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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시간에 대한 탐미적 사유…한 줌의 시간 속에 겸허하고 서로 위하며 살아가는 몸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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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시간에 대한 탐미적 사유…한 줌의 시간 속에 겸허하고 서로 위하며 살아가는 몸짓

[나의 신작 연대기(17)] 노연경 안무·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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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황소의 눈으로 재 너머 세상을 바라본다/ 눈 내린 들판을 줄곧 걸어왔다/ 발레교습소의 창에 가녀린 햇살이 스며들고/ 파랑새를 찾아가는 내 모습이 걸린다/ 배꽃 하얗게 핀 언덕을 지나/ 아직 갈 길이 먼 나를 되돌아본다/ 느린 듯 순간 이동의 상상이 우주를 감싼다/ 검정이 하양을 감싸고/ 블랑이 블랙과 조우한다/ 두꺼운 두 눈 겹이 감지된다/ 세상과 소통하는 눈을 깜빡거려 본다/ 눈물샘은 한없이 약해져 있고/ 시간은 만화경에 잡혀 있다/ 순간이 모여 삶의 의미가 된다/ 눈 깜짝할 사이 시간은 흘렀고/ 나이가 들어감을 깨닫고/ 겸허한 자세로 나의 삶을 보듬을 것을/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는 용기 내기를/ 용의 눈을 깜박거리면서 맹세한다

8월 13일(일) 저녁 7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의 발레블랑 정기 공연은 ‘Being’(존재하기)을 화두로 놓고, 그 한 축에 노연경 안무·연출의 '눈을 깜박이다'를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발레 안무가 노연경(국민무용진흥협회 상임이사,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및 동대학원 무용학 박사)의 시간에 대한 두 번째 사유작(作)이다. 안무가는 인생의 매 순간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처리하면서, 삶은 순간들이 모여 한 편의 드라마가 만들어짐을 서술한다. 작품은 1장: ‘지금-여기의 인간’, 2장: ‘마주 보다’, 3장: ‘꿈속의 꿈’, 4장: ‘바니타스 바니타툼(Vanitas Vanitatum)’으로 구성된다. 한 줌의 시간 속의 인간은 겸허하게, 즐겁게, 위하며 살아가기를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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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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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각 장(場)은 1장, 자신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간다. 2장, 인간 내면의 실 가닥들이 서로 엮여 ‘의미’와 ‘감정’을 만든다. 3장, 가질 수 없어도, 멈출 수 없다. 나는 꿈을 꾼다. 4장, 존재의 덧없음, 태어났다는 것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 다시 한 줌의 모래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김다애(발레블랑, 전 뉘른베르크 주립발레단 단원), 서민영(발레블랑, 안양예고 강사), 이정은(발레블랑, 전 조프리 발레단 단원), 용기(전 유니버설발레단 단원), 송진(전 유니버설발레단 단원), 김영채(LDP무용단 단원), 서송희(이원국발레단 단원)에 이르는 출연진이 격조 있게 연기한다. 음악은 Steve Reich, Schumann, Forest Swords의 곡 등이 배치된다.

무용수들의 회전하는 동작


시곗바늘 움직임 표현으로


바쁜 현대인의 모습 형상화


1장: 인간은 서로 다른 빠르기와 시선으로 현대를 살아간다. 여행용 가방은 ‘인생은 여행임’을 은유한다. 가방 위에 한쪽 다리를 올려 360도 회전하는 동작으로 시곗바늘이 돌아가고 있음을 표현한다. 현대인의 일상, 그 움직임의 질감은 차갑고 직선적인 느낌의 반복적인 동작을 사용한다. 두 손을 가슴 위에 올려 주먹을 쥐고 한 손은 반복적으로 원을 돌려 시계태엽 감는 동작을 묘사하고, 팔을 앞과 옆으로 직선으로 뻗어 시곗바늘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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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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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현대적인 일상복 느낌의 셔츠와 블랙 스커트(바지),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사운드는 바쁜 현대인의 일상을 비유한다. 작품의 모티브인 링 모양의 크기가 다른 원 조명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자신만의 고유 영역이다. 무대 중앙에 커다란 링 모양의 조명 안에서 무용수들이 시계가 움직이는 모습을 나타내며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조명과 함께 시곗바늘이 지속해 돌아가는 영상을 사용해 두 장면이 맞물려 시간의 흐름과 바쁜 현대인의 모습이 형상화된다.

2장: 인간은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면서 각기 다른 나와 타자가 마주하고, 의미와 감정을 만들어 간다. 두 무용수가 마주 볼 때, 대형 링 모양의 세트가 중앙에서 내려오면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공간과 의미를 더한다. 세트를 돌리면서 공간 사용을 확대하고 감정 변화와 확장을 표현한다. 2인무는 나와 타인이 서로 인지하는 첫 순간을 마주 보고 서 있는 것으로 설정한다. 상대의 머리를 돌려 서로 감싸 안는 동작은 관계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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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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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임의 질감을 부드럽고 곡선적인 동작으로 설정, 상체와 팔의 사용을 현대적으로 구성하여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잘 전달될 수 있는 장면을 연출한다. 무채색의 단순 의상은 인간이 내면에서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게끔 한다. 말소리의 효과음에 이어 두 사람이 서로를 발견하고 다가가며 감성적 멜로디는 인간이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과 의미에 집중하게끔 한다. 따뜻한 색감의 조명은 인간의 감정과 관계에 집중한다. 시각적 비주얼이 되는 장면들이 서서히 진입한다.

삶은 타자와의 관계 형성

인생의 즐거운 순간 순간들


꿈속 장면처럼 아쉬움 연출

3장: 이중적 메시지 전달의 장(場), 늘 갈망하지만 가질 수 없는 꿈속으로 들어간다. 인생의 즐거운 순간이 꿈속의 한 장면처럼 짧고 아쉬운 순간으로 연출된다. 트리오는 즐거운 순간의 오브제로 벤치를 사용, 유년의 아름다운 기억을 형상화한다. 발랄하고 가벼운 질감의 움직임, point work를 통한 기교적 움직임과 공간 사용으로 분위기를 창출한다. 트리오의 원피스 의상이 유년기를 시각화한다. 듀엣은 실 커튼으로 기둥 효과를 주며 꿈속으로의 이동을 암시한다. 의상은 흰색의 가벼운 질감으로 현실과 다른 환상적인 장면이다.

현악기의 선율이 돋보이는 슈만의 음악은 움직임과 더불어 꿈속 장면을 감성적으로 나타내며, 문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영상은 시·공간의 이동을 나타낸다. 양쪽 기둥은 무용수의 실루엣 영상을 시간에 맞게 움직여 무대에서 춤추는 무용수와 함께 다른 공간에서의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다. 조명은 따뜻한 색에서 점차 차가운 색으로 바뀌면서 낮에서 밤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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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연경 안무 연출의 '눈을 깜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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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존재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장(場), 인간은 태어났다가 한 줌의 모래로 되돌아간다. 커다란 원 모형은 자연 회귀와 순환의 의미를 담고 있다. 원 안에서 무용수가 의상을 벗어 위로 던지고 세트 중앙에 위치하면서 공연은 종료된다. 인생의 여러 순간이 모여 삶이 되고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인생의 흐름은 바닥을 사용하여 낮은 레벨의 동작에서 점점 크고 높은 레벨의 그랑 점프로 발전된다. 무용수들이 떨어지는 모래를 맞으며 각자의 움직임으로 마지막까지 자신의 삶을 영위함을 묘사한다.

의상 벗고 바닥에 쓰러짐은


인간의 자연 회귀를 상징


결국 인생 회상하며 마무리

의상을 벗어 내려놓고 바닥에 쓰러지는 동작은 인간의 자연 회귀를 표현한다. 살색의 상의와 바지는 흙을, 하얀 겉옷을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벗어둠은 세상의 것들을 다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감을 상징한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재작곡한 음악은 이 작품의 주제를 겨울을 모티브로 한 음악을 사용하여 구체화하고, 마지막에 서정적인 연주곡을 사용하여 인생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마무리된다. 파도가 밀려오는 영상, 무용수들이 그 안에서 밀려 나오는 동작으로 설정하여 자연과의 조화를 나타냈으며, 마지막 장면에서 원형 세트 안에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파노라마 형식의 영상으로 구성하여 나타나게 하고 눈을 깜빡이고 감는 장면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인생은 이러한 순간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드라마라는 것과 우리의 인생이 눈 깜박할 사이임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노연경은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및 동 대학원 무용학박사로서 현재 이화여대 문화예술원 강사, 충남대 강사, 노연경 Ballet Theatre 대표, 국민무용진흥협회 상임이사, (사)한국발레 연구학회 이사 발레블랑, 이화발레앙상블 단원이며, 서울기독대 강사, 계원예고 강사, 계원예중 강사를 역임했다. 그녀는 우수학위 논문상(이화여대 총장상, 2021), 서울시 학습연구년 총괄 및 주강사에 선정(2023)되었고, 대표 안무작으로 '지금의 지평 AP 2'(2022), '지속하는'(2022), '지금의 지평'(2020), '2 breathe'(2018), 'Where are we going?'(2016), '바닐라 스카이'(2013) 등이 있다. 노연경 안무·연출의 '눈을 깜박이다'는 춤의 갈림길에서 자신의 각오를 다지는 놀라운 작품이었다.


장석용(문화전문위원,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김정한(한필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