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미국 측과 협상 결과 발표

여 본부장은 첫 면제 국가에 한국이 포함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한국 수출통제 시스템은 미국과 약간 다르게 구성돼 있고, 미국과 비슷한 시스템을 가진 나라는 바로 시행할 수 있었으나 한국은 미국과 사전 협의가 아주 필요했다”고 말했다. 여 본부장은 “미국에서 처음 목록을 발표하기 훨씬 이전부터 산업부와 상무부 간 실무진이 계속 협의하면서 조율해 왔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미국은 그동안 미국의 러시아 수출통제 제재에서 한국에 대한 예외를 인정하기 위한 협의를 계속했다.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상무부는 1일 화상으로 국장급 실무회의를 시작했고, 그 이후 여 본부장이 미국 측과 대면 협상을 계속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4일 러시아에 대한 수출통제 제재를 발표하면서 ‘화웨이식’ 제재와 같은 규정을 적용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국방, 항공우주, 해양 분야에 사용될 수 있는 반도체, 컴퓨터, 통신, 정보보안 장비, 레이저, 센서 등을 수출 통제 대상에 올렸다. 이때 지난 2019년 중국의 통신장비업체 화웨이를 제재하려고 도널드 트럼프 전임 정부가 사용했던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을 미 상무부가 다시 꺼내 들었다.
FDPR은 미국 밖에서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 해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장비나 소프트웨어, 설계를 사용하면 해당 국가에 수출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제 장치이다. 미 상무부는 2019년 5월 16일 화웨이와 68개 계열사 등을 미 정부 허가 없이는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거래 제한기업 리스트’(Entity List)에 올렸다. 이때 적용한 규정이 FDPR이다.
미국 정부 조처가 시행되면 한국이 러시아에 수출해온 반도체, 자동차, 전자제품 등이 적용 대상이 될 수 있었다. 미 상무부가 최종적인 용도가 군사용이라고 규정한 품목을 생산하는 러시아 기관 49곳이 블랙리스트(거래제한기업 리스트)에 올렸다. 한국 기업은 사전에 미국 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이들 기관과 거래를 할 수 없었으나 미국이 예외를 인정하면 한국 내부에서 자체적인 심의 절차를 밟으면 된다.
미국은 유럽연합(EU) 27개국과 호주,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영국 등 32개국은 러시아에 대해 미국에 준하는 독자적인 제재를 한다는 이유로 FDPR 적용의 예외를 인정했었다. 이들 국가의 기업은 러시아에 제품을 수출하기 전에 미 상무부가 아닌 자국 정부에 수출 허가를 신청해 심사를 받으면 된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기로 했으나 독자적으로 제재하지는 않기로 함에 따라 FDPR 규정의 적용 예외 대상 국가 명단에서 빠졌었다. 한국은 뒤늦게 미국이 러시아에 취한 제재와 비슷한 수준의 독자 제재 방침을 밝힌 뒤 미국에 FDPR 예외 적용을 인정받으려고 미국 정부와 협상에 나섰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