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12월 2일(화) 오후 여덟 시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은평)에서 김진아(천안시립무용단 상임단원) 안무의 '물의 끝'이 공연되었다. 높고, 허리 너른 공간에는 집중만이 필요했다. 잿빛 하늘 느낌의 스커트를 착장한 여인(김진아)은 ‘와호장룡’의 지성을 감싸며 초월자의 모습으로 자연에 마음을 이입하면서 자연을 설명하지 않고 자연에 머무는 시선을 공유한다. 시적 언어로 예감된 ‘물의 끝’의 정적과 여백은, 무대에서 김진아의 움직임을 통해 구체적 감각으로 전환된다.
김진아의 움직임은 의미 발생 직전의 정지와 머묾을 반복하며, 해석이 아니라 지각 그 자체에 머무르게 한다. 자연을 재현하거나 상징화하는 예술이 아니라, 인간의 몸을 통해 자연의 시간성과 비인칭적 리듬을 빌려오는 수행에 가깝다. 무대 위의 몸은 표현하는 주체라기보다, 자연이 스스로 잠시 통과해 가는 하나의 매개로 존재한다. 김진아의 내공을 알고 있는 자라면, 여백·자연·침묵의 감각이 살아 있는 김진아의 움직임 자체보다 정지가 더 움직임 답다.
여인과 같이하는 긴 나무막대기, 즉 화살은 ‘내 안의 결단’의 상징이며. 화살을 맞고 서 있는 첫 장면과 마지막에 놓인 화살을 넘어서는 마지막 순간, 관객은 삶과 죽음, 머묾과 떠남이 겹쳐진 미세한 균열을 몸으로 경험하게 된다. 화살은 서사적 소품이 아니라 ‘의지를 시각화한 선(line)’으로 기능하며, 곡선적이고 유동적인 신체와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몸을 관통한 화살의 정지는 죽음의 재현이라기보다, 결단이 시간 속에 고정되는 한 순간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나레이션의 세 구절(‘간다’. ‘못간다’. ‘얼마나 울었던가’)은 언어적 설명이 아니라 움직임의 최소 단위로 환원된 시간 표식에 가깝다. ‘간다’와 ‘못간다’는 상반된 의미를 지닌 문장이지만, 흐름이 발생하고 중단되는 상태를 분절한다. ‘얼마나 울었던가’는 감정 서술보다 지나간 시간의 밀도를 호출하는 잔향으로서 신체의 움직임을 대신해 무대 위에 보이지 않는 파동을 남긴다. 언어는 춤을 설명하는 보조물이 아니라, 침묵과 정지 사이를 잇는 비가시적 안무가 된다.
이 작품에서 나레이션과 신체, 오브제, 여백은 서사와 감정의 직유가 아니라 동시적 경험으로 결합된다. 고독은 무대의 여백과 정지된 몸의 틈에서, 붕괴는 화살과 흐름의 중단 속에서, 일어섬은 마지막 동작과 넘어서는 화살 속에서 각각 구현되며, 이를 통해 관객은 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게 된다. 결국 작품의 모든 요소는 분리된 상징이 아니라, 서사적 시간과 신체적 시간, 감각적 시간을 하나로 엮는 총체적 미학적 장치로 작동한다.
'물의 끝'에서 계(界)의 경계는 지속과 단절, 존재와 부재가 서로 스며드는 미세한 공간으로 드러난다. 언어와 신체, 오브제가 맞물린 순간, 서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내적 시간과 감각의 흐름 속에서 존재의 미묘한 울림을 호흡한다. 경계의 미학은 삶과 죽음, 머묾과 떠남이 명확히 나뉘는 순간을 보여주기보다, 경계 자체를 체험하게 하며, 그 안에서 존재의 불안정성과 연속성을 인식한다. ‘물의 끝’은 삶과 떠남 사이의 잠시 멈춤과 균형의 공간으로 확장된다.
'물의 끝'에서 움직임은 내적 의식과 감각의 가시화로 이해된다. 제스처는 내면의 결단, 갈등, 극복의 순간을 포착하며, 직접적인 서사 전달보다 심리적 공명을 체험하도록 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또한 움직임의 흐름과 정지, 반복과 전환은 인간 내면의 정열과 긴장을 물리적 공간 속에서 펼쳐 보이며, 신체는 곧 정서의 매개체이자 존재의 증언으로서 기능한다. 이를 통해 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시간과 감각을 함께 호흡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세 곡의 음악은 신체와 공간, 감정의 흐름을 조율한다. ‘가야금 앙상블 셋’의 ‘이별길’은 잔잔하지만 긴장된 선율로 고독한 내적 결단 분위기를 조하고, 첼로가야금 ‘사막의 밤’은 낮은 현의 깊이와 공명으로 붕괴와 침묵의 순간을 확장한다. 김율희의 ‘Dream’은 춤의 공간 전체를 감싸며, 신체와 움직임을 압도한다. 음악적 배치는 춤과 결합하여 시간의 밀도와 감정의 질감을 변화시키는 음향적 서사로 기능하며, 물리적 공간과 내적 공간 사이의 긴장을 극대화했다.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
이미지 확대보기김진아는 안무, 연출, 출연에서 두드러진 능력을 보이며 '범피창파'(2024), '침묵의 봄'(2022), '살:SAL'(2018) 같은 창작 무용을 발표했다. 그녀는 단국대 동대학원 졸업 및 무용학 박사 수료했으며, 모노탄츠 커넥션투어 The Bang Group Performance Series(2024) New York, 보훈예술협회 올해의 예술상‘ 올해의 안무가수상(2023), 서울국제무용페스티벌SCF Star Award 수상(2023), 핀란드 ‘TANSSIN LUMA’(2023) 초청 공연 수행의 한국무용가이다.
'물의 끝'은 움직임과 정지, 여백과 침묵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 삶과 떠남 사이의 미세한 균열을 체험하게 한다. 몸과 오브제, 나레이션은 내적 시간과 감각을 가시화하며 집중하게 한다. 화살과 반복되는 제스처는 결단과 내적 긴장을 시각적·공간적 장치로 드러내며, 극적 서사보다 미묘한 균형과 흐름을 강조한다. 음악과 공간, 몸이 결합한 총체적 미학 속에서, '물의 끝'은 삶과 죽음, 머묾과 떠남의 경계를 체감하게 하는 시적 수행으로 수작(秀作)이 되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대한무용협회 ⓒ옥상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