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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물에 잠긴 세계유산,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아직 구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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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물에 잠긴 세계유산,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아직 구조되지 않았다

유네스코 등재의 영광 뒤, 반복되는 침수…보존과 식수 사이 선택의 시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이미지 확대보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전경. 사진= 국가유산청
202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반구대 암각화는 지금도 물에 잠긴다.

한국은 또 하나의 세계유산을 추가했지만, 동시에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떠안았다. 등재의 기쁨과 함께 ‘보존’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전면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핵심은 반구대 암각화다. 인류 최초의 고래 사냥 기록으로 평가받는 이 암각화는 여전히 반복적으로 침수된다.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그 실체는 여전히 ‘침수 위험 유산’이라는 모순 속에 놓여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도감’의 의미


반구대 암각화는 단순한 선사 미술을 넘어선다. 고래의 종류와 사냥 방식, 인양과 해체 과정까지 체계적으로 담겨 있다.

귀신고래, 혹등고래, 긴수염고래 등 다양한 종이 등장하며, 각각의 생태적 특징까지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구대 암각화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기록물이다. 예술을 넘어, 인류 최초의 ‘해양 생태 기록’으로 평가된다. 문자 이전 시대의 지식 체계이자, 공동체의 생존 전략을 집약한 시각적 교과서에 가깝다. 실제로 학계에서는 이를 ‘고래 사냥꾼의 대서사시’로 규정한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구성이다. 동물과 인간, 배와 도구가 유기적으로 배치되며 하나의 이야기 구조를 형성한다. 이는 단순한 나열이 아닌 기획된 서사로, 선사인의 사고 수준과 조직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다.

6000년의 시간, 하나의 공간에 겹치다


이 같은 가치가 특정 시기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는 반구대 암각화와 함께 세계유산을 구성하는 또 다른 축이다.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추상적 문양과 신라시대의 명문이 공존한다.

특히 화랑의 이름과 행적이 기록된 명문은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선사인의 상징적 도형과 신라인의 문자 기록이 한 바위에 겹쳐 있다는 점에서, 이 지역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 그 자체다.

결국 반구천 일대는 수천 년에 걸쳐 축적된 인간 활동의 집적지이며, 세계유산 등재의 근거도 바로 이 연속성과 독창성에 있다.

반복되는 침수, ‘물고문’의 실체


문제의 본질은 명확하다. 반구대 암각화는 매년 물에 잠긴다. 그 원인은 사연댐이다.

댐 수위가 상승하면 암각화는 완전히 침수된다. 과거에는 연간 최대 6개월 이상 물속에 잠겼고, 현재도 최소 한 달 이상 침수가 반복된다. 특히 장마철과 태풍 시기에는 침수 깊이와 기간이 더 늘어난다.

연간 최대 6개월 침수에서 현재도 최소 1개월 이상 반복되는 구조다.

이 과정에서 암각화는 구조적으로 손상된다. 셰일 암석은 물에 약해 침수 시 광물이 용해되고, 수위가 내려가면서 표면이 박락된다. 유속에 의한 충격도 추가적인 손상을 유발한다.

단순한 ‘물에 잠김’이 아니라, 화학적·물리적 훼손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 파괴 과정이다. 이 때문에 ‘물고문’이라는 표현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실제 상황을 반영하는 용어로 사용된다.

세계유산이 ‘전시’가 아닌 ‘침수’ 상태라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폭우로 수위가 상승하며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반복되는 침수가 훼손을 가속시키고 있다. 사진= 울산시이미지 확대보기
폭우로 수위가 상승하며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반복되는 침수가 훼손을 가속시키고 있다. 사진= 울산시


세계유산 등재의 역설


유네스코는 ‘진정성’과 ‘완전성’을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반구대 암각화는 이 기준을 충족했지만, 동시에 명백한 보존 위협을 안고 있다.

이 점에서 이번 등재는 과거 가치에 대한 인정인 동시에, 미래 보존에 대한 약속이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세계유산의 지위 자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며 표면 박락이 진행된 반구대암각화. 사진= 울산박물관이미지 확대보기
침수와 노출이 반복되며 표면 박락이 진행된 반구대암각화. 사진= 울산박물관


해법은 있는가: 사연댐 수문 설치


현재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사연댐 수문 설치다.
수문 설치 계획. 반구대 암각화 침수 방지를 위한 핵심 대책으로 제시됐다. 자료= 국무조정실이미지 확대보기
수문 설치 계획. 반구대 암각화 침수 방지를 위한 핵심 대책으로 제시됐다. 자료= 국무조정실


댐의 수위를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해 암각화 침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식이다. 계획에 따르면 수위는 약 52m 수준으로 유지되며, 이는 현재 수위(약 60m 내외)보다 낮은 수준이다.

수문 설치가 완료될 경우 침수 시간은 연간 1시간 이내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방식은 기술적으로 타당성이 높지만, 동시에 여러 논쟁을 낳고 있다.

보존과 개발 사이의 충돌


사연댐은 울산 지역의 주요 식수원이다. 수위를 낮추는 것은 곧 수자원 확보 문제와 직결된다. 이는 단순한 문화재 보존을 넘어 지역 생활과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또한 수문 설치 과정에서의 환경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 하천 생태계 변화, 퇴적 구조 변화 등 장기적 영향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결국 이 문제는 ‘무엇을 우선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반구대 암각화 문제는 ‘문화재 보존 대 개발’이라는 고전적 갈등 구조를 그대로 드러낸다.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보다, 균형점을 찾는 것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기술적 대안과 한계


과거에는 암각화를 물리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됐다. 투명 차수벽 설치, 암각화 이전, 인공 보호막 구축 등이 검토됐지만,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다.

이유는 명확하다. 물리적 개입이 오히려 유산의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인위적 변경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환경을 조정하는 방식’, 즉 수위 조절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등재 이후가 더 중요하다


세계유산 등재는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이제 국가적 자산을 넘어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되었다. 그에 따른 책임 역시 확대되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집중호우와 태풍의 강도가 커지는 상황에서, 침수 위험은 오히려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기존 대책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요인이다.

보존은 단순한 시설 설치로 끝나지 않는다. 지속적인 모니터링, 과학적 분석, 국제 협력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물속의 유산을 구할 수 있는가


반구대 암각화는 인간이 자연과 맞서 살아온 흔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이 만든 구조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세계유산이라는 이름은 그 가치를 보증하지만, 동시에 책임을 요구한다. 물속에 잠긴 채 훼손되는 유산을 방치하는 것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다.

시간은 이미 흐르고 있다. 선택이 늦어질수록, 유산은 사라진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