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굿’의 참여자인 무속인과 관객이 모두 수신자나 발신자가 될 수 있고 이들 간의 교류로 인해 새롭게 정보가 나타나는 의사 소통이다. 메시지의 흐름도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향적이며 일정한 정보량을 갖는 의사 소통 그 이상을 넘나든다.
굿은 민중의 신앙이며 오락이나 축제, 예술의 장으로 기능되었다. 현재도 굿은 현장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손님 한 두 사람에 무당 혼자 징을 치는 푸닥거리와 여러 명의 악사와 수백 명의 손님이 참가하는 큰굿이 있다.
요즈음 굿에 대한 연구가 빈번한데, 굿의 제의성 연구와 심리 치료적인 연구도 적극적이다. 무속 신화에 중점을 둔 무가의 연구도 있다. 그 형태도 다양하여 최근에 농악을 민속행사에 연주하지만, 예전에 맷굿, 마당밟이 두레굿, 당산제, 걸립굿 등, 양식에 의거하여 연주했다.
무속 신화와 무가는 굿의 전체 맥락과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 새벽에 정화수를 떠 놓고 정성스레 비는 소박한 형태의 민속 신앙에서 한 걸음 진보한 것이 ‘굿’이며 굿의 포괄적인 맥락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두레굿은 농촌에서 일꾼들이 힘을 모아 김매기와 모내기, 풀베기와 질삼 등을 해내기 위해 두레패들이 치는 농악을 말하며, 김맬 때 길군악을 치고 호미걸이 날 술 먹고 농악치며 노는 것으로 퇴화되어 체계적인 자료는 거의 없다.
‘굿’을 미신으로 여긴 일제는 괴이한 행위로 간주하고 거부했다. 굿은 별신굿이라 해서 동네의 평화와 복을 비는 ‘당굿’과 집안의 행복을 비는 ‘재수굿’, 망자의 명복을 비는 ‘오귀굿’의 3종이 있다. 마을의 성황당에서 비는 서냥굿와 고기잡이 배를 의한 풍어제도 당굿에 포함된다.
제의는 인간이 풀지 못한 자연적 고통을 초자연적 존쟁의 힘을 통해 해결하는데 그 목적을 둔다. 인간의 의식 수준과 이성의 발전은 인간을 주술로부터 탈피하여, 주술적 방법을 포인트로 하는 제의에 반발하게 만들어 제의의 변모와 축소가 뒤따른다.
마을의 공동 축제인 부락제는 규모가 줄거나 부실되고 개인의 복을 비는 푸닥거리와 재수굿은 가족 제의로 전락한다. 마을과 공동체의 넉넉한 다산을 위한 부락제는 점점 오락성이 강하게 되었다.
진도 씻김굿에서 두레 짜는 것을 ‘대동차린다’고 하는데 김 맬 때나 마초 벨 때 등, 큰 일에 대동을 차린다. 대동을 차리면 영장 등 임원을 정해 당제를 지낸다. 대동 차릴 때 지내는 당제를 ‘대동굿’이라 부르고 주로 새벽에 굿을 한다.
당제를 지내면 쇠꾼들은 굿을 치며 일꾼들이 모이면 질굿을 치거나 북잽이만 혼자 북을 치며 소리를 이끈다. 두레패들이 마을에 들어오면 상머슴을 소와 사다리에 태우고 질굿을 치며 들어올 때 일꾼들이 ‘어화어화’소리와 배꽃타령을 부르는데 이것을 ‘어화굿’이라 한다.
구술로 전승된 굿의 문화는 친근감있고 감정이입적인데 우리 민족성과 일체감이란 공감대를 갖고 구전된 주체성을 흡수하여 독보적이고 서로의 품앗이가 되게 계승한 것이다. 변장호 감독의 <을화>(1979)는 적합한 실례가 된다.
정순영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