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AI 종말론과 시트리니 보고서

글로벌이코노믹

[김대호 진단] AI 종말론과 시트리니 보고서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이미지 확대보기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주필

보석이라고 모두 다 같은 보석은 아니다. 보석마다 각자 고유한 특성이 있다. 다이아몬드는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단단한 물질인 만큼 불멸의 대명사로 불린다. 결혼이나 약혼에 많이 쓰이는 이유다. 금은 재테크의 대명사다. 희귀성과 불변성 덕분에 전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가치 저장의 수단'으로 인기가 높다. 사파이어는 현자의 보석이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통찰력'을 높여주는 보석으로 정평이 높다. 정직과 성실의 상징으로 믿음직한 파트너십을 기원할 때 선물하기도 한다. 에메랄드는 행복과 재생을 뜻한다. 녹색의 생명력을 지녀 '건강 회복'과 '마음의 안정'을 돕는 용도로 여겨진다.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준다는 전설도 있어 행운의 부적으로도 쓰여왔다. 진주는 순결과 품격의 보석이다. 조개의 아픔 속에서 만들어져 '인내'와 '우아함'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격식 있는 자리의 예절용 장신구나 여성의 건강과 보호를 기원하는 선물로 주로 사용된다.

부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보석은 단연 황수정(黃水晶)이다. 황수정은 아주 옛날부터 상인의 돌(Merchant's Stone)로 불려왔다. 부와 번영 그리고 비즈니스의 성공을 끌어당긴다는 고대의 믿음을 담고 있는 보석이다. 황수정의 색은 태양의 색인 황금 색깔이다. 그 태양의 에너지가 풍요와 행운의 상징으로 전해져 온 것이다. 과거 유럽과 동양의 상인들은 장사가 잘되고 재물이 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황수정을 금고나 돈궤(Cash box) 근처에 두는 관습이 있었다. 오늘날에도 황수정은 업 번창을 기원하는 개업 선물이나 재테크 행운템으로 인기가 높다. 황수정을 영어로는 시트린(Citrine)이라고 부른다. 이 말은 노란색을 뜻하는 라틴어 'citrina'와 레몬을 뜻하는 프랑스어 'citron'에서 유래했다. 인공지능(AI)의 발전이 뉴욕 증시에 거대한 붕괴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보고서를 발표해 주목을 끌고 있는 '시트리니 리서치'라는 연구소의 이름이 바로 이 부자의 돌이라는 황보석에서 따온 것이다.

시트리니 리서치가 발표한 보고서의 제목은 '2028 글로벌 인텔리전스 위기(The 2028 Global Intelligence Crisis)'이다. 이 보고서는 소셜미디어 엑스(X)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조회수가 500만을 훌쩍 넘겼다. 시트리니 리서치는 이 보고서에서 AI 에이전트 도입 3년 뒤인 2028년 6월을 가정해 미국의 실업률이 10.2%까지 뛰고, S&P500 지수가 고점 대비 38% 하락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시트리니 리서치 창립자인 제임스 반 겔렌과 로터스 테크놀로지 매니지먼트의 알랍 샤 분석가는 AI가 화이트칼라 업무를 대체해 기업 마진이 커지고 주가를 끌어올리던 상황에 조만간 한계가 올 수 있다고 지적한다. AI 에이전트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소득과 소비가 줄어들면 기업 매출은 감소하고, 이는 추가 구조조정과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컴퓨터 알고리즘 AI가 만들어내는 산출물이 국민소득 통계에는 잡히지만 임금이나 소비로 순환하지 않게 되면서 ‘유령 GDP(Ghost GDP)’ 즉 생산성은 올라가지만 소비 주체가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시트리니 리서치는 이러한 시나리오에 현재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들의 이름과 성장률 전망치를 그대로 넣었다. 가상 시나리오에서 서비스나우는 올해 3분기가 되면 순 신규 연간계약가치(ACV) 성장률이 23%에서 14%로 급감하고 인력 15% 감축에 직면할 것으로 봤다. 알파벳과 오픈AI, 앤스로픽 등에서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AI 에이전트와 코딩 도구가 진입장벽을 무너뜨려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전반의 가격 결정력이 와해된다는 논리다.

이 보고서는 또 AI 에이전트가 사용자를 대신해 도어대시, 우버이츠 등 복수의 배달앱을 실시간 비교하거나 최적 결제 경로를 자동 탐색하면, 결제·배달 등 중개 플랫폼의 수수료 기반 비즈니스 모델도 위협받을 수 있다고 봤다. 비자와 마스터카드, 아메리칸익스프레스 등이 부과하던 카드 수수료 사업 역시 연 2~3% 비용을 덜어내기 위해 솔라나·이더리움 L2 기반 스테이블코인 결제로 이동하면 대체 가능성이 높은 영역으로 꼽혔고, 블랙스톤과 KKR 등 사모펀드는 AI 활황기에 사들인 소프트웨어 기업들이 결과적으로 수익을 내지 못해 부도를 일으키며 타격을 입을 곳으로 묘사됐다.

시트리니 보고서는 대규모로 복제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온 인간의 지능을 컴퓨팅 자원이 대체하면서 발생하는 경제구조 붕괴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최근 소프트웨어 산업 붕괴를 우려해온 시장의 심리를 그대로 반영한 보고서로 평가받고 있다. 이 와중에 앤스로픽의 새로운 기술 공개 소식이 더해지면서 AI 피해주는 그야말로 날벼락을 맞았다. 앤스로픽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 자료에서 클로드 코드를 통해 구형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COBOL)로 구축한 레거시 시스템을 현대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코볼은 1950년대 후반 개발된 프로그래밍 언어로, 전세계 금융 거래의 90% 이상을 맡은 핵심 인프라에 쓰인다. 앤스로픽은 그동안 레거시 코드를 이해하는 비용이 다시 작성하는 비용보다 컸기 때문에 현대화가 수년간 정체됐으나 AI가 그러한 비용과 개념을 뒤집을 수 있다고 밝혔다. 코볼은 IBM의 메인프레임에서 핵심적으로 쓰이는 프로그래밍 언어이다. IBM은 이를 기반으로 한 유지·보수 사업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아왔다. IBM 주가는 앤스로픽 발표 이후 25년 만에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위기의 출발점으로는 2025년 말 급격히 진화한 ‘에이전트형 코딩 도구’를 꼽았다. 클로드 코드(Claude Code)나 코덱스(Codex) 같은 도구를 활용하면 중견 SaaS 제품의 핵심 기능을 수주 내 구현할 수 있게 되면서, 기업들이 고가의 소프트웨어를 갱신하기보다 내부 개발로 대체하려는 유인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SaaS 기업들은 가격 협상력이 약화되고 차별화가 무너지며 수익성이 압박받는다고 진단했다.

시트리니 보고서는 인공지능(AI)이 가져올 생산성 혁명의 이면에 도사린 ‘창조적 파괴’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과거 산업혁명이 육체노동의 기계화를 불러왔다면 지금의 AI 혁명은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여겨졌던 인지적 판단과 지적 노동마저 위협할 수 있다. AI의 발전이 고용 시장의 붕괴와 소비 위축이 맞물려 경제 시스템 전체가 마비될 것이라는 경고다. 그렇다고 기술의 진보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닌 ‘구조적 전환’에 대한 대책이다. AI가 경제를 파괴할 것이라는 전망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낡은 시스템에 대한 경고일 뿐이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의 한계를 확장해 왔으며, 위기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창출해왔다. 우리는 기술의 파도에 휩쓸리기보다 그 파도의 높이를 이용해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할 준비를 해야 한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방향으로 다스리는 '준비된 인간들'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