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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美 반도체 지원금 '선점' 물밑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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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삼성전자·SK하이닉스·TSMC, 美 반도체 지원금 '선점' 물밑 경쟁

TSMC, 400억 달러 투자로 20조원 기대
초과이익 공유·영업 기밀 요구엔 반발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의 TSMC. 사진=로이터
미국 정부가 ‘반도체 지원 및 과학 법’ (칩스 법)을 18일부터 본격 시행함에 따라 삼성전자, 대만 TSMC, 인텔을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미국 정부가 제공하는 보조금을 받기 위한 경쟁에 돌입했다. 이들 업체는 또한 미국 정부가 요구한 초과 이익 공유, 영업 기밀 제공 등 일부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며 미 정부 측과 막후에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미국 정부에 최대 20조 원에 이르는 반도체 지원금을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TSMC는 미국에 총 400억 달러를 투자하면서 미국 정부로부터 70∼80억 달러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TSMC는 세액공제와 함께 애리조나 공장 2곳에 대한 직접 보조금 60억∼70억 달러를 신청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WSJ이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TSMC가 기대하는 세액공제와 보조금을 합치면 최대 150억 달러(약 19조 9350억 원)에 이른다.

그러나 TSMC는 미국 정부가 요구한 지원금 제공을 위한 일부 조건에 반발하고 있다고 WSJ이 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도 일부 조항을 우려하고 있다고 신문 전했다. 류더인(마크 리우) TSMC 회장은 지난달 30일 대만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일부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런 부정적인 영향을 줄이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미 정부와 계속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TSMC가 가장 반발하는 대목은 1억 5000 달러 이상의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기업의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하면 미 정부와 이익 일부를 공유하도록 요구한 것이라고 WSJ이 전했다. TSMC는 이 조항을 수용하면 애리조나 공장 신축 사업의 경제성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또한 글로벌 제조시설 중 한두 곳의 이익만을 별도로 계산하는 방식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게 TSMC의 주장이다.

TSMC는 미국 정부가 요구하는 기업 기밀 정보 제공에도 난색을 보이고 있다. TSMC가 애플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을 고객사로 두고 있어 영업 기밀을 미국 정부 등에 제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WSJ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각각 미 공장 건설 계획과 관련해 미 정부 보조금 신청 여부를 검토하고 있으나 미국 정부와의 정보 공유불편하게 여기고 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 내 고성능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를 제한하는 조항에 대해 특히 우려하고 있다고 WSJ이 전했다. TSMC는 중국 내 공장에서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지 않한국 기업들과 달리 중국에 대한 투자를 규제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크게 문제 삼고 있지 않다.

미국의 칩스 법에는 미국 정부로부터 세액공제나 보조금을 지원받는 미국과 외국 기업은 향후 10년간 중국을 비롯한 우려 국가에 첨단 반도체 시설을 짓거나 추가로 투자하지 못하도록 한 ‘가드레일’ 조항이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과 쑤저우에 공장을 두고 있다. 미국 정부는 보조금을 받은 회사가 이 가드레일 조항을 위반하면 즉각 보조금을 회수한다. 또 대미 투자금의 25%에 달하는 세액공제 혜택도 더는 주지 않는다.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 지원 조건으로 기업 기밀 정보 제출, 초과 이익 환수 등의 독소 조항을 제시했으나 전 세계 200 이상의 기업이 미국에 대한 투자 의향서를 제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 상무부 산하 반도체 법 프로그램사무국은 지난 14일 현재 200 이상의 기업보조금 신청 의향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국내 반도체 산업에 520억 달러(약 68조 원)를 직접 지원하고, 세제 혜택 등을 통해 모두 280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의 칩스 법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 칩스 법에 따르면 390억 달러가 미국 내에서 반도체 생산시설을 신설, 확장, 현대화하는 기업에 제공된다. 나머지 110억 달러는 반도체 연구, 개발 지원비로 사용된다. 방위 산업 관련 반도체 업체에는 20억 달러가 지원된다.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도 제공한다. 반도체 생산을 위한 투자에 대해서는 세액에서 25%를 빼주기로 했고, 그 수혜 규모가 향후 몇 년에 걸쳐 2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미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으로 향후 10년 동안 반도체 업계에 790억 달러의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분석했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서는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작년 8월 미 의회가 반도체 지원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과시킨 후 미국 내 반도체·청정기술 분야에 2040억 달러 (269조 원)의 투자가 유치됐다. 이는 2021년 연간 투자액의 2배 수준이고, 2019년과 비교하면 20배 늘어난 것이다. 투자 규모 10억 달러(1조 3000억 원)를 넘는 프로젝트는 2019년엔 4건에 불과했지만, 작년 8월 이후 현재까지 31건이 추진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애플, AMD, 엔비디아 등 주요 미국 고객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석한 애리조나 공장 착공식에서 400억 달러(약 52조 2400억 원)를 투자해 공장 두 개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해외기업 미국 투자 기록이다. 이 공장은 2026년부터 첨단 3나노미터(㎚, 10억분의 1m) 공정 기술을 활용해 반도체 생산을 시작한다.

TSMC의 지난해 총수입은 570억 달러에 달했다. 애플의 아이폰, 퀄컴의 스마트폰 칩, AMD 컴퓨터에 모두 TSMC의 반도체 칩이 사용된다.

인텔은 미국 오하이오주(州)에 있는 1000에이커 부지에 200억 달러를 투입해 2개의 첨단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 인텔은 이 시설에서 오는 2025년부터 반도체를 양산할 계획이다. 인텔 측은 해당 용지가 총 8개의 공장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향후 10년 동안 투자 규모는 1000억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인텔은 이미 미국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파운드리 2개 라인을 건설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정부의 국내외 기업의 자국 투자유치 정책에 따라 세금 감면반도체 투자 보조금 혜택 등 총 4조 8000억 원 지원을 약속받고 170억 달러를 투자해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새로운 칩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