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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러시아산 석유 유가상한제, '러시아 제재' 약발 먹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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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러시아산 석유 유가상한제, '러시아 제재' 약발 먹힐까?

러, 상한선 60달러에 팔아도 이익…음성적 거래로 국제유가 안정
사우디아라비아·OPEC+, 80달러 올리기 안간힘…국제 공조 난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미국을 위시해 전 세계 전통 부자 국가들의 모임인 G7과 호주는 12월 5일부터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석유에 대해 유가 상한제를 적용하기로 지난 12월 3일 결정했다. 상한선은 60달러이다.

결정 내용은 아주 세부적이고 상세하다. 우선 12월 5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를 위반할 경우 제3국에 대한 러시아 석유(12월 5일)와 석유 제품(2023년 2월 5일)의 해상 운송을 금지하도록 했다. 상한선은 두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재검토하기로 했다.
상한제를 통해 글로벌 석유시장의 수급 차질을 예방해 유가의 급등을 제어하고 러시아로 들어가는 석유 판매금의 규모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G7과 호주의 상한제 파급 영향 전망


G7과 호주에서 하루 동안 소비하는 석유는 대략 3,419만배럴이다. 전 세계에서 하루 동안 소비하는 석유 총량인 대략 1억 배럴의 34%에 해당한다.

구체 내역을 보면 미국이 1,968만 배럴(20.3%), 일본 400만 배럴(4.1%), 캐나다 248만 배럴(2.6%), 독일 238만 배럴(2.5%), 프랑스 170만 배럴(1.8%), 영국 158만 배럴(1.6%), 이탈리아 123만 배럴(1.3%), 호주 114만 배럴(1.1%) 이다.

이들 국가의 총량은 34%이지만 이들의 우방국들도 상한제를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따르지 않으면 무역의 국제 해상 운항 관련 보험 및 금융에서 배제되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해상 손해 보험의 95%를 영국 등 G7이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 무역 가운데 해상 무역은 90%에 달한다. 절대적 수치이다. 따라서 경제성장에서 무역의 비중이 큰 나라들은 G7 결정을 위반하면 무역을 할 수가 없다. 제품을 운반할 선박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산 석유에 대한 유가 상한제는 당장 보기에 그 자체로도 큰 파괴력을 가진다.

◇생각보다 복잡한 글로벌 석유시장


하지만 글로벌 석유 시장을 좀 더 들여다보면 사정은 복잡하다. 러시아산 석유의 평균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30~40달러 수준이다. 상한선을 60달러로 할 경우 러시아는 손익분기점을 넘어 이익을 남긴다.

푸틴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러시아산 석유가 시장에서 평균 6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상한선을 이미 지키고 있는 셈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G7과 호주가 러시아산 석유를 현재 시중에 거래되는 선에서 상한선을 정한 것이다. 러시아 반발을 최대한 고려한 조치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이다.

따라서, 상한선으로 러시아 수입을 제한하겠다는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정작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 대통령은 30달러를 상한선으로 요구했다.

그동안 러시아는 제재를 우회해서 석유를 거래해왔다. 비서구 보험사를 이용하거나 러시아 국영 재보험회사를 통해 잠재 고객에게 자체 보험을 제공한 것이다. 우회 거래에 이용되는 선박은 대체로 100여 척에 달한다. 이들이 러시아산 석유를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우회해서 수입하는 기업이나 국가에 판매해 왔다.

미국과 EU에서도 이런 우회 거래를 묵시적으로 인정했다. 러시아가 하루 생산하는 980만 배럴 가운데 자국에서 소비하는 360만 배럴 외 620만 배럴이 시장에 나오지 않으면 글로벌 석유시장은 패닉에 빠진다.

특히, 러시아산 석유가 중국이나 인도 등에 상대적으로 싼 가격에 거래되자 100달러 선을 넘었던 유가가 80달러 수준 이하로 떨어져 시장 안정에 일정 부분 기여한 측면도 있다.

러시아산 석유의 가장 큰 고객은 중국과 인도다. 이들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러시아산 석유를 시중 가격보다 20~30% 할인해 구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하루 동안 대략 1,279만 배럴을, 인도는 444만 배럴을 소비한다. 이 두 국가가 공개 시장이 아닌 음성 시장에서 러시아산 석유를 시가보다 싸게 구입한 것이 그나마 유가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

로이터 통신은 중국이 2022년 4월부터 7월까지 대략 30억 달러를 절감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사실은 상한제가 음성적 거래를 양성화했다는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

◇푸틴의 반발과 권위주의 진영의 도발 가능성


푸틴은 이미 중국과 인도에 60달러 이하로 판매해 큰 손해를 볼 것이 없을 것이라는 시장 일각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유가가 상한선인 60달러보다 더 낮은 가격에 판매될 경우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큰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발한다.

손익분기점을 넘고 이미 60달러 이하로 자국 소비분 외 620만 배럴 가운데 상당 부분을 거래하고 있음에도 60달러 선 이하로 판매할 경우 신규 유정 발굴이나 기존 유정 보수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의 회원들은 유가가 최소한 80달러 이상에서 거래되기를 바란다. 이들은 유가가 60달러 선으로 하락할 경우에 재정수입이 줄어들어 국가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한다.

OPEC+ 국가들은 러시아가 상한선을 지키지 않고 음성적 거래를 계속해주는 것이 유리하다. 2023년 중국이 코로나 봉쇄를 해제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할 경우 당장 글로벌 석유 시장에서 그간 중국이 수입하지 않은 최대 200만 배럴의 추가 수요가 발생한다. 이는 가격 상승을 불러온다.

또한, 미국이 전기차 보급과 경기 부진으로 석유 소비가 다소 줄어든 것이 항공기 여행 수요의 증가나 경기 회복으로 갈 경우 글로벌 석유 시장은 큰 가격 상승이 기대된다. 러시아가 상한선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면 OPEC+에게 이것은 근래 가장 좋은 그림이 재현되는 것이다.

러시아가 유가로 글로벌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OPEC+와의 공동전선 전개가 유리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는 심지어 감산을 해서라도 유가를 80달러 이상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러시아는 이들과 보조를 맞추려고 한다.

중국과 인도는 유가가 60달러 선에서 형성될 경우 경제에 아주 유리하기 때문에 러시아나 OPEC+ 입장에 대해 발언을 삼갈 것이다. 대신 G7과 자유진영에서 러시아ㆍOPEC+와 싸워주기를 바랄 수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고려할 때 가격 상한선이 상징적 의미에 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시장이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지 인위적으로 가격상한제를 통해 이를 억제하는 것은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격상한제가 시장에 실제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한두 달 더 지켜봐야 한다. 가격에 변동을 줄 많은 이슈들도 발생할 수 있다. 유가는 역대 경험을 볼 때 미래에도 시시각각 변동할 여지가 크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