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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비전 프로', 죽어가던 MR 시장 '심폐소생'시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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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비전 프로', 죽어가던 MR 시장 '심폐소생'시킬까

애플의 비전 프로 헤드셋.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애플의 비전 프로 헤드셋. 사진=로이터
애플의 올해 기대작 중 하나인 혼합현실(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가 지난 2일 출시 후 순항 중이다. 3500달러(약 468만원, VAT 별도)라는 상당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대기자가 줄 서 있고, 리셀러들은 몇 배 이상 웃돈을 붙여 되팔고 있다.

수년 전부터 애플이 자체 MR 헤드셋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부터 관련 업계의 기대감은 상당했다.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개척하고, 에어팟이 완전무선이어폰(TWS)이라는 새로운 주변장치의 기준을 제시한 것처럼 “애플이라면 식어가는 MR 시장을 다시 활성화할 것”이라는 되는 기대감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 제품이 출시되고, 베일에 싸였던 주요 기능과 특징·성능 등이 낱낱이 공개되면서 업계의 기대감은 다시 의구심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수많은 기업이 가상현실(VR)·증강현실(AR)·MR을 아우르는 확장현실(XR) 시장에 진출했고, 각종 헤드셋과 글래스(안경형 디바이스) 제품을 선보이며 관련 시장을 키우려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중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소니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도 있었고, 한국에서는 삼성과 LG 등이 있다.
특히 마크 저커버그의 페이스북은 회사명까지 ‘메타’로 바꿀 정도로 이 분야에 진심이다. 평균 수십만~수백만원을 넘는 헤드셋 가격을 30만~40만원대까지 낮춰 대중화를 꾀하고, 이를 기반으로 회사가 추구하는 ‘메타버스’를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

하지만 현실은 메타를 제외한 거의 모든 회사가 XR 관련 사업에서 손을 뗀 상태며, 소비자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이는 기존의 헤드셋 제품은 물론, 비전 프로마저 극복하지 못한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기존 XR 헤드셋 제품 사용자들이 겪는 가장 큰 문제는 현실과의 괴리로 인한 감각의 불일치와 그로 인한 멀미 증상, 즉 어지럼증과 메스꺼움 등의 신체적 거부반응이다. 애플은 빠른 반응속도와 현실 이미지에 가상 오브젝트를 덧씌워 표시하는 AR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지만 이미 일부 사용자들로부터 멀미 발생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불편한 착용감도 극복하지 못했다. 이러한 헤드셋 제품들은 대부분 서양인의 평균 체형에 맞춰 디자인된다. 사람에 따라 맞지 않는 부분이 나올 수밖에 없다. 특히 메타 퀘스트 시리즈에서 수없이 지적됐던 동양인 사용자 얼굴에 잘 맞지 않는 문제는 비전 프로도 피해가지 못했다.

게다가 비전 프로는 고화질·고성능 구현을 위해 무게도 타사 제품보다 약 100~200g 더 무겁다. 그만큼 장시간 착용 시 사용자의 신체에 부담을 주고 피로해지기 쉽다.
비전 프로만의 차별화된 ‘원 모어 싱’도 없다. AR 기능이나 자유롭게 배치 가능한 가상 데스크톱, 손가락 제스처를 이용한 직관적인 조작 인터페이스 등은 이미 타사 제품들도 한 번씩은 도입하고 시도했던 기능이다.

콘텐츠 부족은 당장 직면한 비전 프로의 최대 문제다. 메타 퀘스트 시리즈는 이미 3세대 제품까지 출시되고 수많은 서드 파티 개발사들이 다양한 전용 콘텐츠를 선보였지만, 지금까지도 사용자들을 붙잡아둘 만한 ‘킬러 콘텐츠’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이는 장기적으로 XR 시장이 정체된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

비전 프로도 벌써부터 사용자들을 붙잡아둘 만한 기능이나 앱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물론, 출시된 지 이제 2주밖에 안 된 제품에 콘텐츠 부족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지만, 타사 제품 대비 독창적인 기능과 특징이 없다면 결국 똑같은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플 특유의 폐쇄적 생태계도 걸림돌이다. 사용자들의 평을 정리해 보면, 이 제품을 100% 활용하려면 맥이나 에어팟, 아이폰 등 기존 애플 제품과의 ‘연동’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결국 애플이 비전 프로에 바라는 것은 MR 시장의 부활과 확장, 활성화가 아니라 기존 자사 제품 사용자들에게 가상 데스크톱 및 가상 작업공간을 제공하는 새로운 확장 인터페이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