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조낸, 찌레, 즐, 빵상, 졸라 등 10대 사이에 쌍소리도 신조어…벼락 맞을 놈·급살 맞을 놈·불타 죽을 놈·지랄 염병할 놈 등은 극도의 불안 속에 튀어나와

글로벌이코노믹

조낸, 찌레, 즐, 빵상, 졸라 등 10대 사이에 쌍소리도 신조어…벼락 맞을 놈·급살 맞을 놈·불타 죽을 놈·지랄 염병할 놈 등은 극도의 불안 속에 튀어나와

[홍남일의 한국문화 이야기] 욕의 사연
얼마 전 「10대! 욕에 중독되다」라는 모 방송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거기서 우리 청소년 95% 이상이 욕을 자연스럽게 내뱉는다고 합니다. 더욱이 그들 사이에서는 욕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답니다. 다시 말해 청소년들의 욕은 그저 평범한 대화 속에 곁들이는 감탄사나 추임새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욕을 통해 구성원 간의 동질성을 확인한다니 오히려 욕을 사용치 않던 학생도 친구사이에 왕따를 당할까봐 욕을 한다는 겁니다. 이들이 주로 쓰는 욕 중에는 X할 놈, X년 등 우리가 흔히 아는 욕도 많지만 조낸, 찌레, 즐, 빵상, 졸라 등 뜻도 모르겠고 정말 욕인지조차 구별이 안가는 그들만의 욕도 참 많았습니다.

사실 청소년을 둔 부모 입장에서 욕하는 자식을 좋아할 리 만무하겠지만, 그렇다고 어른들은 욕을 안하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세대별 맞춤형(?) 욕을 사용하고 있으니, 욕이야 말로 그 어떤 언어보다도 왕성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하겠습니다.

욕은 사전적으로❬특정한 상황적 요인으로 인해 터져 나오는 불만, 저주, 자책, 경멸의 언어로 감정이 내포된 비유적인 속어❭라고 정의합니다. 참 점잖은 풀이지만, 그냥 ‘상(쌍)소리’로 이해하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한국 청소년 95% 이상이 욕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그들 사이에서는 욕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없습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한국 청소년 95% 이상이 욕을 자연스럽게 내뱉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그들 사이에서는 욕이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사진은 특정 사실과 관계없습니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욕은 수천 종류에 이른다하는데, 그 같은 이유는 욕이 폭력적이고 악의적으로 사용될 때도 있지만, 애칭으로 또는 흉허물 없는 친구끼리 사심 없이 쓰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랍니다. 그렇다하더라도 유독 우리나라가 욕을 많이 하는 이유를 어떤 이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에서 찾습니다. 오랜 세월 주변국들의 잦은 침략으로 자연스럽게 욕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실례로, 벼락 맞을 놈·급살 맞을 놈·불타 죽을 놈·지랄 염병할 놈·물에 빠져 되질 놈 등이 있는데, 이런 욕들은 혹시 내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 속에 튀어나오는 말이랍니다. 싸움터나 변방에서 밀려오는 적을 바라보며 벼락이나 물, 전염병 등 초자연현상이 일어나서 단숨에 적들이 사라져 주길 희망하며 퍼부었던 일종의 저주이지요. 지역을 유추해보면 외침이 잦았던 한반도 북부지역이나 왜놈들이 들락거리던 해안가 일대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조금 예외적인 경우이겠으나, 싸움으로 인해 파생된 욕 중에는 화냥 년(청나라에 잡혀갔다 고향에 돌아온 여자)과 쪽발이, 왜놈, 되놈, 호래자식(오랑캐 노비 자식)이 있습니다.

사회가 안정화되면서 개ㅇㅇ나 돼지ㅇㅇ 등 사람을 짐승에 비유한 욕들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법치를 반증하는 태형에 관련된 욕들도 사회 전반에 등장합니다. 육시할 놈(죽은 사람을 다시 꺼내 자름), 능지처참 될 놈(수레로 사지를 찢음), 우라질 놈(오랏줄에 묶여 갈 놈), 경칠 놈(죄명을 이마에 새김), 곤장 맞아 죽을 놈 등등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이런 욕도 이제는 속담사전 속에서나 나올 정도로 사라졌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욕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형벌과 관련된 욕들은 중부지방과 지역 읍면 소재지에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여러 욕들이 뒤섞인 가운데 조선사회가 되면, 남녀 생식기를 빗대거나 남녀가 교접하는 것을 묘사한 소위 육두문자(肉頭文字)가 두드러집니다. 대표적으로 씹ㅇ놈, 좆ㅇㅇ놈을 꼽을 수 있는데, 이런 욕들이 유독 조선에서 크게 기승을 부리게 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유교 중심의 계급사회인 조선시대에 양반들의 부패가 만연하면서 평민들은 양반을 향한 원망의 수단으로 육두문자를 날렸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이미지 확대보기
유교 중심의 계급사회인 조선시대에 양반들의 부패가 만연하면서 평민들은 양반을 향한 원망의 수단으로 육두문자를 날렸다. 자료=글로벌이코노믹

조선사회는 유교 중심의 양반과 평민, 노예로 구분 짓는 계층사회였지요. 그런데 양반들의 부패가 만연하면서 평민들의 원성도 높아졌고, 양반을 향한 원망의 수단으로 육두문자가 그 위력을 발휘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양반들은 체면 때문에 함부로 욕을 입에 달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 상놈·재수 없는 놈·후레자식(못 배우고 막되게 자라서 몹시 버릇없는 자를 욕하여 이르는 말) 등, 하층민에 대한 도덕적 비하 정도로 욕을 사용했습니다.

그에 반해, 하층민들은 위선적인 양반들에게 남녀 교접이나 생식기를 욕설로 드러냄으로써, 그들에게 수치심과 치욕을 안겨 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이는 양반을 조롱하는 마당극에서도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대표적인 방랑시인 김삿갓(병연)의 시조에는 이런 욕이 기막히게 표현됩니다.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 房重皆尊物(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뜻풀이는 이렇습니다. 「서당이 있다는 것을 일찍부터 알고 찾아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일세. 학생은 열 명도 채 안되는데, 선생은 와서 만나 주지도 않네.」

김삿갓이 어느 날 서당에 찾아가 훈장에게 하룻밤 재워주기를 청하나, 야박하게 거절하자 인정 없는 훈장을 욕하면서 읊조린 시랍니다. 어떻습니까? 풀이로 보면 훈장에 대한 서운함이 담겨 있지만, 소리 내어 음으로 읽다보면 화끈거리는 육두문자가 참으로 절묘하게 배열되어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자지(自知)는 만지(晩知)고, 보지(補知)는 조지(早知)라.」 김삿갓에게 남루하다 비웃는 유생들을 향해 일갈한 시조인데, 언뜻 들으면 욕이지만 그 뜻은 ‘스스로 알려면 늦어지고, 서로 도와 알게 되면 빨리 깨우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이를 듣던 유생들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육두문자는 특히 유배지에서 기승을 부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죄를 짓고 유배 온 끈(?) 떨어진 양반을 통해 양반 전체를 빗대어 욕을 함으로써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두문자는 지금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 되지만 더 기술하기가 쑥스러워 이 정도로 해 두겠습니다.

한편, 욕인 듯 아닌듯한 말도 많습니다. ‘영감탱이’는 나이든 사람을 비하하는 속어이지만, 영감은 조선시대 벼슬로 보면 당상관으로 상당히 고위직 신분입니다. ‘이 양반, 저 양반’ 할 때도 같은 맥락이며, ‘할망구’ 역시 ‘구십 살까지 사시기를 희망’하는 존칭어이지만, 의미가 변했습니다. 마누라도 본래 극존칭이지만 아내를 하대하는 인상을 풍깁니다. 건달이나 등신은 불교 용어에서 파생된 말이지만, 뜻이 굴절되어 욕의 범주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나열한 이것들은 사실 욕이라기보다 상대를 존칭하여 역설적으로 비꼬는 말이 아닌가싶습니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하지요. 그러나 욕은 말보다 훨씬 파급력이 강합니다. 더욱이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에야 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언급했듯이 욕은 불만에서 나오며 불만이 많은 사회에서 욕도 늘어납니다. 계층 간의 갈등이 많았던 조선시대야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의 수평적 한국 사회에서도 욕이 없어지기는커녕 더 날카롭고, 더 잔혹한 독설로 서로 간에 상처를 남기는 일이 빈번합니다. 욕을 함으로써 당장은 후련하고 잘난 줄 착각하지만, 결국 그 욕은 자신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감정이 상할 때 욕보다는 차라리 침묵이 훨씬 효과적임을 아는 것도 생활의 지혜가 아닐까합니다.


홍남일 한·외국인친선문화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