그는 자신을 버린 무용계 엄마를 찾아갈 것이다.

‘단 한번 뿐인 인생/살아본 느낌이 어떠한가?//거칠고 잔인하고 사나우면서도/가시처럼 찌르는 것이 인생//한가닥 숨결로도 충분히//소리내지 않고 다가갈 수도/지워낼 수도 없다//어쩌면 사람의 인생은 눈이 떠있는 상태가 아닐지도 몰라//항상 눈이 가려져 있는/그 인생이란 놈은/눈 없이도 갈 길을 잘도 찾아간다./마치 바람부는 어느 소풍날처럼...//’

노정식은 서울무용제에서 『율-律』(2010)로 ‘연기상’과 ‘미술상’, 한국현대무용진흥회(2014) ‘최고안무가 상’, SCF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에서 『마법의 눈, Magical Eye』으로(2013) ‘그랑프리’, 한국현대무용협회(2013) ‘오늘의 무용가 상’을 수상한 인정받는 신예 안무가이다. 그의 감각적인 안무스타일과 참신한 소재는 늘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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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식 안무의 『소풍 2, Picni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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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식 안무의 『소풍 2, Picnic 2』
그의 안무작은 『발화하는 몸-상처』(2014,국립현대무용단), 『마법의 눈, Magical Eye』(2014,리투아니아 제24회 아우라 국제무용제), 『기억, 폭풍을 몰고오는 구름, Memory- Storm Cloud』(2014,MODAFE), 『소풍』(2013, PADAF), 『윤동주 달을 쏘다』(2012, 서울 예술단), 『율-律』(2011, 서울 국제 공연 예술제), 『마법의 눈, Magical Eye』(2011,크리스틱 초이스 평론가가 뽑은 젊은 무용가 초청), 『율-律』(2010,서울 무용제)에 이른다.
노정식은 낭만과 신비를 섞은 제목들로 비범을 연출해왔다. 그가 『소풍 2』에서 보여준 ‘버려짐’은 단순히 사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닌 권력이나 경제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모든 자들, 예술가들을 일컫는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소풍으로 설정하고 너스레를 떤 것이다. 상황과 이미지 설정으로 움직임을 넘어서는 안무 자세는 여유롭다.

『소풍 2』는 작은 움직임으로 커다란 감동을 만들어 낸 의미 있는 ‘노정식표’ 안무작이다. 그가 작품에 임하는 지나칠 정도의 진지함이 긴장감을 걷어내고 난장 같은 ‘해탈’을 가져오길 기대한다. 대격변은 평범한 일상의 소탈함을 수반한다. 노정식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장석용 객원기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