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美, 중·러에 제한적 승리 추구 않으면 3차 대전 가능성 커진다

공유
1

[대기자의 경제안보 진단] 美, 중·러에 제한적 승리 추구 않으면 3차 대전 가능성 커진다

세계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사진=로이터
세계 최고의 외교 전략가로 불리는 헨리 키신저. 사진=로이터
최근 글로벌 정세가 위험하다. 지난 5월 21일 중국이 미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의 판매 금지 조치를 취한 데 이어 나흘 뒤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기로 하면서 미·중간 경제적 긴장과 미․나토와 러 간 군사적 긴장이 동시에 고조되고 있다.

얼마 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가진 100세 기념 인터뷰에서 5~10년 내 3차 대전 발발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가 목도하고 있는 패권국인 미국과 패권 도전국 중국과 중국을 지원하는 러시아 간 관계는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들 같이 위험한 모습이다. 당장 미국이 중․러와의 긴장 완화에 나서지 않으면 키신저가 경고한 3차 대전 위기 발발 시기가 훨씬 앞당겨질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을 만큼 미국과 중․러 간 관계가 충돌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정세가 이렇게까지 악화하게 된 모멘텀은 무엇인가? 그 모멘텀은 지난 5월19~21일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의 결과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까닭은 무엇보다도 주요 7개국 정상들이 회의에서 미국의 대 중․러 봉쇄 전략에 적극 참여하기로 합의한 데 대해 중․러가 거세게 반발하면서 앞의 두 사건이 발발했고 글로벌 정세가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7개국 정상들은 5월21일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공동 성명과 별도 성명을 통해 미국이 중국과의 패권 경쟁과 이에 따른 자유주의 진영과 권위주의 진영 간 2차 냉전에서의 승리를 위해 본격 추진하고 있는 2대 전략인 대중 첨단 기술 봉쇄 위한 동맹 구축 전략인 ‘재세계화(re-globalization)’와 중국의 대만 강제 복속 추구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중․러의 지정학적 군사 도발에 대한 동시 견제 전략인 ‘이중 봉쇄(dual containment)’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G7 정상들은 이들 두 성명을 통해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재세계화를 지지함과 동시에 중국의 경제적 강압 행위들을 비난하고 그 같은 강압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들에 대한 지원 제공을 약속한 데 이어 침공한 러시아와 2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와 군사 지원을 강화한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G7 정상회의가 이처럼 미국이 그토록 원해 온 ‘경제 나토’의 역할을 기꺼이 떠맡은 결과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상응하는 수준의 반격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는 데 있다. 주요 7개국 정상들이 중국의 첨단 기술 패권 추구 봉쇄와 대만 강제 복속 시도 견제와 함께 우크라이나 영토에서의 러시아군의 철수를 견인하기 위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와 군사 지원 확대를 하기로 한 만큼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G7 정상회의의 경제 나토화를 저지하기 위한 도발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강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G7 정상회의 직후 5일 간격으로 각각 대미 반격 카드인 마이크론 제재와 대미․나토 반격 카드인 벨라루스 전술핵 재배치 조치를 취한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는 것이다.

사실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보다 러시아의 벨라루스 전술핵 재배치가 글로벌 지정학적 정세를 더 위험하게 만든다고 평가할 수 있다. 러시아가 이 같은 반격 카드를 꺼내들게 만든 것은 G7 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미 대통령이 내린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 승인 결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 같은 결정을 한 목적은 나토 국가들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에 F-16 전투기를 제공할 수 있도록 우회적으로 돕는 데 있었다. 지난 5월21일 G7 정상회의 폐막 후 바이든의 이 같은 결정이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가장 우려된 것은 러시아가 서유럽을 상대로 한 핵무기 공격 위협을 고조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푸틴 대통령의 선택은 결국 그 같은 우려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차 냉전이 시작된 만큼 미국과 자유주의 진영의 동맹국들이 추구해야 하는 목표는 분명하다. 그것은 중국이 반도체 등 첨단 기술 패권을 확보해 기술 전제주의로 글로벌 질서를 비자유주의화하는 것을 저지하고 대만에 대한 강제 복속 추구 등 동아시아와 서태평양 지역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러시아의 경우 자유주의 진영의 목표는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도록 만드는 등 유럽 지역에서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을 못하도록 견제하는 것이다. 미국과 나토와 한․일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 진영이 이 같은 대 중․러 목표들을 달성하기 위해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에 적극 참여하는 것은 2차 냉전의 승리를 위해 불가피하다.
문제는 미국과 동맹국들이 중국과 러시아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로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를 밀어붙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봉쇄(containment)를 미국의 대소 냉전 전략으로 수립한 조지 케넌 전 미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은 “완전한 승리(a full victory)는 환상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비극을 초래하는 만큼 제한적 승리(a limited victory)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신저가 이코노미스트 회견에서 앞으로 5~10년 내 3차 대전의 발발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는 것도 미국이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추구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나토 회원국 정상들이 해야 하는 것은 푸틴의 벨라루스 전술핵 재배치 도발을 초래한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 승인 같은 압박이 아니라 러시아의 침공 명분이었던 나토의 동진을 철회하고 중국으로 하여금 러시아를 설득하게 해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도록 만드는 피스메이커 역할을 맡게 하는 것이다.


이교관 CNBC코리아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