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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과는 상대방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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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과는 상대방의 불편한 마음을 헤아리는 것"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264)]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범죄 영화이지만 인간 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대부(Godfather)'.이미지 확대보기
범죄 영화이지만 인간 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 '대부(Godfather)'.
1972년에 개봉된 영화 '대부(Godfather)'는 범죄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으며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가 1998년 선정한 '위대한 미국 영화 100편'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뉴욕의 5대 마피아 조직 중 가장 큰 세력을 자랑하는 콜레오네 조직의 수장 비토 콜레오네(Vito Corneone)의 저택에서 막내딸의 결혼식이 열린다. 밖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파티가 한창일 때 비토는 집무실에서 자신에게 청탁하러 온 장의사 보나세라를 만난다.

그는 자신의 사랑하는 딸을 폭행하고 욕보인 자들을 죽여 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비토는 거절한다. “알고 지낸 지는 꽤 됐지만 자네가 내게 부탁하러 온 건 이번이 처음이지…. 우리 솔직해지자고… 자네는 나와의 우정을 거부했어. 내게 빚지고 싶지 않았던 거야.” 그는 달라는 대로 돈을 다 줄 테니 정의를 실현해 달라고 간곡하게 청한다.
하지만 비토는 역시 거절한다. “하지만 존경심이 느껴지지 않아. 우정도 느껴지지 않아. 날 대부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리 무례하게 구는 건가? 자네가 친구로 왔더라면 딸 인생을 망친 그 잡놈은 이미 고통받고 있었을 거야. 자네처럼 정직한 사람에게 원수가 생겼다면 그게 곧 내 원수가 됐을 테고 놈들은 자네를 두려워하겠지.”

그 말을 들은 장의사는 “친구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대부님”이라고 공손히 머리를 조아리며 손에 입을 맞춘다. 그러자 대부는 “좋아”라며 수락한다. 그리고 어깨를 안으며 “그런 날이 안 올지 모르지만 내가 부탁 하나 할 수도 있어. 그날이 오기 전까지 이 복수를 결혼식에 와준 답례품이라고 생각해주게”라면서 기꺼이 청을 수락한다.

상대에게 사과 잘하는 것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


영화의 초반부에 나오는 이 대사를 길게 소개하는 이유는 이 장면이 인간관계의 진수(眞髓)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진수는 인간관계에서 상대를 존중하는 진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심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 그것이 이 영화가 비록 범죄 조직에 관한 내용이지만 '위대한 미국 영화'에 둘째로 꼽히는 영광을 차지한 이유일 것이다. 대인관계의 본질은 일반인들 사이에나 마피아 사이에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장의사는 단지 돈만 주면 무엇이든 해결해주는 살인 청부업자 정도로 대부를 취급하고 있다. 그러자 대부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리 무례하게 구는 건가?”라고 힐난(詰難)한다. 그러면서 “자네가 친구로 왔다면 딸 인생을 망친 그 잡놈은 이미 고통받고 있었을 거야”라며 자신을 진정한 친구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자신의 잘못과 대부의 속마음을 알아차린 장의사는 정중하게 경의를 표하면서 “친구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대부님”이라고 태도를 바꾼다. 그러자 대부는 비로소 청을 들어준다. 그러면서 자신도 언젠가 청을 할지도 모른다며 진정한 관계는 언제든지 편하게 부탁을 주고받는 사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리말에도 진정성 있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격언이 많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말을 잘하면 천 냥이나 되는 큰 빚도 갚을 수 있다는 것으로, 말만 잘하면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무 말이나 한다고 천 냥 빚을 탕감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말을 잘못해 화를 돋우면 탕감은커녕 비싼 이자까지 덤으로 물어야 할지도 모른다.

비토 콜레오네는 자신을 돈만 받으면 살인까지 해주는 천박한 해결사로 치부하는 것에 대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리 무례하게 구는 건가?”라며 화를 낸다. 상대를 존중하지 않고 ‘양아치’로 취급하는 것은 ‘무례한’ 것이다. 무례한 것은 진정성하고는 상극(相剋)이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때문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은 상대를 감동(感動)시킨다는 뜻이다. ‘감(感)’자는 ‘같다’라는 의미의 ‘함(咸)’자와 ‘마음 심(心)’자로 구성돼 있다. 즉 두 사람의 마음이 같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이 같아지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움직일 동(動)’, 즉 ‘움직여야’ 한다. 천 냥 빚을 탕감받기 위해서는 빌린 사람의 마음이 상대에게 잘 전달되어야 한다.

빌린 사람의 마음은 무엇일까? 일단 큰 돈을 빌려준 것에 대한 고마움일 것이다. 그리고 제때 갚지 못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일 것이다. 이 두 마음 중에서 고마움을 전하기보다 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고마움을 느끼는 것은 나의 마음이기 때문에 쉽게 인식할 수 있고 표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과하기 위해서는 나뿐만 아니라 나의 행동 때문에 야기된 상대방의 불편한 마음도 헤아려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상대에게 불편함을 끼친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전하는 것을 ‘사과(謝過)’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본의든 본의 아니든 이런저런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잘못을 했을 때 상대에게 사과를 잘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제일 하기 어려운 것 또한 사과다. 대개의 경우, 사과는 천 냥 빚을 갚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불리는 효과를 가져오기 일쑤다. 왜냐하면 ‘나’는 사과했다고 했는데 ‘너’는 그 사과가 마음에 들지 않을뿐더러 가식적(假飾的)으로 느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유튜브를 비롯한 많은 매스미디어에서 사과를 잘 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 조언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진정한 사과를 하는 방법과 시기 그리고 어투나 자세까지 상세하게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조언들에는 공통적으로 사과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가 빠져 있다. 그 결과 사태를 진정시키기보다 오히려 화난 마음에 기름을 붓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 요소는 사과를 받는 사람의 마음이다. 대개의 사과에는 사과하는 사람의 마음은 잘 표현되지만, 사과를 받는 사람의 마음에는 의외로 큰 관심이 없다. 혹시 최근에 누군가에게 사과한 경우가 있다면 떠올려보면 좋을 것이다. 몇 가지 잘 알려진 정치인들의 사과의 예를 들어보자.

사과의 기본적인 공식은 상대 감정 분명히 적시한 후 나의 감정 진솔하게 표출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과다. 그는 2016년 11월 4일 국정이 백척간두에 서 있을 때 국민의 마음을 달래려고 청와대에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는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 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라고 말했다. 언뜻 보면 사과를 한 것 같지만 이 성명에는 자신이 괴롭다는 마음만 표현되었을 뿐 자신의 행동에서 비롯된 국민들의 괴로운 마음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사실 정작 ‘자괴감’이 드는 것은 그런 대통령을 보는 국민의 마음일 것이다. 이 사과는 그렇지 않아도 화가 나 있는 민심에 오히려 기름을 부었다. 그 결과 그는 결국 대통령직에서 탄핵을 당했다.

사과의 기본적인 공식은 “나의 ( ① ) 행동이 너에게 ( ② ) 불편함이나 고통을 주었기 때문에 ( ③ )하다”라는 것이다. ①에는 구체적인 행동이, ②에는 상대가 느낄 감정이 구체적으로 분명히 적시되어야 하고, 그리고 ③에서는 그런 감정이 들게 한 것에 대한 나의 감정을 밝혀야 한다. 예를 들면, 잦은 음주 때문에 불화를 겪는 남편이 부인에게 사과할 때 대부분 “술 많이 먹어서 미안해. 다음부터는 자제할게”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사과를 듣고 부인은 화가 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과에는 ‘나’만 있다. 미안한 것도 ‘나’고, 자제하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나’다. 관계는 ‘나’와 ‘너’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 사과에는 ‘너’가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또한 진정성은 생각이나 다짐이 아니라 감정이다. ‘나’의 감정과 ‘너’의 감정이 표현되고, 동시에 그 감정이 정확할 때 상대는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사과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이 ‘너’의 감정이지만( ② ), 대부분의 경우 생략된다. 그래서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이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된 것같이 느껴지고, 진정으로 사과를 받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당신도 돈이 필요할 텐데 제가 제때 갚지 못해서(①) 얼마나 다급하고 또 나에게 화도 많이 나겠어요?(②) 그렇게 다급하게 만들고 화나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③)”라고 정중하게 말하면 ‘말을 잘한 것’이다. 이 사과에는 ①과 ② 그리고 ③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즉 ‘나’와 ‘너’ 그리고 감정이 들어있다. 물론 상대가 다급하거나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다른 감정을 느꼈다고 해도 괜찮다. 다만 상대가 느꼈을 감정을 적시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정치 지도자의 진정한 사과의 모범을 보여준 것은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독일 총리다. 1970년 12월 7일 그는 비 오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 꿇고 오랫동안 묵념하면서 사죄했다. 이 사죄 장면에 대해 세계 언론은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라고 감동의 느낌을 전했다.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사과의 진정성은 상대의 아픔을 알고 있고, 자신도 그 아픔에 깊이 공감한다는 것이 표현되는 것이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