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美 정부·월가, 금융 혼란 대책 정면 충돌...'예금 보호' 최대 쟁점 부상

공유
0

[초점] 美 정부·월가, 금융 혼란 대책 정면 충돌...'예금 보호' 최대 쟁점 부상

정부, 은행 '규제' 강화 vs 월가, 정부의 '구제' 요구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진=로이터
미국 정부가 월가가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 은행 파산으로 조성된 금융 혼란 사태 수습책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정부와 의회는 유사 사태 재발을 막는 추가 ‘규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들은 예금 보호를 비롯한 정부의 적극적인 ‘구제’를 요구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월가는 미국 정부가 금융 혼란 사태가 악화하지 않도록 정부에 더 신속하고 공세적인 조처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법적인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조처를 이미 다 했다는 태도를 보인다.
미국의 지역 은행과 중소 은행들은 예금 대량 인출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금융 혼란 사태로 불안감에 휩싸인 예금주들이 지역 은행이나 중소 은행에서 앞다퉈 예금을 찾아가 ‘너무 커서 망할 수 없는’ 소위 ‘대마불사’ 은행으로 옮기고 있다.

미국 최대 은행 JP모건 체이스에 따르면 최근 2주 동안 5500억 달러(약 716조원)가 지역 은행과 중소 은행에서 대형 은행과 머니마켓펀드(MMF) 등으로 이동했다. 미국 자산운용협회(ICI)는 SVB 붕괴 이후 2주 동안 주로 저위험 증권에 투자하는 뮤추얼 펀드의 일종인 MMF에 거의 2400억 달러가 유입된 것으로 추산했다.

야후 뉴스와 유거브(YouGov)의 지난 21일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12%가 SVB 사태를 계기로 은행에서 돈을 뺐고, 18%가 이를 고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의 지역 은행인 팩웨스트 뱅코프는 올해 예금이 20% 줄었다.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에서는 JP모건 체이스를 비롯한 11개 대형 은행들이 300억 달러를 수혈했으나 전체 예금의 40%에 해당하는 700억 달러가 인출됐다.

미국의 은행들은 뱅크런으로 무너진 SVB 사태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미국 정부가 예금자 보호 조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도 예금 보험 한도를 현재 25만 달러보다 더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바이든 정부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견고하다며 월가의 예금 보호 추가 조처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미국 은행 예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 보증 문제를 놓고 연일 엇갈린 발언을 계속해 혼란이 조성되고 있다. 옐런 장관은 23일 하원 세출위에 제출한 서면 답변서를 통해 “필요하면 정부가 예금자 보호를 위한 추가 조처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옐런 장관은 전날 상원 세출위원회 청문회에서는 “미국 정부가 전면적인 (예금) 보험이나 모든 예금에 대해 보증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었다. 그렇지만, 옐런 장관이 21일 워싱턴 DC에 열린 미국은행연합회(ABA) 콘퍼런스 연설에서는 정부가 25만 달러가 넘는 비보험 예금에 대한 보호 조처를 했듯이 미국에서 다른 은행이 위기에 빠지면 정부가 긴급 조정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고 설명했었다.
바이든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민간 은행에 구제 금융을 줄 수 없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민간 은행의 실패 책임을 정부가 떠안으면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즈니스에 실패한 은행은 퇴출당해야 하지만, 정부가 이를 살려주면 ‘좀비 은행’이 등장할 수 있다.

바이든 정부는 파산한 SVB 은행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주도하는 이 은행 매각 작업은 지지부진하다. SVB 파산 관재인인 FDIC는 SVB를 최소 두 사업 부문으로 나눠 매각을 추진하고 있고, 입찰 일정도 연기했다. FDIC가 초 19일까지 매수자들을 상대로 SVB에 대한 입찰 제안서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적당한 인수자가 나오지 않았다.

미국 정부와 정치권은 또 SVB 파산을 계기로 실패한 은행의 임원들이 거액의 보상금을 챙기지 못하도록 은행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미 의회에 실패한 은행의 임원이 그 은행 주식을 팔아 이익을 챙기거나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을 제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는 지역 은행이나 중소 은행에 대한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감독과 규정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앞으로 이를 위한 제안이 나올 것이고, 나는 그런 방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