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TR, 중국 제조 선박에 150만 달러 정박료 부과 추진으로 무역 질서 재편 시도
블랙록의 파나마 항구 인수로 드러난 '지정학적 문' 전략과 미중 해상 패권 경쟁
블랙록의 파나마 항구 인수로 드러난 '지정학적 문' 전략과 미중 해상 패권 경쟁

더불어 USTR은 7년 이내에 미국 수출의 15%를 미국 국적 선박에 실어야 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는 서방 국가들도 유사한 규칙을 도입하도록 독려하는 한편,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미국과 중국 간의 단순한 관세 분쟁을 넘어, 글로벌 무역 체계의 근본적인 재편을 의미한다. 미국은 글로벌 해운과 조선 산업을 '미국 중심'으로 전환하려 하지만, 현실적 어려움이 예상된다.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미국 조선업은 현재 연간 5척 미만의 상선을 생산하는 반면, 중국은 연간 1,700척을 건조하고 있다. 중국의 조선 능력은 미국의 232배에 달하는 상황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연설 시기에 맞춰 블랙록이 파나마의 핵심 항구 2개를 포함해 23개국의 항구를 홍콩 기업으로부터 인수한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이는 비즈니스와 지정학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미국 기반 투자회사가 미국의 새로운 지리 전략을 뒷받침하는 글로벌 무역 자산을 통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항구들은 중립적인 허브에서 미국의 명령에 따라 열리고 닫힐 수 있는 '지정학적 문'으로 변모하고 있다. 파나마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이나 아시아의 항구들을 대상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줄이고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도록 압박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파나마 합의 한 달 전,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 투자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세계 자본 이동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 정책은 중국이 제조업부터 인프라에 이르기까지 미국 경제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차단하고, 중국을 미국 해안에서 영구적으로 배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이미 어떤 종류의 전쟁에도 준비되어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가 99%나 감소한 상황에서, 중국은 무역 환경이 역행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항구와 항로 사용에 제한을 가할 경우, 중국은 세계 무역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남중국해를 미국 국적 선박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거나, 중국이 통제하는 전 세계 약 100개 항구에 미국 사업자의 정박을 제한할 수 있다.
서구 내부의 분열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의 차기 총리로 거론되는 프리드리히 메르츠가 미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면서, 유럽은 '미국 우선주의' 이념에서 벗어나 중국과 재결합할 가능성도 있다. 이는 글로벌 무역의 분열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으며, 미국과 유럽 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무역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
신흥국들의 대응도 주목할 만하다. 말레이시아는 최근 중국 기업들에 자국 경제를 이용해 상품을 '재포장'하고 미국의 관세를 회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는 중국 투자 유치에 초점을 맞췄던 말레이시아의 전략 변화를 시사하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이 축소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은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국은 자신이 구축한 글로벌 무역 체계를 스스로 거부하고, 새로운 무역 체계와 이념을 도입하고 있다. 이는 세계가 자신이 만든 시스템을 이용하는 방식에 불만을 품고, 최대 경쟁자인 중국이 패권을 차지할 것을 두려워하는 '흔들리는 초강대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세계는 서로 상반된 요구와 이념, 비전을 가진 두 개의 경쟁하는 지정학적 질서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더 이상 중립이나 반항의 문제가 아닌, 새로운 글로벌 무역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의 문제가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의 출발점은 바로 무역이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