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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설리번-왕이 회담과 美의 제한적 승리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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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설리번-왕이 회담과 美의 제한적 승리 전략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진=로이터
최근 미국과 중국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외사판공실 주임 간 고위급 전략대화를 가졌다는 사실은 미·중 패권 경쟁을 중심으로 한 2차 냉전 체제가 본격 개막한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올해 들어 세계 질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간 경쟁이 심화하면서 한국·일본·네덜란드·대만 등 첨단기술 강국으로 평가받는 주요 동맹국들이 미국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자유주의 진영과 중국·러시아가 이끄는 권위주의 진영 간 2차 냉전 체제로 급속하게 이행해 왔다.

미국과 중국은 중국의 정찰 풍선 사태로 지난 2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의 방중이 취소된 이후 대화보다는 각자 2차 냉전의 결정적 승기를 잡기 위한 동맹 구축에 골몰해 왔다.

미국은 반도체 등 첨단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 봉쇄를 목표로 한 동맹 전략인 ‘재세계화(re-globalization)’를 위해 한국·대만·일본·네덜란드 등과 ‘반도체 소자 연합(mini-lateral coalition)’을 구축한 데 이어 2월 28일 외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미 투자 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의 시행 방안을 공개했다.
미국은 이 같은 재세계화 전략과 함께 대만에 대한 중국의 강제 복속 시도 저지와 러시아에 맞서 2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이중 봉쇄(dual containment)’에 동맹국들의 참여를 촉구해 왔다. 일본은 1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각각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 참여를 약속했다.

미·중 패권 경쟁에 따라 시작된 2차 냉전은 이처럼 한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주요 동맹들이 미국의 대중·러 봉쇄에 동참함으로써 본격 개막했다. 이로 인해 동아시아와 서유럽의 지정학적 긴장이 점차 높아지고 있던 지난 5월 11일 백악관에서 갑작스러운 발표가 나왔다. 바로 전날부터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 이틀 일정으로 전략대화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살펴볼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미국이 왜 이 시점에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갖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대화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면 그건 무엇이냐는 것이다.

첫 번째 의문은 중요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5월 10일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가졌다는 것은 대화를 갖자는 제안을 중국 정부에 전달하고 교섭하는 데 일주일 정도 소요됐다고 본다면 최소한 4월 말이나 5월 초에 중국과의 전략대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가 4·26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에 반도체 강국이자 방산 강국인 한국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승기를 잡았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일본과 나토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까지 참여하기로 하자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대중 첨단기술 봉쇄 동맹 전략인 재세계화와 중국과 러시아의 지정학적 도전들에 대한 견제 동맹 전략인 이중 봉쇄의 기반이 확립되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의문의 답은 여기에 있다. 이번 전략대화는 바이든 행정부가 한국의 참여로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의 기반이 확립됐다고 판단하자마자 이들 전략을 중국과의 패권 경쟁을 승리하기 위한 한 축으로 유지해 나가면서 다른 축으로서 대화를 통한 압박과 설득이라는 관여(engagement)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중국과 대화를 갖고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에 참여한 주요 동맹국들을 보여주어 중국이 불법적인 첨단기술 확보를 통한 ‘기술 전제주의(tech autocracy)’를 추구하지 못하게 함과 동시에 대만 침공 등 지정학적 도발을 저지하기 위한 관여 전략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이 같은 평가를 뒷받침하는 대목은 백악관 발표에서 읽을 수 있다. 설리번 보좌관이 왕이 위원에게 미국은 대만해협에서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에 반대하고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과 동맹들의 강고한 지지를 설명했다고 백악관은 밝혔다. 이 대목은 미국이 이중 봉쇄에 대한 한국·일본·나토 등 주요 동맹들의 지지를 확보했다는 것을 중국에 확인시켜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이번 전략대화를 통해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관여 노선을 추진하겠다는 것임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는 한 백악관 고위 관계자가 “설리번 보좌관과 왕이 위원이 이틀 동안 8시간에 걸쳐 대화했다”면서 “설리번 보좌관은 미·중이 경쟁 관계에 있지만 이것이 갈등이나 충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미국이 이번 전략대화 개최를 통해 전 세계에 확인시켜준 것은 중국과의 글로벌 패권 경쟁인 2차 냉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추구하고 있는 승리의 형태가 ‘완전한 승리(a full victory)’가 아니라 ‘제한적 승리(a limited victory)’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이 2차 냉전에서 중국을 상대로 거두려는 최종 목표가 공산당 정권을 전복시켜 중국의 정치체제가 공산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전환되게끔 만드는 데 있지 않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보다는 중국 공산당 정권이 글로벌 자유주의 질서를 위협하는 기술 전제주의의 추구를 중단하고 대만 강제 복속 추진 등 역내 질서를 위협하는 도발을 자제하는 등 글로벌 및 역내 경제와 군사적 안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개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미국의 최종 목표라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이번에 미국의 전략대화 제의를 받고 곧바로 수용했다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최종 목표가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전복에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환영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는 “이번 회담은 양측이 대화 필요성을 인정해 매우 빨리 성사됐다”는 백악관의 발표에서 우회적으로 읽힌다. 중국 정부는 올해 들어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가 본격화함에 따라 미국의 대중 전략이 중국 공산당 정권의 전복을 추구하는 ‘자유주의 패권(liberal hegemony)’일지 모른다고 우려해 왔을 개연성이 있다. 그랬기 때문에 중국 정부가 미국의 제의를 받자마자 대화 필요성을 인정하고 수용했을 수 있는 것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냉전의 귀환은 역사적 비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그 같은 갈등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도덕성과 안보의 차원에서 그것을 어떻게든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키신저의 기대와 달리 냉전은 귀환해 다시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촉구대로 미국과 중국이 서로에게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 위한 봉쇄 전략에만 골몰하지 않고 대화를 갖고 최악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5월 10~11일 미·중 전략대화를 계기로 2차 냉전의 풍경이 어떻게 바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우리도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의 참여와 별개로 미국처럼 대중 관여 노력을 경제와 안보에서 해나가야 할 것이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