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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의 남다른 해석과 압도적 연기…이서윤 출연의 '예인의 길-­이서윤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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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의 남다른 해석과 압도적 연기…이서윤 출연의 '예인의 길-­이서윤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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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10월 14일 저녁 7시 30분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이서윤의 전통춤 「이서윤의 道」가 공연되었다. ‘예인의 길’을 걸어온 이서윤은 동아무용콩쿠르 금상, KBS 국악대상(무용부분) 수상,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 종합대상 대통령상을 수상한 전도 유명한 무인(舞人)이다. 2011년부터 이어져 온 노원문화재단 초청 ‘춘하추동 명인’은 전통예술의 최고 명인의 연주와 노래, 춤을 보여주는 기획공연이다. 그는 이 공간에서 임이조, 채향순, 진유림, 이정미, 양승미 춤의 맥을 이었다. 이서윤의 스승은 이매방, 김정녀, 임이조, 법우 스님을 꼽을 수 있다.

이매방의 무풍(舞風)을 너른 두루마기 한 편에 달고, 임이조의 춤 넓이로 숨어있는 전통의 묘미를 찾아가는 사유의 춤꾼 이서윤의 전통춤 영접의 재기가 넘실댄다. 우리 춤의 여러 봉우리를 찾아다닌 「예인의 길 ­ 이서윤의 道」는 붉게 물든 가을 산의 장엄을 닮아있다. 여러 길을 뚫고 스쳐 온 그의 장점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것은 디딤과 사위에 걸린 춤 선의 아름다움이다. 참여 예인 모두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춤의 격을 높이는 자세는 수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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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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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이서윤의 춤은 회화적 3장(場)으로 구성된다. 점·선·면에 걸친 수사적 확장, 한복을 주조로 한 시각적 비주얼, 움직임에 대한 두드러진 연출이 집중을 가중한다. ‘점을 찍다 선을 잇다 면을 마주하다’라는 장의 표제, 색상과 색감을 입혀 고품격의 전통미를 물씬 풍기는 한복, 객석과 무대의 일체화와 전편의 여운이 뒤편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연출의 묘가 찬탄을 자아낸다. 악가무(樂歌舞)를 연희하는 예인들은 구름 위의 신선들이 되어 디딤과 사위에 예혼을 쏟는다.

‘점을 찍다’; 화첩을 보는 듯하다. <서편제>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소리꾼과 고수의 등장, 종이우산의 여인과 부채의 여인이 감정을 고조시킨다. 뭉게구름을 달고 빛 좋은 날의 아름다운 한복 차림이 일상이었던 시절, 악가무 합일체의 최고의 예인들이 모여 고운 삶의 순간들을 멋들어지게 풀어내며 풍류를 즐긴다. 한류의 하나인 한복이 전통춤과 어울려 종합 예술의 가치를 상승시키며 대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상상의 장(場)이다.

예술의 향유는 상급으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리듬과 이미지로 짠 가무악과 전통 패션이 어울려 미학적 상승을 보여준다. 기생적 예인 네 명과 남자 춤꾼 하나가 분위기를 일구고, 박범태 장단, 경기민요 소리꾼 채수현의 소리와 어우러져 사대부 이서윤은 ‘한량무’를 춘다. 악가무 상급의 연희는 리듬 예술(음악, 무용, 시)의 여름 미토스를 창출하며 인상적 일면을 직조한다. 낯설지 않은 춤을 더욱 친숙하게 만든 울림은 시각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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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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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선을 잇다’; 점이 선의 숲을 이루듯 연(緣)의 소중함이 묘사된다. 양손에 꽃을 든 화려한 의상의 두 여승이 객석에서 무대로 진입하여 좌정한 뒤 춤이 시작된다. ‘승무’의 이서윤적 해석, 풀어내고 끊어내며 크고 작은 번뇌에서 벗어나기 위해 해탈을 향한 춤을 추고 또 춘다. 전통의 깊이감과 느림의 오묘함을 즐기며 무수한 오감의 흐름을 지나 순간의 깨달음, 나비 두 마리가 세상을 밝히고 희망을 준다. 긴 한삼처럼 연은 이어지고 전통은 깊이를 가진다.

‘승무’는 불교적 의미, 시대의 험난과 고비를 벗어나길 위한 간구, 매일 자신을 깨닫고 반성하는 행복의 춤이다. 염불적 구음은 인간사의 몸부림이며 음악은 이매방의 것을 사용한다. 채수현의 소리 ‘회심곡’이 ‘인간 소멸이면 허무만 남는다’라는 것을 깨우친다. 이서윤의 ‘승무’에 젊은 춤꾼이 반무(伴舞)한다. ‘승무’와 ‘나비춤’은 이서윤의 삶의 궤적이다. 한복을 짓는 장인과 춤꾼은 별개가 아니다. 움직임은 강렬한 정감으로 의미를 압도하며 음악성과 밀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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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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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을 마주하다’; 이매방의 춤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세월을 거스르지 못하고 하나씩 사라진다. 전통춤으로 엮인 도반들도 늦가을 잎으로 사라지고, 발레나 현대무용의 국제화와 달리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층층시하의 스승을 마주하는 전통문화의 입지가 불안하다. 그럼에도 이서윤의 전통 보존의 의지와 출구 모색이 아름답다. 우인 박애리의 ‘쑥대머리’가 상징하는 사랑꽃 처럼 홀로 여러 고통을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이서윤의 마음이 ‘살풀이춤’으로 표현된다.

판소리가 진행되는 가운데 살풀이 팀(여인 넷)과 이서윤이 등장하고, 진법을 달리하다가 독무로 연결된다. 부드럽고 품격있게 깊이감을 부여하며 몰입하게 만드는 춤은 원형을 따라 가다가도 새로운 독창성을 창조한다. 유인상의 장단에 아쟁, 대금, 피리, 거문고, 구음, 고법 장단이 담담하고 겸허하게 인생의 액과 살을 풀어낸다. 이서윤의 찬란한 슬픔의 ‘살풀이춤’은 간절한 만남들로 승화되어 자랑스러운 무용사의 일 면(面)이 되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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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출연의 '이서윤의 道'

전통 문화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실행의 아이콘인 ‘이서윤’의 삶은 한국무용, 판소리, 가야금 등의 예술과 생활 문화에 걸쳐있다. 한복에 대한 뛰어난 재능은 ‘이서윤 한복’점으로 연결되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와 ‘성균관 스캔들’, ‘옥탑방의 왕세자’, ‘푸른바다의 전설’ 등을 통해 한복의 아름다움을 재인식시키고 대중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전수해 가는 이서윤의 예인의 길은 우리 세대의 역할과 다짐을 되짚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이서윤 출연의 「예인의 길 ­ 이서윤의 道」는 서럽도록 아름다운 사연을 예술로 승화시킨 견고한 슬픔을 안고 있다. 가을 단풍을 두고 누구는 아름답다고 하지만, 누구에게는 핏빛 선연한 아픔의 몸짓이다. 가을의 한가운데 춤 형식의 절정적 의미와 한국 전통춤의 상급 철학을 두고 벌인 움직임은 아직 농밀한 담화를 숙성시켜야 할 것이다. 이서연의 춤이 접근 불가의 공간이 되고 고난이도의 춤본으로 기능할지 즐겁게 지켜볼 일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