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휴가에 동행할 ‘반려 도서’를 고를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정답은 없지만 여름이라는 계절적 특성과 함께 심신의 재충전이라는 목적을 두루 고려해볼 때 한정된 주제에 깊게 파고드는 도서나 실무 지식 중심 도서는 머리를 식히는 것이 아니라 더 뜨겁게 달굴 수 있으니 지양하는 것이 좋다. 넓은 시각으로 주제를 조망하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바를 일깨워주는 도서라면 금상첨화.
기업가, 컴퓨터과학자, 미래학자, 사상가 등 여러 직함을 가지고 있으며 다방면에 천재성을 드러내온 레이 커즈와일의 신간이라면 올여름 알찬 휴가를 위한 도서로 제격일 듯하다. 그는 정확히 20년 전 미국 현지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다.
전작의 원제는 ‘The Singularity Is Near’, 이번 신간의 제목은 ‘The Singularity Is Nearer’이다. 특이점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것이다. 번역명은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로 부제인 ‘인류가 AI와 결합하는 순간’과 함께 풀어본다면, 인류가 인공지능(AI)과 결합하는 순간이 눈앞에 다가왔고 이때가 바로 특이점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해석된다.
특히 전작에서 2020년을 전후해 인공지능 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생성형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대화체 인터페이스를 갖춤으로써 인공지능 대중화의 한 획을 그은 챗GPT가 공개된 것이 2022년 11월이니 놀라울 만큼 예측이 거의 들어맞는다.
그가 일찍이 주장한 진화의 6단계에 따르면 현재 인류는 제4단계, 즉 두뇌와 디지털 신경망을 연결하려는 단계에 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의 뉴럴링크 연구팀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즉 인간의 두뇌와 컴퓨터를 직접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커즈와일은 이번 책에서 머스크의 야심 찬 시도를 비롯해 2020년대 이후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인공지능·나노기술·유전공학 등 최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사를 열거하며 자신의 6단계론을 검증해 나간다. 각 장은 지능, 자의식, 일상생활, 일자리, 건강과 의료, 그리고 여러 위협들에 대해 과거-현재-미래에 걸쳐 통시적으로 분석한다. 각 장마다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근거와 데이터가 연이어 쏟아지고 그 토대 위에서 다방면에 걸쳐 쌓아온 그의 깊이 있는 시각이 더해져 빛을 발한다.
끝에 가서는 인공지능·뇌과학기술 등의 비약적인 발전에 따른 세간의 우려에 대한 그의 견해도 밝힌다. 1945년 핵무기가 처음 등장하고 냉전시대 핵 위협이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 사람들은 곧 인류는 공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핵무기의 사용에 관한 당사국들의 신뢰와 약속을 이끌어냈고, 국제적인 감시와 통제 체계를 구축했다. 영화 ‘터미네이터’로 상징되는 대중의 공포와 불안은 핵무기 군축, 줄기세포 기술 규제 사례에 비춰볼 때 그 근거가 미약하고 과도하다는 것이다.
기술과 도구의 폐해나 단점은 적절히 관리하고 통제돼야 하지만, 그 이점과 결실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적극적으로 발전시키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 그가 20년 간격을 두고 펴낸 특이점 연작에서 펼친 지론이다. 특이점의 강림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온갖 장수 요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그가 20년 후에도 살아있다면 써낼 2045년 작 ‘지금이 특이점이다’가 벌써 기대된다.
양준영 교보문고 eBook사업팀 과장
조용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yccho@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