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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친기업 국가' 이스라엘 분열…모범국가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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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친기업 국가' 이스라엘 분열…모범국가의 위기

사법 개혁에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사진=뉴시스 이미지 확대보기
사법 개혁에 불만을 품은 이스라엘 시위대가 거리로 나섰다. 사진=뉴시스
올해로 건국 75주년을 맞이한 이스라엘이 사회 분열의 위험에 직면해 있다. 극우 성향의 네타냐후 행정부에 의해 단행된 ‘사법 제도 개혁’은 균열을 심화시켰고,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0%가 해외 이주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이스라엘이 보여주고 있는 극심한 내부 불안은 하이테크 기업의 부흥으로 경제 성장을 이룬 '친(親)기업 국가'라는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이스라엘 집권당은 지난달 말, 법원의 권한을 약화시키는 개혁 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를 전후해 주말 동안 상업 도시인 텔아비브에서 시위대가 수만 명으로 불어났다. 그들 가운데는 이스라엘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예비군들도 포함되어 있다.

59세의 한 예비역 공군 대령은 “사법부를 무력화시킨 정부는 전능해질 것이고, 75년 전에 힘들게 만든 국가의 형태를 바꾸어 놓을 것이다"라며 "독재를 위해 군대에서 복무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안보 공백을 우려했다.
이스라엘은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 박해를 겪은 후 1948년 건국되었으며, 1973년까지 이웃 아랍 국가들과 네 번의 중동 전쟁을 치렀다.

팔레스타인 문제와 같은 모순에도 불구하고 중동에서 유일하게 기능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시민들은 이번 사태로 인해 자신들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스라엘 국회는 7월 24일(현지 시간) 합리성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행정부 결정을 무효화할 수 있는 대법원의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삼권분립을 위협하는 이 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격화됐고, 예비군들까지 거리에 나서 동참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도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힘의 균형을 회복하겠다"며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수적으로 불리한 야당은 법안 통과에 격렬하게 반발했다. 올메르트 전 총리는 지역 텔레비전에 출연해 "우리는 내전으로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스라엘 TV채널이 7월 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8%가 법안 통과 후 해외 이주를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 모범국가의 위기

이스라엘은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었다. 개인의 풍요로움을 나타내는 지표인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5년 만에 두 배로 증가해 5만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하지만 집권당의 빗나간 사법 개혁으로 꾸준한 경제 성장을 후퇴시킬 수 있는 위기를 자초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신용평가기관인 S&P 글로벌은 지난달 말 "행정부와 야당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국내 갈등이 악화되어 결국 중기적으로 경제 성장에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극우 연정을 이끄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이미지 확대보기
극우 연정을 이끄는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무디스는 “내부 분열로 인해 사회 전반의 불안정화가 앞으로 몇 달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스라엘 통화인 셰켈은 6개월 만에 달러 대비 6% 하락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극우 정당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는 네타냐후 총리는 야당이나 반대 의견을 묵살해 왔다.

총리로 재임한 15년 동안 그는 반복적인 연정 활동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으나 점차 극우적으로 흘러갔다. 야당은 집권 연정에 대해 "그들은 극단주의 꼭두각시들이다"라고 비난했다.

지난해 총선에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유대인 정착촌 확장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승리했다. 유대교의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 초정통파를 대변하는 종교 단체들도 네타냐후의 연립정부를 지지하고 있다.

많은 세속적이고 자유주의적인 시민들은 현 정부가 극우와 유대교 정당의 요구에 끌려다니고 있다고 호소한다. 그들에 대한 반감은 사법 개혁에 대한 항의 형태로 분출되고 있다.

이스라엘 바-이란 대학의 조나단 라인홀드 교수는 "정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법 제도를 바꿔 가며 부패와 경제 문제를 일으킬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행정부는 분열을 심화시킨 사법 제도에 대한 추가 입법 변경을 추진할 태세다. 올 초부터 시작된 주말 시위는 8월 들어서도 멈추지 않고 있으며 양 진영 사이 화해가 이루어질 전망은 불투명하다.

이스라엘의 분열상을 지켜보고 있는 적대적인 세력은 미소를 짓고 있다. 레바논의 시아파 이슬람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지도자 물라 나스랄라는 이스라엘이 "붕괴와 분열의 길에 있다"고 말했다.

편향된 시각과 배타적 원리주의로 뭉친 이스라엘 연정이 다윗의 나라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이끌고 있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