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초점] 우크라이나의 눈물겨운 겨울 나기

공유
0

[초점] 우크라이나의 눈물겨운 겨울 나기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올겨울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본사 자료 이미지 확대보기
우크라이나의 상황은 올겨울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본사 자료
한때 전 세계의 이목이 우크라이나로 쏠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웅이 됐고, 푸틴은 악마화됐다. 전쟁이 발발한 첫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지만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의 우군이 되어주었다.

너도나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그러나 올겨울 우크라이나의 겨울은 어느 해보다 차갑다. 세계인의 관심은 이·팔 전쟁으로 가자지구로 옮겨갔다. 전쟁의 주도권은 어느새 러시아로 넘어갔다. 똘똘 뭉쳐 있던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로감을 호소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서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모든 영토를 되찾기 전까지 러시아와의 휴전 협상은 없다”고 애써 강조했다. 그의 자신감 이면에는 주요국들로부터 우크라이나 문제에 관심을 잃고 있다는 위기감도 느껴진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에 대한 반격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전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그 자체로 모순의 언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러시아와의 협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그가 낙관적이어서가 아니다. 그도 자신과 조국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휴전에 합의하면 국력에서 우세한 러시아는 시간을 벌게 된다. 미사일과 포탄 생산을 크게 늘리고 결국 휴전을 깨고 다시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할 것이다. 그 경우 우크라이나는 더 많은 영토를 빼앗길 게 뻔하다.

젤렌스키의 고뇌


그동안 보여준 판단력에 비춰볼 때 젤렌스키도 그 정도 계산을 못 할 리 없다. 그는 "휴전이나 전투 동결은 (평화의) 대안이 아니며, 일정 기간이 지나면 러시아는 다시 올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과거 여러 차례 배신 경험을 통해 러시아를 신뢰하면 안 된다는 냉혹한 현실을 배웠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15년간 이어진 휴전 협정을 깼다.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침공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지만 지난해 2월 전면 침공을 감행했다.

젤렌스키는 자체 모순에 빠져있다. 러시아와 휴전에 나설 수도 없고 전쟁을 계속 수행하기도 힘들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다. 주요 경제국들은 중동 정세에 대처하느라 바쁘고, 미국 공화당과 유럽 일부 나라들 사이에는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입에 올리고 있다.

젤렌스키는 중동 정세를 설명하면서 "우크라이나가 잊혀졌다"고 한탄했다. 그는 "불행하게도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고백했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영토의 약 20%가량을 러시아에 점령당해 있다. 당장 극적인 반전이 일어날 것 같지도 않다.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전쟁은 오랫동안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미국과 유럽의 군사적 지원이 줄어들면 우크라이나는 점점 더 불리한 상황으로 빠져들게 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보다 인구에서 3배 이상, 경제 규모는 10배 이상 강하다. 더구나 러시아는 2024년 정부 예산안을 통해 국방·안보 관련 분야에 총예산의 약 40%를 배정했다.

젤렌스키는 세 차례 개최된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서 평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6월 열린 첫 번째 회의는 서방 국가들이 주도했지만, 가장 최근인 10월 회의에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60개국 이상이 참석했다.

평화회의에서는 러시아군의 완전 철수와 핵·에너지 안보를 약속하는 우크라이나의 평화 구상이 논의되었다. 러시아에 국제사회의 압박을 가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군대의 철수로 이어질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러시아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개시하면 점령지는 더 확장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다. 서방 세계로부터의 지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겨울은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세계 질서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