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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김은희 안무의 '순환-흐르듯 끊임없이'…순환에 관한 어떤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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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김은희 안무의 '순환-흐르듯 끊임없이'…순환에 관한 어떤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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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안무의 '순환-흐르듯 끊임없이'
거친 광야를 건너왔다/어느 날 보랏빛 화사가 일고 난 뒤/늦가을 풍경 너머 첫 대면의 홍시 같은 너의 얼굴/「순환」은 물소리 되어 산 넘고 물 건너온 지친 나그네의 안부를 묻는다/차크라의 명상이 일 듯하다/어린 왕자의 상상이 「순환」에 달라붙어/갈래를 달리하는 춤의 공존을 권유한다/인공광에 갇힌 사계(四季)는 미풍을 그리워한다/동짓달의 애틋한 사연은 메아리로 흩어지고/처진 어깨에 농축된 기(氣)를 불어 넣는다/아직 신선대는 높은 봉우리를 이고 차갑기만 하다/순환은 흐름을 원활하게 하는 것/춤은 순환의 도구

11월 24일(목) 저녁 7시, 포이동 M극장에서 이주희 예술감독(중앙대 무용전공 교수), 김은희(밀양검무보존회 회장) 안무·출연의 「순환-흐르듯 끊임없이」가 공연되었다. 고희에 올리는 컨템포러리 「순환-흐르듯 끊임없이」는 한국무용가 김은희와 현대무용가 장은정과의 협업 작품으로써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급변하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전통이 현대를 관조하고, 현대가 전통을 존중하며 경외심으로 따뜻하게 감싸는 모습은 근래에 보기 드문 진풍경이었다. 춤의 상급을 지향하는 이정석 신현석의 음악, 천경수의 리사쥬곡선 디자인은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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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안무의 '순환-흐르듯 끊임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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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정화용의 만트라 영상이 프롤로그-카오스를 담당하고, 1장 찰나(점), 2장-찰나(선), 3장 흐르듯 끊임없이(원), 에필로그-숨, 쉬다(호흡 혹은 다시 점)로 구성되어 있다. 결과는 ‘매몰 비용의 오류’를 무색하게 하는 성공작이었다. 순환에 관한 김은희의 명상은 정제품으로 탄생했다. 점·선·원(point·line·circle)은 아련한 흑백시대의 김은희의 모습을 애잔한 구음이 위로하면서 파스텔 톤의 세월을 건너는 김은희 모습이 스키마 된다. 추억이 잔상으로 남아 플로어에 뿌려진다. 역사는 과거를 딛고 다시 시작된다.

김은희는 춤을 통해 무성과 발성, 흑백과 색채 시대를 분주하게 거쳐왔다. 오방색은 확장되어 디지털의 무한 색상을 수용한다. 카오스를 상징하는 한 편의 영상이 빅뱅을 맞이하고 우주의 혼돈을 제시한다. 새로운 정신적 영역을 갈구하는 김은희의 이지적 모습은 자신의 내면적 현재를 표현하는 것이다. 몸살이 날 정도의 긴장과 현재적 몸짓은 고도의 에너지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점’은 마분의 종이를 스치면서 거친 세상과 부닥친다. 점은 선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마른 뒤에 통달의 원(圓)에 진입한다.

김은희 명상에 사용되는 테제의 힘은 점에서 출발한다. 작은 원자는 핵이며 태초의 물방울이다. 점은 수많은 기도의 구상적 모습이다. 추상에서 구상으로 가는 움직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선은 인간과 신의 연결의 통로로 기능하며 살풀이춤의 기원(祈願)과 맥을 같이한다. 원(圓)은 원(元)이며 원(源)을 일컽는다. 춤의 시원을 찾아가는 작업은 순환의 기초이다. 미술 용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점’은 ‘원’을 지향하고, ‘원’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의 정신 영역으로 치닫는다. 예술가가 자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면 예술가라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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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장가의 일필휘지처럼 관객을 압도하기 위한 영상이 벽면에 가득하다가 사라진다. 동화적 상상력을 부르는 긴 스판 재질의 자루 형상 속에 무엇인가 움직인다. 점이 형성되는 몸짓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점이 움직이면 선, 점이 많이 모이면 면의 형태가 된다. 점·선·면을 우회하여 원(圓)은 정신적 영역의 범주를 수용한다. 원은 위치와 크기만 있지만 각(角)을 가질 때 방향성을 갖는다. 궁금증이 일던 긴 옷 속의 여성(장은정)은 정체가 드러나고, 여성이 바닥을 침과 동시에 거문고는 움직임과 조화를 이루어 나간다.
장은정은 점을 잘 운용하면 곡면, 음영, 입체감을 잘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삶도 점·선·원의 이치를 잘 깨달으면 화평의 이치를 실현하게 된다. 선형(線形)의 점들은 서로 끌어당겨 점이 보이지 않는 선의 형태를 느끼게 한다. 크기가 변화되는 점의 방향에 따라 강한 방향성이 일어난다. 인간이 선한 방향으로 움직임을 갖게 되면 몸 선(禪)이 이루어진다. 누운 상태에서의 발에 관한 수사(修辭), 선 상태에서 바라보는 세상, 옷이 된 스판의 긴 천은 ‘승무’와 살풀이춤‘의 조형을 오간다.

담대한 상상은 긴장감을 부르는 사운드를 동반한다. 전신에서 발, 손에 관한 상상을 거쳐 한삼의 뿌림과 같은 상상이 이어진다. 디자인에서 점·선·면은 시각 표현과 색채 구성이 가능하다. 선은 연결이다. 선은 인간과 인간의 유대, 삶과 죽음의 구분, 미래를 위한 도약의 시발이 되기도 한다. 여성(장은정)의 역무(力舞)가 끝나고 자신의 존재를 노출시키고 있을 때, 조용히 검정 고깔에 푸른 망토의 변형 의상을 걸친 여인(김은희)가 등장하며 서서히 반복적으로 무대를 원형으로 돈다. 이윽고 여성과 여인은 같은 선 위의 운명의 공동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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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스럽게 터치된 여인은 분위기의 신비감 속으로 진입하고, 여성과 여인이 의상을 블루 색상으로 통일시킴으로서 원으로 향하는 맑은 마음을 소지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 가는 길에 깔리는 정주 소리는 히말라야적 고요를 불러오고, 빗소리가 잔잔한 감정의 변화를 읽게 해준다. 여인은 바닥에 엎드리고, 여성은 서서히 천을 당긴다. 해탈을 갈구하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수도의 과정이 전개된다. 길게 느리게 고독하게 이어지는 전통춤에 대한 사유의 시간이 전개된다. 여성은 허물을 토해낸 곤충의 외피 같은 의상을 접어 머리에 인다.

엎드린 여인 위로 순환을 상징하는 원형의 기하학적 조명이 떨어지고, 원은 회전하고 확장됨을 표현해낸다. 현대를 상징하는 여성은 전통을 상징하는 여인을 일으켜 세우고, 어머니가 아이에게 대하는 모습으로 부드럽게 손을 잡는다. 반복적으로 정주 소리가 들려온다. 여인의 긴 천을 이용하는 여성, 그사이에 정주를 든 사내들이 ’원(圓)의 사유‘에 끼어든다. 우주에 관한 어떤 명상, 부지런한 여성의 움직임, 여인은 접은 의상을 푼다. 다시 순환의 굴레 속으로 사유가 가동된다. 여인에게 하이키 조명이 집중되며 도입부의 영상과 수미쌍관의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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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안무의 「순환-흐르듯 끊임없이」는 독창적 아이디어로 현대무용과 소통한 한국 창작무용이다. 월드 프리미어 작품이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 이다. 김은희의 창작력이 돋보인 작품은 촘촘한 움직임으로 긴 시간을 채워나가며 관객의 상상력을 초월하고 있었다. 전통춤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 작품은 기교적 우수함, 신구 여성 춤 연기자들의 친화적 조화, 기교적 우월성으로 「순환-흐르듯 끊임없이」를 가치 있게 만들었다. 순환에 관한 담론을 창출한 김은희의 창작무용은 모든 춤꾼들과 나이 지긋한 무용인들에게 수맥을 뚫어주는 역할을 하는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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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